2년 만에 당무복귀‘큰 꿈’ 잰걸음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지난달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당 장악에 나섰다. 목표는 ‘당권’이 아닌 ‘당심(黨心)의 장악이다. 당내에서 ‘박근혜 힘의 한계‘가 7·3전당대회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첫 행보는 한나라당 최고중진 연석회의 참석이었다. 2년 만의 공식 당무복귀다. 침묵은 깼지만 말수와 목소리는 최대한 줄이고 낮췄다. 4·9총선 직전부터 시작된 기나긴 ‘통첩과 침묵의 정치’에 확실한 마침표를 찍고 ‘저음의 정치’로 모드를 바꾼 것이다. 박 전 대표의 ‘저음의 지원’을 등에 엎고 측근들은 모임 형성을 서두르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측근 유정복 의원이 공부모임으로 첫 삽을 떴다. 허태열 최고위원과 박 전 대표의 싱가포르 방문을 동행했던 김선동 의원도 각각 세력을 결집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정몽준(MJ) 최고위원과 소장파에 대한 견제의 성격도 강하다. 현재 MJ계는 신영수 의원을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고, 소장파들은 김문수 지사에게 주목하고 있다. TK지역 지지기반이 겹치는 강재섭 전 대표의 최근 행보도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본지 744호 참조) ‘싱가포르 구상’을 통해 대권의지를 드러낸 박 전 대표가 ‘여름 구상’으로 당심을 흔들기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한나라당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를 통해 당무 일선에 복귀한 박근혜 전 대표는 말을 아꼈다. 인사말을 네 차례나 사양한 끝에 박 전 대표는 “연석회의가 당과 나라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운영됐으면 좋겠다”며 목소리를 낮췄다. 박 전 대표는 더 이상 발언 없이 옆 자리에 앉은 이상득 의원의 열변을 꼼꼼하게 메모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박 전 대표는 연석회의에서 가급적 목소리를 낮출 것이다. 이는 계파 수장의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동시에 적대적인 세력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강성 야당 지도자 이미지 벗기

박 전 대표는 7·3전당대회를 통해 이미 당내 소수파의 한계를 절감했다. 국회에서 강력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수 있는 60여명의 친박 의원 군단을 거느렸지만 대의원과 당원 장악에 있어 취약점이 드러났다. 연석회의에서 지나치게 자파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강한 모습을 보이기 보다 포용의 정치로 당심을 움직이려는 포석이다.

이날 연석회의에서 이상득 의원이 한 강도 높은 발언을 놓고 친이계에서 조차 “자문기구인 연석회의지만 이 전 부의장이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발언을 하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다”고 우려를 표시한 것과 대비된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저음정치는 강성 야당 지도자의 이미지를 벗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침묵의 정치가 냉혹한 정치판에서 살기위한 생존 본능이었다면 이젠 여당 차기 대권주자로서 포용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같은 박 전 대표의 모드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싱가포르 구상’을 통해서였다.

박 전 대표는 싱가포르를 방문 중이던 지난달 15일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를 만나 “한 나라 지도자의 철학과 지도력이 그 나라의 운명을 바꾸며 국가 통합을 위해선 국민이 신뢰와 믿음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친박계 한 인사는 “이젠 여당 대권주자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 본격적인 지도자 수업을 받아야 한다”면서 “연석회의는 이러한 변신을 당 안팎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나라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이고, 옳은 일이면 항상 협력할 계획”이라며 이미 수차례 ‘조건부 협력’을 강조한 바 있다.

박 전 대표가 공식적 당무에 참여하면서 당심 장악과 세 확장을 위한 측근들의 모임 결성도 본격화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 출신 유정복 의원은 오는 5일 선진사회연구포럼을 출범시킨다. 외형적으로는 국회 공부 모임이지만 계파 혹은 친박 세력 확장의 성격을 띠고 있다.

유정복 의원은 이와 관련 “계파 모임이 아니라 국회등록 연구단체 55개 가운데 하나로 국회의원 299명 모두에게 참여 공문을 보냈다”며 “박 전 대표와 관계없다”고 밝혔다.

친박 허태열 최고위원은 당내 최대 모임을 준비하고 있고, 박 전 대표의 싱가포르 방문 때 현역의원으론 유일하게 동행했던 김선동 의원 역시 젊은 층을 결집시키고 있다.

김무성 의원은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계파가 없을 수 없다. 이심전심으로 공부 모임은 몇 개 만들 것이다. 원래 모임은 끼리끼리 하는 것”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박 전 대표 측의 이 같은 움직임은 대권 라이벌 정몽준 최고위원에 대한 견제 성격이 강하다”고 밝혔다.


MJ 당내 견제 시동

MJ는 최근 “열심히 노력해서 국가 최고경영자 지위까지 오르려 한다. 박 전 대표와는 경쟁하는 협력자”라는 말로 대권 도전 의지를 간접 표명했다.

MJ 측은 7·3전당대회 이후 현대 출신 신영수 의원을 중심으로 조직을 정비하면서 당내 지지세 확장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여름철 숨고르기를 끝낸 박 전 대표 측이 MJ의 세력 확장을 본격적으로 견제하기시작하면 양측이 부딪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부정의 ‘침묵 모드’에서 긍정의 ‘저음 모드’로 변신한 박근혜 전 대표는 ‘싱가포르 구상’에 이은 ‘여름 구상’을 통해 당심 장악과 함께 지도자 수업을 시작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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