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뉴시스
국회의사당, 뉴시스

국회에는 가을이 없다. 국회법에 정해진 대로 매년 9월이면 100일간 정기국회가 열리는데, 국정감사에, 법안처리에,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처리하다 보면 어느덧 겨울이 성큼 와 있다. 국정감사가 때마침 단풍이 물드는 시기에 열리는 통에 국회에서 근무하게 되면 단풍놀이와는 당분간 안녕이다. 올해 국정감사도 설악산에 첫 단풍이 물들 때쯤 시작되어 내장산 단풍 끝물일 때쯤 되면 끝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정책수행을 꼼꼼히 따져보는 국회의원과 방어하는 장, 차관들의 공방으로 뜨겁던 국감장 풍경이 올해는 예년과 다른 점이 많다. 우선 국정감사장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에 제한이 있다 보니 국정감사장이 휑하고 삭막하다. 질의 순서가 뒷번호인 의원들은 밖에서 대기하고, 질의를 앞둔 의원들만 보좌진이 한 명만 배석한 상황에서 질의를 할 수 있다. 의원들 사이에 칸막이도 쳐 있고, 다들 마스크를 쓴 채 국정감사를 진행 중이다.

코로나19가 바꾼 국정감사장 풍경은 그뿐이 아니다. 국정감사 대상기관도 많이 줄었다. 각 기관 별로 국정감사장에 들어 올 수 있는 인원수에도 제한을 뒀다. 국정감사 때마다 장관이나 각 기관장들 뒤에 빽빽하게 배석해서 답변을 거들어 주던 실장, 국장, 과장들이 거의 다 사라졌다. 피감기관에서 빠진 기관은 이 가을에 단풍놀이 갈 여유가 생긴 것이고, 부하직원들의 조력을 받는 게 불편해진 기관장들 입장에서는 하늘이 노래지게 되었다.

국감장 분위기가 이렇다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편해진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국회의원 보좌진들은 이미 8월부터 국감 준비에 들어갔었다. 추석 연휴에도 대부분의 보좌진들은 출근을 해서 자료를 분석하고 질의서를 준비하느라 국회 주차장은 빈 곳이 없었다. 일부 보좌진들은 코로나19로 고향에 가지 말라고 해서 속 편하게 국정감사 준비를 할 수 있었다고 씁쓸해 했다. 국정감사에 코로나19까지 겹치니 추석이 온전할리가 없다.

국정감사가 코로나19로 큰 변화를 겪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매년 겪는 일이지만 올해 국정감사도 역시나 여·야간 정쟁으로 날이 샐 것 같다. 외교부 국감은 ‘장관의 남편’이 주인공이고, 국방부 국감은 ‘북한에 피살된 공무원’이, 법사위, 문체위는 ‘추다르크와 그 아들’에 대한 성토만 귀에 들어온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지면서 답답한 국민들에게 우울감만 더해주는 것 같아 부끄럽다.

국감이 끝나면 어김없이 ‘국감 무용론’또한 들려 올 것이다. 국회가 거의 매달 열리는 상황에서 굳이 기간을 정해 국감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도 맞고, 공무원들은 자료 준비하느라, 보좌진들은 질의서 준비하느라 밤을 새우는 것도 비생산적이라는 것도 옳다. 깊이 동의한다. 필자 또한 국정감사 때마다 “나무야 미안해”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웠었다. 그나마 최근에는 산처럼 쌓이던 종이책대신 usb로 자료를 주니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나 할까.

코로나19 유행이 내년 말까지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내년 국정감사도 올해와 비슷한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우울감도 커질 것이고, 국회와 정부가 해야 할 일도 많아질 것이다. 남은 국감일정이라도 국회가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우울한 세상에 피로감만 더하지 않을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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