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행정부 역학구도

“아리랑TV 부사장에는 김OO씨를 선임하는 게 어떻습니까.”, “곤란합니다. 전문성도 없고 급(級)도 떨어집니다”, “이백만 홍보수석을 비롯한 관련 수석과 비서관들이 상의해서 추천하는 것입니다.(청와대의 뜻이란 뉘앙스)”, “(화난 목소리로)이런 짓 더하지 말든지, 나를 자르십시오”, “(알았다는 듯)그래요? 배째 달라는 말씀 같은데, 배째드리지요.” 청와대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과 유진룡 문화관광부 차관 사이에 전화를 통해 이런 대화가 오간 얼마 뒤 유 차관은 진짜 잘렸다(?). 물론, 이것은 유 전차관의 주장에 따라 재구성해 본 통화 내용이다. 양 비서관은 “소설같은 이야기”라며 부인하고 있다. 특히 ‘배째드리지요’라고 했다는 부분에 대해선 “1980년대 ‘운동권이 성(性)을 혁명도구화한다’는 고약한 루머 이래 최악의 악성 유언비어”라고 혀를 차고 있다.


청와대가 아리랑TV 부사장 및 영상자료원장 인선을 둘러싸고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에 인사압력을 행사했는지에 대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는 이백만 홍보수석과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이 아리랑TV 부사장 인선 과정에서 이해찬 전국무총리 비서관을 지낸 김모씨를 추천했다고 밝혔다. 또 청와대 인사수석실은 영상자료원장 후보로 ‘노문모’(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모임) 회원인 L씨를 추천했다고 시인했다. 문제는 ‘추천’ 과정이 정당했는지다. 청와대는 ‘인사 협의’ 차원이라고 했지만 유진룡 전차관은 ‘협박’ 수준이었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배 째 드리죠’ 논란
청와대 비서관은 1급 아니면 2급 별정직 공무원이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까지는 3급 비서관도 있었다. 따라서 청와대 비서관이 행정부 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인사에 압력을 넣고 ‘배째드리겠다’고 협박을 했다는 것은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일반인에게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여권 내부의 역학관계, 특히 청와대와 행정부 사이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그다지 화젯거리도 아니다. 이번 아리랑TV 부사장 인선 소동의 진실공방 결과와는 상관없이 이와 유사한 일은 여권 내부에서 비일비재했다. 정부 산하기관이나 사기업의 사외이사에까지 광범위하게 투입되는 ‘낙하산 부대’를 선발하는 쪽이 청와대다. 청와대는 ‘낙하산 인사’를 통해 투입할 사람들을 행정부 주무 부처에 일일이 천거해야 한다. 격식을 따지자면 차관급인 청와대 수석비서관 정도가 주무 관리부처의 장·차관에게 ‘인사협의’를 하는 모양새라도 취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수백명이나 되는 낙하산 부대를 일일이 수석비서관이 챙길 수 없다. 1·2급 비서관, 어떤 때는 3급 행정관이 행정부 장·차관들과 직접 통화하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주목할 점은 이 경우라도 하위직급의 청와대 참모가 상위직급의 행정부 관리들에게 결코 기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정무직인 장·차관의 경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청와대 사람들이다. 정규 공무원인 중앙부처 국장급 공무원들의 경우 옷을 벗기기는 어렵지만, 한직으로 좌천시킬 만한 힘이 청와대에는 실제로 있다.

‘코드인사’가 구설수 반복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초부터 ‘탈(脫) 권위’를 지향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 비서실도 전임인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비해 기구와 인원을 축소했다. 수석비서관 중심 체제에서 수석비서관과 보좌관들이 함께 비서실을 이끌어 가는 체제로 바꾸기도 했다.(물론 임기 중반 이후에는 다시 수석비서관 중심체제로 환원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면 노 대통령의 의지대로 비서실도 탈 권위가 이뤄졌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은 ‘미완(未完)의 성과’만 보이고 있다. 현재 청와대를 장악하고 있는 ‘386 참모’들 사이에서 권위의 색채는 일단 찾아보기 어렵다. 행정부와의 관계만 봐도 그렇다. 청와대 집무실에 앉아서 행정부 관리들을 불러들여 무작정 호통을 치곤하던 옛 비서실의 모습은 많이 없어졌다. 그러나 그런 구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특히 정권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또다른 형태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에 대해선 매우 단호함을 보인다. 이번 아리랑TV 부사장 인선 파동도 그렇고, 영상자료원장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마찬가지다. 두 곳 모두 청와대에서 ‘코드’가 맞는 2002년 ‘대선 유공자’를 추천했다가 파문을 일으켰다. 결국, 참여정부에서는 과거처럼 정책현안을 놓고 청와대가 행정부를 다짜고짜 힘으로 누르는 사례는 줄어들었지만 ‘코드’를 지키려는 청와대와 정통관료 출신들이 포진한 행정부 사이의 알력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참여정부는 수석이 통제
양정철 비서관이 이번 파동을 해명하면서 “임명권자와 상의하기 전에 아리랑TV 주무 감독기관인 문화부와, 문화부의 감독기관인 청와대가 의견을 교환한데 불과하다”고 말했지만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 비서실이 행정부처의 감독기관이란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후 청와대 비서실 조직은 행정부를 통제하도록 짜여져 왔다. 각 수석비서관실이 해당 업무를 소관하는 행정부를 사실상 지휘하는 형태가 이어져 온 것이다. 참여정부에서도 그런 형태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다. 가령, 홍보수석은 문화관광부와 국정홍보처를 사실상 통제하고 있고, 정책실장과 관련 수석은 경제부처를,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관련 수석은 통일부·외교통상부·국방부 장관 보다 사안에 따라 우위에 서기도 한다. 또 민정수석실은 법무부·검찰·국정원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과거정부에선 행정부 노골적으로 장악해
과거 정권에서는 청와대 비서실의 행정부 장악이 더욱 노골적이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사회문화교육수석’이란 직함이 있었는데, 그가 통제하는 행정부처는 행정자치부·보건복지부·문화관광부·교육부를 비롯해 6~7개에 달했다고 한다. 차관급인 사회문화교육수석의 힘이 6~7개 부처 장관을 능가하기도 했던 것이다. 당시 장관이 국무회의 등에 참석하기 위해 청와대에 들렀다가 관련 수석에게 ‘인사’를 하고 가기 위해 청와대내의 비서동(棟)을 기웃거리는 장면은 낯설지가 않았다. 어떤 때는 부총리급 장관들이 수석 뿐 아니라 1·2급 비서관의 방을 별다른 용무도 없이 찾아가서 차를 마시고 가곤 했다. 또 비서관들이 해당 업무와 관련된 민원을 제3자로부터 부탁받고 주무 부처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회유를 곁들여 압박하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뿐만 아니라 주무 부처 장관이 필요한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때 해당 청와대 비서관에게 ‘SOS’를 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면 그 비서관은 기획예산처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예산 편성 필요성을 설명했는데, 그 효과는 주무 장관이 직접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고 한다. 다만 간혹 행정부처의 위상이 청와대 못지않을 때가 있었다. 바로 ‘실세 장관’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광범위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실세 장관이 버티고 있는 부처는 청와대도 조심하기 마련이다. 참여정부의 경우 김근태 장관시절의 보건복지부, 정동영 장관 시절의 통일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박지원 장관의 문화관광부가 대표적이다.

막강한 비서실 파워 역전현상
직급과 상관없이 행정부에 비해 청와대 비서실의 힘이 강한 것은 역시 대통령과의 접근성 때문이다. 이 접근성은 정보력과 연결된다. 대통령 비서실 직원, 그 중에서도 몇몇 핵심 참모들은 매일 대통령과 접촉하면서 국정운영과 관련한 정보를 확보하게 된다. 행정부 관리들로서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고급정보들이다. 어떤 정보는 행정부 관리들의 명운을 좌우할 것도 있다. 행정부가 청와대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지만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임기 막바지에는 묘한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 대통령의 힘이 급격히 빠지면서 청와대 참모들은 갈 길을 찾게 되는데, 대개 욕심을 내는 곳은 정치권과 행정부 두 군데다. 정치권은 그렇다치고 행정부는 왜 매력이 있을까. 물론, 임기 막바지에 행정부로 들어가 봤자 다음 정권이 들어서면 불과 몇 개월 만에 자리를 내줘야한다. 그렇지만 행정부 고위관료 경력이 있으면 대학이나 연구소 같은 곳에 ‘취업’의 길이 쉽게 열린다. 대개는 ‘연구교수’ 같은 이름만 걸고 급여를 받는 자리다. 정권 임기말에 청와대 출신들이 차관급으로 대거 발탁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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