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실형에 친문 차기 대권 후보 ‘빨간불’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여당 주류인 친문진영의 차기 대권 후보 문제로 인한 고민이 점차 깊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친문의 적자로 불렸던 김경수 경남지사가 지난 6일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2년 실형이 선고됐기 때문이다. 친문진영은 김 지사의 남은 대법원 판결에 기대를 거는 모양새지만 결과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아직까진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상황이다. 친문진영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이어 김경수 지사 까지 재판을 기다리는 상황이 되면서 적통을 잇는 차기 후보자 모색은 안개 속에 놓였다. 일요서울은 차기 후계자로 고심하는 친문진영의 속내를 알아봤다. 

김경수 경남지사 [뉴시스]
김경수 경남지사 [뉴시스]

 

-이낙연-이재명 양강 구도 속 김두관·유시민·정세균 '기지개'

김경수 경남지사는 지난 6일 ‘드루킹 댓글조작’을 조종했다는 혐의를 뒤집지 못하고 1심에 이어 항소심(2심) 에서도 유죄를 받았다. 김 지사가 드루킹 김동원씨가 진술한 “(김 지사가)2016년 11월9일 킹크랩 시연회에서 댓글조작 활동을 승인했다”는 내용을 반박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부장판사 함상훈 김민기 하태한)는 김경수 경남지사 사건 항소심 선거공판에서 컴퓨터등이용장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이 부분에 대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컴퓨터등이용장애는 드루킹 김동원씨와 짜고 네이버 댓글조작 공작을 벌였다는 내용이다. 재판에 성실히 참여한 점 등을 참작해 구속하지는 않았다. 다만 공직선거법 혐의는 1심 판단과 달리 무죄였다. 공직선거법 혐의 내용은 2018년 지방선거까지 댓글활동을 계속해주는 대신 김씨 조직의 일원 중 한명인 도모 변호사를 센다이 총영사 직에 임명해준다는 조건으로 공직을 거래했다는 내용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2016년 11월9일 당시 국회의원인 김 지사가 경기도 파주시 경제공진화모임(경공모) 사무실에서 댓글 순위 조작 프로그램인 ‘킹크랩’ 프로토타입 시연을 참관했는지 여부다. 1심 재판부는 경공모 운영자 ‘드루킹’ 김동원씨, 회원 ‘둘리’ 우모 씨 증언을 바탕으로 김 지사의 참관 사실과 댓글조작 활동을 승인했다고 인정했다. 드루킹 김씨는 경공모라는 진보 성향 단체 수장이었다. 김씨는 진보 정권이 득세하면 기업관련 법제를 개정해 재벌을 개혁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외곽에서 조직을 만들어 정치활동을 했다. 김씨 조직은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과 가깝게 지내다 사이가 멀어지자 2016년 6월 송인배 전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김 지사를 소개받았다. 

김씨 조직은 포털사이트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진보 진영에 유리한 게시물, 댓글 등을 작성하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했다. 이때까지는 조직원들이 직접 게시물을 작성하고 ‘좋아요’ ‘추천’ 버튼을 눌러 상위로 노출시키는 식으로 수작업을 했다. 그러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책 ‘빙하는 흐른다’를 둘러싸고 여론전이 치열해지자 수작업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매크로프로그램 ‘킹크랩’ 개발을 기획했다. 더 손쉽게 댓글조작 작업을 수행할 컴퓨터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김씨는 2016년 11월9일 김 지사를 ‘산채’라 불리는 경공모 사무실에 초대했다. 특검은 이날 저녁 김씨가 김 지사(당시 국회의원) 앞에서 킹크랩이 댓글을 조작하는 장면을 시연하고, 댓글조작 활동을 승인해 달라고 김 지사에게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관해 김씨는 “이걸 하지 않으면 다음 대선에서 또 진다”면서 김 지사에게 “고개를 끄덕여서라도 허락해달라”고 말했고, 김 지사가 고개를 끄덕여 승인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진술했다. 이후 김씨는 19대 대선 이후까지 댓글조작 활동을 지속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김 지사가 2016년 11월9일 킹크랩 시연회에 참석했고 이 자리에서 댓글조작 활동을 승인했다고 판단했다. 김 지사는 이날 김씨 일당이 사무실로 쓰던 ‘산채’에서 김씨 일당을 만난 것은 맞지만, 킹크랩 시연회는 물론 킹크랩에 대해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모두가 예외없이 2016년 11월9일을 향해있다. 단순히 2016년 11월9일이 아니라 김 지사가 경공모 사무실을 방문한 시간대로 좁혀지고 있다”며 증거를 종합하면 김 지사의 킹크랩 시연회 참석을 사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먼저 재판부는 경공모 조직원 ‘둘리’ 우모씨가 킹크랩 개발에 이용한 인터넷 계정의 로그를 근거로 내세웠다. 로그는 해당 계정의 활동내역을 알려주는 일종의 흔적이다. 우씨가 이용한 계정 로그를 보면 11월4일부터 7일까지 3개의 아이디로 킹크랩이 수행해야 할 매크로 동작을 안정화하는 작업을 한다. 이 작업은 7일 새벽쯤 마무리되고 그때부터 9일 낮까지 로그를 보면 한두 번씩 시험 삼아 작동시켜보는 듯한 활동이 보인다. 김 지사가 다녀간 이후부터는 하나의 계정으로 매크로 동작을 세밀화 하는 등 본격적인 개발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부는 이러한 개발과정은 합리적이지 않아 보인다고 꼬집었다. 킹크랩은 한 번에 최소 200개의 계정을 동원하는 매크로 프로그램이라 계정이 서로 부딪힌다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계정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게 하려면 먼저 하나의 계정으로 정교한 움직임을 만들고 나중에 여러 개의 계정을 추가하는 것이 순서로 보이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재판부는 김 지사 앞에서 시연할 프로토 타입을 먼저 개발해야 했다는 우씨의 진술을 통하면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하다고 했다. 우씨는 로그가 발견되기 전부터 시연을 했다고 하고, 프로토 타입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정확히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지사 측은 김씨 일당이 경찰 수사에서부터 입을 맞추고 자신을 궁지로 몰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서로 입을 맞추고 허위진술을 한 사실은 분명 있으나 거짓, 과장된 진술을 했다고 해서 그들의 진술 전체를 없는 것으로 돌리는 것은 형사재판의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여러 증거에 의하면 김씨가 김 지사에게 킹크랩 브리핑을 했고 프로토 타입을 시연했다는 김씨, 우씨의 일관된 진술을 믿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 외에 재판부는 김씨가 김 지사에게 텔레그램 등을 통해 정기적으로 보고한 ‘온라인 정보보고’중 2016년 12월28일. 2017년 3월14일 문서에 ‘킹크랩’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점도 김 지사가 킹크랩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판단했다. 

김 지사는 2심 선고 후 법정을 나오며 심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진실의 절반만 밝혀졌고 나머지 진실의 절반은 즉시 상고를 통해 대법원에서 반드시 밝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김 지사는 “특히 이번 판결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로그 기록을 통해 다양하게 제시된 입증 자료들을 충분한 감정 없이 유죄로 판결한 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김 지사에 대한 재판부의 2심 판결에 여당 주류인 친문진영은 충격에 빠졌다. 지난 13일 일요서울과 종로 한 카페에서 만난 여당 관계자는 “기초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들 상당수가 모여 김 지사를 대선 후보로 옹립하기 위한 조직을 만들려고 시도했다”며 “하지만 김 지사의 재판 결과로 인해 출범이 보류됐다”고 전했다. 친문 적자로 꼽히는 김 지사가 이번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경우 친문진영은 김 지사를 여권 차기 대선 주자로 부상시킬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 ‘싱크탱크’로 다시 뭉친 친문 '원점'에서 재검토

친문진영은 움직임을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우선 정권재창출을 목표로 내걸고 반드시 정권을 지켜내기 위한 공감대가 모인 것이었다. 친문계의원 중심의 이 모임은 ‘민주주의 4.0연구원’(가칭)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한다. 민주주의 4.0연구원이라는 가칭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에 이어 향후 민주당 4기 정부에서 고민하고 추진할 과제를 제시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현역의원만 50명이 넘게 참여하며 정책 전문가 등도 영입해 사단법인을 등록할 예정이다. 오는 22일 창립 세미나를 열기 위해 지난 1일 준비위원을 맡은 의원들을 중심으로 사전 모임도 가졌다고 전해진다. 이사장에 도종환 의원을 추대하고 이사진도 선임했다. 이 모임은 홍영표, 전해철, 김종민 의원을 비롯해 이해찬 전 대표 측근인 윤호중 의원과 도종환, 전재수, 정태호, 이광재, 김영배, 박주민, 강병원, 최종윤, 허영 의원 등 현역 의원이 준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여의도 국회 앞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전문 연구인력 고용 등을 위해 현역 의원들은 1인당 가입비 명목으로 500만~1,00만 원 정도를 내고 참여한다고 한다. 
이들은 다음 대선의 키워드를 ‘대전환’으로 잡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민주주의와 거버넌스 문제를 비롯해 한반도 신(新)평화체제, 경제 및 노동, 부동산 문제 등 굵직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체적 정책과 비전 마련을 계획 중이다. 계파 중심이 아닌 가치 중심으로 당 안팎의 인사들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되는 친문진영의 ‘부엉이 모임2기’아니냐는 지적을 염두에 둔 모양새다. 

하지만 이 모임은 기존 친문진영의 ‘부엉이 모임’과 상당 부분 겹친다. 이들은 부엉이처럼 밤낮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지킨다는 의미로 ‘부엉이 모임’을 구성했다가, 친문 패권주의 논란으로 인해 2018년 공식 해체했다. 이들은 특정 인물을 대권주자로 밀어주기 위한 모임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여권 안팎에선 여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친문의 적통이 아니라는 점에서 제3의 후보를 염두에 두고 친문진영이 세력화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친문진영의 표심은 어디를 향해 있을까. 

 

- 이종훈 “친문, 수렴청정(垂簾聽政)과 지분행사 할 수 있는 후보 원해”

일요서울은 친문진영이 차기 대선을 위해 본격적인 세력화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어떤 후보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궁금했다.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는 지난 12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친문진영이 수렴청정(垂簾聽政)과 지분행사를 할 수 있는 후보를 찾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김경수 경남지사가 지난 6일 2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친문진영으로선 차기 대권 후보로 김 지사에 대한 기대가 컸을 것으로 보인다. 
▲ 친문진영에서 처음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차기 대권주자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조 전 장관은 여러 가지 논란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재판이 진행 중이다. 앞으로 지켜봐야겠으나 재기가 쉽지 않다. 이어 김 지사도 2심에서 까지 실형을 선고 받았다. 친문진영에선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 일각에선 친문진영이 김 지사를 대체할 인물로 원조 친노로 분류되는 이광재,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및 신친문인 정세균 국무총리와 추미애 법무부장관을 차기 대권 후보로 염두에 두었다는 말이 나온다.  
▲ 김두관 의원과 유시민 이사장은 친노나 범친문으로 분류할 수는 있지만 친문핵심으로 분류하긴 어렵다. 그리고 이광재 의원도 원조 친노로서 친문과 그렇게 가깝다고 보지 않는다. 정 총리와 추 장관은 기회를 엿보는 형국이다. 하지만 친문진영에서 볼 땐 지금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과 여권의 차기 대권 후보로 선두를 다투는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의문이 들것이다. 
- 친문진영의 의문은 무엇인가. 
▲ 배신에 대한 검증이다. 자신들이 내세우는 후보에게 오히려 배신을 당할 수 있다는 걱정과 우려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거론되는 후보들 중 자신들과 더 가까운 후보를 물색하겠지만 분명한 친문 색깔을 가진 후보를 새로 발굴할 가능성이 크다. 아직까지 친문이 기존 거론된 후보에만 의지할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 
- 친문진영이 생각하는 새로운 인물은 누구로 생각하나.
▲ 아직 장담하긴 어렵지만 전해철 의원과 최근 서울시장 재·보궐 출마를 거론한 박주민 의원도 배제하긴 어렵다. 그리고 김경수 경남지사와 조국 전 장관도 무죄나 무죄에 준하는 판결을 받는다면 어떻게든 친문진영은 그들을 다시 옹립하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 친문진영이 ‘민주주의 4.0연구원’(가칭)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세력화에 나서고 있다. 
▲ 친문 진영의 모임이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모임의 하나일 뿐이다. 차기 대권 주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이 리더십과 정치력이 있는 가운데 용의주도하고 치밀해야한다. 근데 친문 진영에서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인물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세력화에 나섰다고 해서 그 결과가 보장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수렴청정과 배신을 염두에 두고 그에 걸맞은 후보를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 지사 중 선택할 가능성은 없는가. 
▲ 당연히 후보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선 둘 중 한명을 택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대표가 지적한 것처럼 친문진영은 아직까진 자신들을 대변해줄 후보를 찾기 위해 고심 중인 것으로 보인다. 친문의 제2의 김경수 찾기가 성공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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