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인 2002년 10월 ‘선거용’으로 펴낸 저서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가 또 한번 구설수에 올랐다. 한나라당 수도분할반대투쟁위원회 소속인 정두언 의원이 12월1일 국회 본회의 5분발언을 통해 “노 대통령은 그의 책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에서 해양수산부장관 시절 해양수산부 청사의 부산 이전을 막은 것을 커다란 치적으로 자랑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 책에 그런 내용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78쪽~81쪽 사이에 나온다. 정 의원이 5분발언에서 부연한대로 “행정부처는 청와대와 국회의 중간에 모여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주장도 담겨 있다. 이 책의 내용은 노 대통령이 취임 후 신행정수도 건설과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면서부터 꾸준히 논란거리가 됐다.

그러다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사실상의 합헌 결정을 내리자 야당이 재탕·삼탕에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의 책은 아무리 권좌에 오르기 전에 썼고, 혹은 측근들이 대필해 준 것이라 하더라도 그만큼 역사성과 책임을 갖는다. 역대 대통령들은 어떤 내용의 책을 몇권이나 출간했는지 살펴 본다.노무현 대통령은 이전에도 저서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2004년에 한나라당 남경필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 시절 저술한 책 ‘여보, 나좀 도와줘:노무현 고백 에세이’에 나온 일부 문구만 인용해서 “대통령이 아내를 때린다”는 식으로 공격했다.앞서 대선이 한창일 때는 같은 책에서 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힘없는 어느 아주머니에게서 도리에 어긋나게 수임료를 받았음을 고백한 대목이 나온다고 상대방 진영에서 홍보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책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 두 가지 일은 노 대통령이 특유의 성격대로 표현을 너무 직설적으로 한데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여보 나좀 도와줘’는 노 대통령이 13대 국회의 청문회 스타가 됐다가 14대 총선에서는 낙선한 뒤 야인으로 있던 1994년에 쓴 저서다. 당시 이 책을 완성하는데 도움을 준 인연으로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에 오른 인물이 윤태영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이다. 노 대통령의 단독저서는 앞서 소개한 두 권 외에 ‘사람 사는 세상’(1989년), ‘노무현이 만난 링컨(2001년)까지 모두 4권이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은 ‘노무현이 만난 링컨’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다. 간혹 기자들과 대화를 할 때도 이 책을 자주 인용한다. 노 대통령은 서문에서 “이 책은 나의 관점을 링컨의 삶에 투사한 것이다. 글이 비록 부족하고 이런저런 한계가 있더라도 세상에 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썼다.노 대통령이 쓴 공저로는 ‘새일꾼 새바람 새정치’(1989), ‘내일을 준비하는 오늘’(1996), ‘노무현:상식 혹은 희망’(2002) 등이 있다.

DJ, 가장 많은 책 저술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많은 책을 쓴 인물은 김대중 전대통령이다. DJ는 40년 정치생활 동안 1969년 ‘분노의 메아리’를 시작으로 30여권의 단독저서와 20권 가량의 공동저서를 펴냈다. 김 전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도 ‘내일을 위한 기도’와 ‘나의 사랑 나의 조국’ 등 두 권의 저서를 갖고 있다.2000년에 DJ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자 서울시내 대형서점들은 특별코너를 설치하는 등 김대중 대통령 저서 특수(特需)에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이 때 명저로 엄선된 책은 ‘김대중의 3단계 통일방안’, ‘김대중 옥중서신’, ‘나의 삶 나의 길’, ‘대중경제론’, ‘행동하는 양심으로’, ‘김대중의 21세기 시민경제이야기’, ‘내가 사랑한 여성’ 등이었다.이 가운데서도 ‘옥중서신’은 지금도 백미로 꼽힌다. 이 책은 1980년 신군부로부터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DJ가 청주교도소에서 복역하면서 매일같이 이희호 여사와 장남 홍일씨를 비롯한 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책벌레로 소문난 DJ는 당시 이희호 여사가 들여보내 주는 책으로 독서를 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미래한국 사회에 대한 전망 등을 편지로 써서 가족들에게 보냈다. 당시에는 편지의 양도 제한돼 있어서 봉함엽서 한 장이 한번에 쓸 수 있는 전부였는데, 엽서 한장에 깨알같은 글씨로 장문의 편지들을 써 나갔다. 또 DJ의 저서 가운데 경제 관련 서적은 외국 유수 대학의 교재로 사용될 정도로 학문적 가치가 높았다. 그가 펴낸 경제 관련 개인저서만도 ‘대중경제론’, ‘김대중의 21세기 시민경제이야기’ 등 여러 권이 있다. 이런 그의 경제서적 저술 활동은 IMF 직후 어려웠던 때 치러진 1997년 대선에서 ‘준비된 대통령’ 구호에 무게를 실어줬다. 그의 경제정책은 나중에 ‘DJ 노믹스’로 불리며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YS,‘40대 기수론’첫 발간
‘DJ의 영원한 라이벌’ 김영삼 전대통령도 10여권의 책을 펴냈다. 1971년 대선 출마를 위해 그 유명한 ‘40대 기수론’을 처음 발간했다. 주요 저서로는 ‘김영삼 대통령 회고록’, ‘지도자의 길’, ‘인생을 뜻있게 보내려면’, ‘정치는 길고 정권은 짧다’, ‘나와 조국의 진실’ 등을 꼽을 수 있다. 전문서적도 썼던 DJ와 달리 대부분 민주화의 열정을 표현한 책들이다.정치권에선 김종필 전국무총리를 포함한 3김씨의 저서를 평할 때 “DJ의 책은 깊은 철학적 체취가 있고, YS의 책은 직선적 통쾌함이 있으며, JP의 책은 고전적 여유가 느껴진다”고 비교하곤 한다.

전두환, 퇴임전후 저서 한권도 안써
5·6공의 대통령 가운데 군복을 벗고 바로 권좌에 오른 전두환 전대통령은 저서라고 알려진 책이 한 권도 없다. 노태우 전대통령의 경우 1987년 12월 대선을 맞아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대’란 책을 급조하다시피 해 발간했다. 또 퇴임 시점인 1993년에는 ‘참용기’라는 제목의 책도 펴냈다.박정희 전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몇권의 저서를 발간했다. 모두가 조국근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거나 영웅전을 방불케 하는 책인데, ‘나와 우리민족의 나갈 길’, ‘지도자의 길’, ‘국가와 혁명과 나’, ‘민족의 저력’, ‘민족중흥의 길’ 등이 전해지고 있다.당시 정부는 이 책들을 관공서나 학교 등에 배포해 의무적으로 읽게 하기도 했다. 또 중국어와 일본어 등으로도 번역됐는데, 특히 중국어 번역본은 자유중국(대만)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와 자유중국이 똑같이 ‘반공’을 국시로 하면서 돈독한 유대를 맺고 있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이 보다는 6·25의 폐허 위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높았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이승만, 명성황후 사진을 저서에 수록
윤보선 전대통령의 경우 ‘구국의 가시밭길’이란 저서가 있으며, 최규하 전 대통령은 퇴임 후 한참 있다가 ‘팔순기념문헌집’을 냈다.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한 경력답게 ‘일본군국주의의 실상’, ‘일본폭로기(영문)’, ‘독립정신’ 등의 책이 전해진다. 특히 이승만 전대통령이 1910년에 남긴 저서에는 명성황후로 추정되는 사진이 실려 있어 명성황후 시해 100주년 숭모제 당시 이 사진을 표준영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이승만 전대통령은 또 ‘체역집’(替役集·징역을 대신하는 시모음)이란 것을 남겼다. 이 책은 그가 고종황제의 수구정책을 비판한 혐의 등으로 1899년 대한제국 정부에 의해 체포·구금돼 5년7개월간 한성감옥서에서 옥살이를 할 때 지은 한시(漢詩)들을 모은 것이다.사실 대통령의 저서들 가운데는 글 실력이 있는 측근이나 전문 대필가의 대필에 의한 것이 많다는 것이 정설처럼 돼 있다. 대부분은 구술 정도만 하고 대필가들이 알아서 스토리를 구성한 뒤 마지막 점검을 받는 수순을 밟는다. 그렇지만 손으로 한자 한자 정성을 기울여 가면서 원고를 작성, 역사의 기록을 남긴 대통령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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