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8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 정상회의’ 참석과 말레이시아 및 필리핀 국빈방문을 위해 출국했다. 올해 마지막 해외순방 일정이다. 이번 순방에서도 노 대통령은 민간항공기를 전세낸 특별기를 이용했다. 이 특별기에는 수행참모들과 기자, 경호원 외에도 여러 가지 장비와 물품들이 가득 실린다. 이 가운데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외국 정상들에게 줄 선물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대통령들은 해외 순방에 나설 때 한국을 상징할 수 있는 선물을 엄선해서 싣고 나간다. 물론, 선물을 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 정상들에게서 그 나라 고유의 전통미가 살아 있는 선물을 받아 온다.

대통령이 외국 정상에게, 또는 국내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은 과연 어떤 것일까. 또 대통령은 외국에서 받은 진귀한 선물들을 어떻게 처리할까.우리 대통령이 외국 순방 때 가지고 나가는 선물은 매우 다양하다. 방문국의 문화와 관습, 대통령(혹은 수상)의 개인적인 취향을 사전에 알아보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다 우리나라를 상징할 수 있는 품목인지를 꼼꼼이 따져 선택한다.2004년 12월 유럽 3개국 순방 도중 영국을 국빈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준 선물은 수공예품인 ‘화각머릿장’과 우리 고유의 전통화살이었다. 이에 여왕은 도자기 접시 두 점을 선물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9월 아벨 파체코 코스타리카 대통령에게는 그의 시가 실린 국내 문학 잡지를 선물했으며, 그 답례로 파체코 대통령의 스페인어 시집을 받은 바 있다. 우리 대통령들이 외국 정상이나 귀빈에게 선물을 줄 때는 포장지 안에 금박으로 영문 이름과 직함을 새긴 대통령 명함을 넣어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은 명함을 갖고 있지 않지만, 이 경우에 유일하게 명함이 쓰인다고 한다.대통령이 외국에 나갈 때는 현지 교민 등에게 줄 선물을 챙겨가기도 한다. 2004년 12월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를 전격 방문했을 때 노 대통령은 전 장병에게 검은색 가죽 반지갑 3,800개를 선물했다. 지갑 안쪽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 권양숙’이라는 글씨가 금박으로 새겨져 있었다.

대통령의 이름은 항상 ‘금박’
반대로 우리 대통령이 외국에서 진귀한 선물을 받기도 한다.현직 대통령이 받은 선물들은 일차적으로 국립민속박물관으로 넘겨진 다음 청와대 인근에 있는 효자동 사랑방의 국빈선물전시관에 일부가 전시된다. 1993년에 개관한 효자동 사랑방에는 전직 대통령들이 외국 정상과 주요 인사들에게 받은 선물들도 전시돼 있다. 1년의 대여 기간을 두고 새로 받은 선물이나 미 공개된 선물을 과거 전시했던 다른 선물과 선별적으로 교체, 전시한다.전시관은 미주·아시아·오세아니아·아프리카·유럽 등 대륙별로 나눠져 있으며, 현재 100여점의 귀중한 선물들이 진열돼 있다.

이 가운데 진귀한 물품 몇가지만 살펴보면 북한 김일성 주석이 박정희 전대통령에게 보낸 액자, 북한 연형묵 총리가 노태우 전대통령에게 보낸 ‘소라장식 도자기’, 캐나다 박물관에서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보낸 ‘돌조각 물개’, 중국인민외교학회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보낸 ‘거북상’ 등이 있다.청와대 홈페이지(www.president. go.kr)의 ‘청와대 역사관’에도 국빈선물전시관에 전시돼 있는 물품 사진들이 올려져 있다.역대 대통령들이 외국에서 받은 선물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막연히 수천여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전직 대통령들 가운데 일부는 재임 중 받은 선물을 개인적으로 소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그다지 비싼 물품도 아니고 극히 개인적인 친분으로 주고받은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다.

부시, 가장 먼저 선물 보내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2003년 취임 이후 지난 6월말까지 해외 순방 중 받은 선물은 모두 164점인 것으로 얼마 전 내역이 공개된 바 있다. 이 선물들은 현재 대다수가 국립민속박물관에 보관돼 있다.국가원수로서 가장 먼저 받은 선물은 취임축하 선물로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보내온 은제그릇이다. 이어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로부터 칠기공예그릇, 미국 콜린 파월 국방장관에게서는 철제 기마병사상 등을 선물받았다. 이외에도 링컨 대통령 연설문(부시 대통령), 일본 도자기(아키히토 일왕), 조어대 산수화(중국 후진타오 주석), 엽총(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철제 독수리상(폴란드 크바시니예프스키 대통령) 등 선물받은 품목은 다양하다. 태국의 탁신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초상화를 선물하기도 했다.대통령과 함께 해외순방에 나서는 부인도 물론, 선물을 받는다. 대통령 부인들이 받아서 신고한 물품은 주로 장식용 접시나 보석함, 찻잔 세트, 실크 옷감 같은 아기자기한 것이 많다.

정대철,‘노 대통령 째째하다’
한편, 얼마 전에는 남북이 팽팽히 대치하던 냉전시대에도 남북의 정상들이 특사 등을 통해 선물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확인돼 화제가 됐었다.당시 아리랑 공연 및 평양문화유적 관람을 하고 돌아온 방북 인사들에 따르면 평안북도 묘향산 초입에 있는 국제친선전람관에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이 김일성 주석에게 전달한 선물이 전시돼 있다. 박 전대통령은 은(銀) 담배함과 재떨이 세트를, 전 전대통령은 찻잔 세트를, 노 전대통령은 자신의 이름을 넣은 백자를 선물했다. 전직 대통령 외에 김종필 전국무총리와 이후락 전중앙정보부장이 보낸 선물도 눈에 띄었다고 한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경우 ‘6·15 공동선언문’ 전문이 쓰인 병풍과 휘호 세트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선물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진돗개 한쌍을 선물했는데 나중에 그 진돗개가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이 북한 언론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국내용 선물은 어떨까. 김영삼 대통령 시절부터 청와대는 설이나 추석 명절이면 대통령 내외 명의로 사회 각계각층에 선물을 보내고 있다.YS는 대통령이 되기 전 명절만 되면 거제도에서 잡아 올린 멸치를 동료 정치인과 기자들에게 돌려 ‘YS 멸치’는 국회 주변에서 유명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나서 ‘YS 멸치’는 자취를 감췄고 선물의 격이 특산품 등으로 높아졌다. 노무현 대통령도 취임 후 명절이 되면 전통 민속주와 농촌 특산물 등으로 선물세트를 특별 주문해 4천~5천명 정도의 취약계층과 사회 지도층 인사 등에게 돌리고 있다. 특히 지역화합을 상징하는 차원에서 민속주가 영남산이면, 특산물은 호남산으로 채우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가령, 지리산 복분자로 호남 지역에서 만든 복분자술과 경남 합천에서 생산된 한과를 함께 포장하는 식이다. 한 세트 당 가격은 대략 4~5만원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선물은 그야말로 공식적인 것이다.

공개되지 않고 은밀하게 전달되는 대통령의 명절 선물은 따로 있었다. 물론, 역대 대통령의 씀씀이에 따라 명절 선물의 규모는 천차만별이었다.현정부 출범 초기인 2003년 9월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의 정대철 대표는 역대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추석 선물을 공개하며, 노무현 대통령의 스타일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한 적이 있다. 그는 “과거 박정희·전두환 전대통령은 봉황 문양이 새겨진 인삼 등을, 노태우 전대통령은 100만~200만원을 국회 의원회관으로 보내왔고, 김영삼 전대통령은 항상 멸치, 김대중 전대통령은 뭔가 작은 선물들을 보냈다”고 소개했다. 이어 정 대표는 “추석 때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우리 문화이고 난 그게 아름다운 장면이라 생각하는데, 노 대통령은 ‘코드’가 달라서인지 전혀 선물이 없다”며 “그러다 보면 자칫 정(情)을 잃어버릴 수 있다. 대통령이 ‘판공비’ 써서 선물 보낸다고 욕할 사람이 있겠느냐”고 덧붙였다.한편, 지난해 행정부처 가운데 외국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가장 많이 신고한 기관은 대통령 비서실인 것으로 얼마 전 확인됐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작성한 2005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행정부의 선물 신고 건수는 모두 231점이었으며, 이 가운데 전체의 80%를 차지하는 187점은 대통령 비서실이 신고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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