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립편집위원
이경립편집위원

어렸을 때 독서를 끔찍이도 싫어했던 필자는 동화를 읽은 기억이 거의 없다.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그림카드와 함께 읽어주셨던 동화, 고전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정서적으로 매우 건조하게 자랐고, 정치학이라는 무미건조한 학문을 전공하게 되었다. 필자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업보일지 모르겠다.

쉰 살이 넘어 여성호르몬이 많아지기 시작해서인지 가끔은 시상도 떠오르고, 그것을 긁적긁적 운율을 맞춰 메모하는 습관도 생겼다. 그리고 어렸을 때 읽어보지 못했던 동화책을 뒤적이기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최근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동화책을 읽었다. 그러나 동심이 메말라서인지 재미도 없었고,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다만, 어린이들이 보기에는 ‘이상한 나라였겠구나!’라는 생각은 할 수 있었다.

2020년 12월 현재, 대한민국도 ‘이상한 나라’다. 누군가에게 특명을 받고 법무부장관이 된 사람은 그 특명을 이루고 사의를 표했다. 누군가에게 특명을 받고 검찰총장에 임명된 사람은 누군가에게 또 다른 특명을 받은 사람에 의해 직무를 정지 당하는 사상초유의 징계를 당했다. 그 누군가는 검찰총장의 징계를 결정하였고, 법무부장관의 사의를 받아들였다.

돌고 돌아오느라 참 고생도 많았다. 그만큼 국민들의 스트레스 지수도 높아졌다. 코로나19가 아직도 한창인데 누군가와 그에게 특명을 받았던 사람들은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미안한 생각이 들까?’ ‘이러한 생각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일까?’

2008년 제헌절에 개봉된 김지운 감독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일명 놈, 놈, 놈)은 668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공전의 히트를 했다. 좋은 놈 역의 정우성, 나쁜 놈 역의 이병헌, 이상한 놈 역의 송강호 등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배우들이 함께 출연한데다가, 서부극을 연상케 하는 스케일, 일제 강점기의 배경 등이 흥행을 가능하게 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의문이 든 것이 있었다. 열차털이범 송강호는 이상한 놈임에는 틀림없었지만, 현상금 사냥꾼인 정우성이 좋은 놈일까? 마적단 두목인 이병헌은 왜 나쁜 놈이지? 잘생긴 얼굴, 못생긴 얼굴, 이상한 얼굴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등치되거나, 분장기술이 그들을 좋은 놈으로 만들고, 나쁜 놈으로 만들고, 이상한 놈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뭐 이런 터무니없는 의문이었다.

공수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이를 공포했다. 이에 맞춰 윤석열 검찰총장은 2개월의 정직처분을 받았고, 임무를 완성한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하며 자유인이 되기를 준비 중이다.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의 서부활극을 보면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생각난 것은 왜일까? 역할로 보면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좋은 놈 역이고, 윤석열 검찰총장은 나쁜 놈 역이다. 그런데 이상한 놈 역할은 누가했을까? 이상한 놈은 마지막에 웃는 역할인데, 2020년판 서부활극에서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자신의 과오로 1년을 허비했으니 웃음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2020년판 서부활극은 극적인 재미가 없는 삼류활극이었다.

좋은 영화는 보고난 뒤, 그 여운의 길이로 평가된다. 12년이 지난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아직도 생생하게 여운이 남아 있다. 좋은 영화다. 2020년판 서부활극은 뒤처리를 못하여 찝찝한 느낌이다. 누군가가 빨리 개운하게 뒤처리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 누군가는 앞에서 언급한 그 누군가이다. 그 누군가가 모든 국민들을 위한 뒤처리를 태만히 한다면 그는 아마도 ‘이상한 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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