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여의도 정치무대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70년대 출생으로 90년대 학번 출신 여야 정치인을 뜻하는 97세대의 약진이 대표적이다. 2000년대 초반 386으로 불렸던 이른바 86그룹(60년대 출생·80년대 학번)이 이념과 진영논리에 매몰되면서 기득권화됐다는 비판과는 달리 97세대의 행보는 상대적으로 보다 자유롭고 실용적인 게 특징이다. 여야는 물론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과거 집단주의 성향의 선배 세대와는 전혀 다른 97세대는 21대 국회에만 40여명에 이른다. 이들이 정치권의 주류로 부상할 경우 거대한 변혁의 첫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97세대의 등장은 과거 71년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른바 40대기수론을 내걸고 정치혁신에 나섰던 모습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지난 200016대 총선을 전후로 기성 정치무대에 등장했던 386그룹이 2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기득권 세력으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볼 때 97세대의 새로운 비상에 기대를 거는 시선도 적지 않다. 한때 유행했던 86세대 전면 물갈이론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올 정도다.

- 여의도정치 세대교체 바람 97세대 급부상 86세대 대비 탈이념.실용적
- 시대정신 뚜렷한 비전 제시 한계 대체 대안세력 관측엔 전망 갈려

여야 안팎의 주목받는 97세대는 한둘이 아니다. 면면을 뜯어보면 모두가 한국정치의 미래 기대주다. 우선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재선의 박용진·박주민 의원이 가장 기대를 모은다. 삼성 저격수로 이름을 날린 박용진 의원은 최근 차기 대권 도전을 시사했다. 세월호 변호사로 유명한 박주민 의원도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도전을 준비 중이다. 1야당인 국민의힘소속 97세대도 쟁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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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국회에서 현 정부의 부동산실정을 비판해 깜짝 스타로 떠오른 윤희숙 의원은 햇병아리 초선 신인이지만 서울시장 후보로 유력 거론된다. 검사내전이라는 베스트셀러 저자인 김웅 의원도 추미애 법무부장관 저격수로 떠오르면서 수도권을 대표하는 기대주로 떠올랐다. 아울러 정의당에서는 김종철 대표가 권영길·노회찬·심상정 등 이른바 권노심이후 진보정당의 차세대 리더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치권의 세대교체를 주도하고 있는 97세대의 부상을 짚어봤다.

차기대권부터 서울시장까지97세대 권력의지 강력

박용진, 뉴시스
박용진, 뉴시스

97세대의 등장이 가장 두드러진 곳은 민주당이다. 민주당이 과거부터 선호해온 인재수혈 방식은 주로 운동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출신들이 적지 않았다. 다만 이념의 쇠퇴와 실용주의 물결이 넘쳐나면서 당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그룹들도 보다 젊어졌다. 다소 경직된 이미지의 86세대와는 달리 실용적인 접근을 강조하는 탈이념적 지향성이 특징이다. 아울러 과감한 도전으로 각종 선거에 나서는 권력의지 또한 강력하다.

재선의 박용진·박주민 의원을 비롯해 70년대생들이 당의 전면에 등장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이른바 삼성저격수로 불리는 박용진 의원은 97세대의 선두주자다. 20대 국회 시절 유치원 3법 통과라는 실적을 갖춘 박 의원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차기 대권과 관련, “깊게 고민하고 있다며 사실상 대권도전을 선언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포와 이재명 경기지사의 양강구도로 굳어진 차기 구도에 유의미한 균열은 쉽지 않지만 차차기 리더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박 의원은 특히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이 있었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가 평소 소신이라고 재평가해 주목을 끌었다. 초선 시절 득표율 1위로 최고위원에 올랐던 박주민 의원은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 정치적 체급을 키웠다.

특히 유력 당권주자였던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 이어 근소한 차이로 3위를 차지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내년 4월 서울시장 보선 도전이 유력한 박 의원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4선 중진 우상호 의원과의 경쟁이 유력하다. 박 의원으로서는 서울시장 경선에서 실패한다 해도 차차기 서울시장 이미지를 남길 수 있다.

이밖에도 민주당 안팎에는 70년대생 정치인들이 정책과 실무를 포함해 당의 전면에 포진해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강병원 의원도 대표적인 97세대의 일원이다. 아울러 지난 총선에서 석패했지만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의 일원이었던 김해영 전 의원도 주목을 끌고 있다. 김 전 의원은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과 더불어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 유력 후보다.

한편 정의당에서는 김종철 대표가 가장 주목받고 있다. 당 대표 선거에서 현역 의원을 누른 저력을 보여준 데 이어 대표 취임 이후 과감한 행보도 이슈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민주당 2중대를 거부하면서 대안적 진보정당으로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특히 지지율 상승은 물론 미니정당의 한계를 벗어나 낙태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 이슈몰이를 주도하고 있는 것도 김 대표의 역량이다. 진보진영의 차기 대권후보도로 거론되고 있다.

박주민, 뉴시스
박주민, 뉴시스

2의 남원정 꿈꾼다국민의힘 97세대 차세대 리더

보수 진영은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쑥대밭이 됐다. 특히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이후 약 10여년에 걸쳐서 친이 vs 친박이라는 고질적인 계파갈등 구조가 지속되면서 차세대 리더들을 키워내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더구나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까지 연전연패하면서 절망의 바닥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보수 특유의 꼰대 이미지는 물론 시대착오적인 권위주의에 매몰된 탓에 기득권 정치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피 수혈에 실패했다.

특히 지난 대선 이후 반()문재인 연합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시하는데도 완전히 실패했다.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21대 총선 참패 이후다.

보수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정치인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등장한 것이다. 안보와 성장담론에 치중한 올드보수와는 전혀 다른 그룹이다. 특히 70년대 이후 출생으로 90년대 학번인 97세대 의원들 대다수가 초선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당 쇄신과 개혁을 주도할 세력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사는 21대 국회 최대 신데렐라로 떠오른 윤희숙 의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출신인 윤 의원은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정조준한 나는 임차인입니다5분 연설로 벼락스타가 됐다.

특히 정책분야의 내공과 여성이라는 차별성 덕에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파격후보로 거론될 정도도 정치적 비중이 급상승했다. 검사 출신인 김웅 의원의 정치적 행보를 주목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김 의원은 현 정부의 검찰개혁의 허구성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보수진영이 외면했던 노동 이슈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윤희숙, 뉴시스
윤희숙, 뉴시스

1972년생인 강민국 의원도 떠오르는 스타다. 올해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라임·옵티머스 펀드사태의 문제점을 정조준하면서 정책적 능력을 인정받았다. 경남 진주를 지역구로 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차세대 경남지사 후보군이다. 아울러 브랜드 전문가로 당 쇄신 이미지를 주도하고 있는 허은아 의원과 과감한 세대교체론을 지도부에 건의했던 40대 초반의 김병욱 의원도 기대를 모으는 97세대의 일원이다.

당 외곽에도 주목받은 97세대가 적지 않다. 김세연·이언주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탄핵 이후 보수의 반성과 쇄신을 강조하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김 전 의원은 여전히 장외 블루칩이다. 보수 여전사로 불리는 이 전 의원은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86세대 아류 혹은 대안97세대 새로운 비전 선보여야

2000년대 초반 386세대로 불린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한국 정치의 새로운 희망이었다. 80년대 운동권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386세대는 김영삼·김대중·김종필로 상징되는 3김 정치 종식 이후 노무현 대통령 등장과 더불어 한국정치의 주류로 떠올랐다. 참여정부 시절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며 권력의 핵심이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역시 참여정부 시절 대표적인 386세대의 일원이었다. 이밖에도 80년대 학생운동 지도부였던 전대협 출신의 이인영 통일부 장관, 우상호 민주당 의원도 대표적인 386그룹이었다. 보수진영 역시 386세대와는 결이 다소 다르지만 새로운 정치를 모색하는 그룹이 없지 않았다.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으로 상징되는 소장파 그룹이었다. 남원정 그룹은 국민의힘 전신이었던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시절 당의 급격한 우경화를 방지하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냈다.

 

김종철, 뉴시스
김종철, 뉴시스

다만 남경필 전 경지지사는 2017년 대선 도전에 나섰다가 실패한 뒤 2018년 경기지사 선거에 패배한 뒤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했고 정병국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지난 총선에서 불출마로 현실정치에서 물러나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홀로 대권도전을 준비 중이다. 보수진영에서는 남원정 그룹에 버금가는 차세대 후보군의 부상은 아직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여야의 대표적인 386세대 정치인들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여야 관계없이 86세대는 권력을 비판하면서 역설적으로 기득권 권력이 돼버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의 새로운 흐름으로 부상한 97세대는 어떨까? 과연 86그룹의 실패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이른바 86세대가 장밋빛 청사진을 그리면서 정치권에 뛰어들었지만 총선을 거치고 선수가 쌓여갈수록 그들이 비판했던 기득권 세력과 닮아간 것처럼 97세대 역시 비슷한 길을 걸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86세대 출신인 전직 보좌관은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70년대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97세대만의 지향점이나 특성은 사실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97세대의 등장은 신선하지만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흐름을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97세대는 이전 86세대의 실패를 교훈 삼아서 보다 새로운 접근법으로 한국사회의 다층적인 갈등구조를 풀어낼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없지 않다.

 

세대론으로 살펴보면 97세대는 이전 86세대는 물론 80·90년대 세대를 거쳐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2000년 전후 세대와도 교류할 수 있다. 진영논리에 매몰된 이념이 아니라 보다 실용적인 사고로 무장한 점이 97세대의 강점라는 분석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기득권 정치는 지나치게 대의명분을 내세우면서 이념과 진영에 좌우된 사생결단식의 정치를 앞세우고 있다소속 집단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보다 중시하고 실용적인 성향을 고려하면 97세대의 전면 부상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정치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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