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 가운데 기자들이 알거나 낌새를 알아차렸으면서도 기사화하기 어려운 사안이 몇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대통령의 건강 문제다. 대통령의 건강은 국가 전체의 안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다, 정치적으로 갖는 파괴력도 엄청나기 때문에 섣불리 기사화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청와대 안에선 대통령의 건강을 입밖에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 돼 있다. 대통령 주치의나 청와대 부속실장 등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항상 “건강에 전혀 이상없다”는 원론적인 답만 돌아 온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요즘 담배를 피시냐’, ‘술은 어느 정도 하시냐’고 물으면 “1급 비밀”이라며 농담을 섞어 얼버무리기 일쑤다. 대통령의 건강 관리 방법 자체가 ‘경호 대상’에 속하는 게 아니냐는 느낌을 받기도 할 정도다.그런데 얼마전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사석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 가운데 건강 관리에 대해 비교적 구체적으로 언급, 관심을 모았다.

“아침 5시에 기상해서 한 시간 가량 스트레칭과 요가를 섞어서 하신다. 그렇지만 늘 아침 운동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워낙 식사를 잘 하시는 만큼 적정 체중을 유지하려면 1주일에 두 번 정도는 한 시간씩 더 해줘야 되는 게 아니냐는 말씀을 한다. 저녁에는 골프 스윙과 스텝머신, 산책 등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을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하신다. 담배는 완전히 끊으셨다.”대통령의 건강은 잘 짜여진 시스템에 의해 체계적으로 관리된다. 역대 대통령은 모두 주치의가 있었는데 모두 ‘양방’ 의사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기다 한방 주치의를 따로 두고 있다. 왕조 시절 어의(御醫)의 맥을 이어받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 “과거 한방 치료로 효과를 많이 봤다. 한방에서도 주치의를 두면 양·한방 의료협진도 이뤄질 수 있고 좋지 않겠느냐”고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의 양방 주치의는 4대째 의사 집안 출신인 서울대학병원 내과교실 송인성 박사이고, 한방 주치의는 3대째 한의사 집안 출신인 경희대학교 한의학대학 신현대 교수다.

대통령 주치의 근거리 대기
대통령 주치의가 청와대에 상근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통상 대통령과 30분이내의 지근거리에 항상 긴장상태로 머물러야 한다. 또 대통령의 휴가·해외순방·지방방문 때는 통상적으로 수행을 하게 된다. 재임 중 수석비서관(차관)급 대우를 받으며, 대개 2주에 한 번씩 청와대에 들러 대통령과 가족들의 건강을 체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치의 외에도 대통령 가족의 건강을 돌보는 전문의료진이 있다. 양·한방 양쪽이 각각 ‘대통령 의료자문위원회’를 구성해 두고 있는 것이다. 양방은 18명, 한방은 10명, 치과는 5명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양쪽 모두 우리나라 최고의 의료진으로 구성됐다고 한다.상근을 하면서 대통령의 일일 건강을 챙기는 사람은 대통령 경호실 소속으로 정식 국가공무원인 의무실장이다. 의무실장은 대통령의 거의 모든 일정에 함께 참석해 ‘돌발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반 국민들도 그렇듯이 대통령도 건강은 먼저 스스로가 챙겨야 한다. 이와 관련, 최근 사임한 김우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노 대통령이 과중한 국정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소개한 적이 있다. “대통령에게는 낙이 있다. 친손녀딸과 지낼 때 매우 즐거워하신다. 그 손녀가 재롱을 잘 떨어 대통령을 아주 즐겁게 한다. 그래서 비서들이 평일에도 퇴근 시간 후에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빨리 관저로 가서 손녀랑 노시라’고 등을 떼밀기도 한다. 아들(건호씨) 내외가 바깥에 사는데 딸을 데리고 청와대에 자주 오는 편이다.”

반환점 돈 노 대통령 체력 저하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지난 8월25일로 반환점을 돌아섰다.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힘이 빠졌음을 의식해서인지 노 대통령은 최근들어 선거구제 개편을 전제로 한 ‘대연정론’과 이에 맞물린 ‘개헌론’ 등으로 앞장서 이슈를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요즘들어선 또 다시 노 대통령의 ‘말’이 화제다. 대연정론을 둘러싸고 나날이 진도가 나가는 말의 내용도 그렇지만 말의 양도 갈수록 늘어난다. 노 대통령은 최근들어 언론사 간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등과 청와대에서 오찬이나 만찬을 함께 하면서 간담회를 갖는 일정을 부쩍 늘렸다. 그럴 때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물론, 비서실 직원들도 초긴장을 한다. 대통령이 이번에는 또 무슨 말을 해 평지풍파를 일으킬까 노심초사하는 것이다.지난 8월30일 열린 노 대통령과 여당 소속 의원들의 만찬은 그런 측면에서 압권으로 꼽힌다. 당초 이날 만찬 예정 시간은 오후 6시30분부터 8시30분까지 두 시간 동안. 그러나 실제 만찬이 끝난 시간은 저녁 9시 40분경이었다. 예정시간을 1시간10분을 넘겨 3시간10분 동안 진행된 것이다.

더욱 재미 있는 것은 이 가운데 노 대통령이 마이크를 잡고 발언한 시간이 1시간40여분으로 절반 가량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노 대통령의 장광설이 결과적으로 정신건강뿐 아니라 육체건강 관리법이 된다고 해석하는 참모도 있다. 노 대통령은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다. 잡곡밥에 된장, 미역, 북어, 사골곰국, 채소로 만든 담백한 나물류와 국물김치를 좋아한다. 입맛이 없을 때는 삼계탕을 찾는다. 그런데 식사량이 많으면서도 정상 체중을 유지하는 데 대해 이 참모는 “대통령이 섭취하는 칼로리의 많은 부분은 말을 하는 것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어떤 자리에서나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함으로써 스트레스도 풀고 칼로리도 소모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또 하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잠’이다. 부인 권양숙 여사는 “화가 나면 한잠 푹 자고 털어낸다”고 전한 적이 있다.

특유의 건강관리법 실행
노 대통령은 부산상고 2학년 때 담배를 배웠다고 한다. 이후 하루 한갑 반을 태우며 ‘애연가’ 반열에 올라섰다. 정치를 하면서 몇차례 금연을 시도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한다. 특히 대통령 취임 이후 담배를 끊었다가 탄핵정국을 맞아 다시 담배를 피웠다는 말도 있다. 지금은 완전 금연에 성공했다는 소문이다.청와대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노 대통령의 키는 168cm, 몸무게는 68kg이다. 신체질량지수(Body Mass Index:BMI, 카우프지수)에 의한 비만도 계산법으로 보면 BMI 24.09로 ‘정상’이다.(저체중: 20 미만, 정상 : 20~24, 과체중 : 25~29, 비만 : 30 이상). 주량은 ‘폭탄주 1~2잔에 소주 반병’이다. 주량이 약한 편이지만 분위기를 좋아하는 탓에 자신이 주관하는 공·사 모임에서는 포도주를 시킨다. 앞서도 잠깐 소개했지만 노 대통령에게는 특유의 건강관리법이 있다. 새벽에 눈을 떠 거실에서 30분 가량 맨손체조와 스트레칭을 섞어 하는 것인데, 그 방법이 매우 기이하다고 한다. 거실에서 가부좌(跏趺坐)로 심호흡을 하고 물구나무 서기를 한 뒤 온 몸의 관절을 비트는 일종의 요가를 한다. 그 모습이 얼마나 이상스러운지 대통령 후보 시절 TV 카메라가 촬영을 하려고 하자 권양숙 여사가 “그것만은 찍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는 일화가 있다.등산도 즐긴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산행정치’를 시작했고, 대통령이 된 뒤에는 거의 매주 일요일마다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을 오른다. 직무정지 중이던 지난 4월 11일과 올해 3월27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함께 북악산을 올랐을 때도 젊은 출입기자들보다도 지치는 기색없이 산을 잘 탔다. 다만 대통령 당선자 시절 허리 디스크 치료를 받고 복대를 맨 모습이 공개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전임자인 김대중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건강과 관련한 음해성 루머에 적지않은 피해를 봤다. 최근 공개된 옛안기부 ‘X파일’에서도 부분적으로 드러났지만 1997년 대선 때는 여권 내부에서 ‘DJ의 건강 이상설’이 선거 판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비장의 카드로 인식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선거운동 과정에서 일정이 늘어나면서 김대중 후보의 건강상태에 이상 징후가 포착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화들짝 놀란 DJ측은 나중에 대통령 주치의가 된 연세대 의대 허갑범 교수에게 의뢰했고. 허 교수는 ‘DJ 건강 이상무’를 발표했다. 당시 실제로 DJ의 건강이 악화돼 있었고, 허 교수의 발표가 오히려 ‘덮기’라는 견해도 있었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취임 후에도 DJ의 건강은 정권 내부에서 비상한 관심사였다.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 공동정권의 한 축이었던 자민련에서 ‘대통령의 유고(有故)’에 대비, 정권을 이어 갈 시나리오까지 만들어 뒀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DJ 임기중 건강이상설 나돌아
이후에도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기간 중 몇 차례 건강에 이상징후를 보인 것이 사실이다. 2002년 1월 연두기자회견 때 TV 화면에 비친 대통령의 모습이 이상했다든가, 서민생활을 살피기 위해 시장에 나갔다가 동문서답을 했다는 등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돌았다. 급기야 그 해 3월 ‘대퇴부염좌’를 앓고 있다는 청와대의 확인이 있었고, 이후 공식 행사장으로 이동하면서도 휠체어를 사용했다. 또 “건강이 좋아져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게 됐다”고 청와대가 발표한 다음날인 4월9일 밤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과의 국빈만찬이 끝난 뒤 누적된 과로에 위장장애 증세를 일으켜 국군 서울지구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김영삼 대통령은 ‘머리는 빌릴 수 없지만 건강은 빌릴 수 있다’는 자신의 신조에서 알 수 있듯이 건강에 무척 신경을 쓰는 스타일이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조깅’과 ‘등산’이고, 퇴임 후 의사가 무리한 운동을 만류하자 수영을 즐기는 등 여전히 78세 노인 같지 않은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앞서 군 출신 대통령들의 건강은 그 자체가 그다지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다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육사 시절 축구부 주장(골키퍼)을 지낸 경력을 늘 자랑으로 삼았다. 노태우 대통령은 테니스를 즐겼는데 처 고종사촌인 박철언 전 의원, 처남인 김복동 전 의원, 동서인 금진호 전 상공부 장관 등 친인척들과 함께 테니스를 치면서 정치현안을 논의하곤 했다. 말로는 좋지 않았지만 어쨌든 90세 가까이 장수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균형 있는 식사, 청결한 생활, 규칙적 운동, 충분한 휴식, 소식(小食) 등 절제된 생활을 했다고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생전에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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