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어 한 살 더 먹었을 뿐인데, 서너살은 더 먹은 느낌이다.”연초 개각과 경찰청장 인사 과정에서 청와대 비서실이 잇달아 ‘물’을 먹은 뒤 한 핵심 참모가 출입기자들에게 토로한 말이다. ‘1·2 개각’ 하루 전에 이병완 비서실장이 개각시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좀더 봐야 한다. 구체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어서…”라고 하고, 경찰청장 내정 발표 하루 전에 김완기 인사수석이 “다음 주 가서나…” 운운한 직후였다.기자들이 그런 혼선이 빚어진 원인에 대해 묻자 이 참모는 “문제가 있었다”고 시인하고, “복기해 가면서 혼선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들이 ‘청와대가 인사 사실을 알고도 연막을 친 것인지, 정말 몰랐던 것인지’를 꼬치꼬치 캐묻자 그는 매우 곤혹스러워 하며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진실에 접근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질문이 이어지자 이 참모는 “차라리 나를 돌로 치라”는 농담으로 기자들의 폭소를 유도해 난처한 자리를 빠져 나갔다.

전임인 김대중 대통령 시절까지만 해도 경내 청소원이 수억원대 뇌물 사건에 연루될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청와대 비서실의 위상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으며, 청와대 비서실의 추락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오는 2월25일이면 취임 3주년을 맞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간의 업적을 이야기할 때 항상 강조하는 것이 ‘권위주의 탈피’다. 특히 대통령 자신을 비롯한 청와대와 국정원·검찰 등 사정기관의 권력을 스스로 떨어뜨린 데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우를 들어 “권력과 권위를 상당부분 포기함으로써 불편한 점도 없지 않지만 꼭 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다”고 덧붙인다.실지로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실의 힘은 이전 정부 같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예전 같이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이와 관련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이병완 비서실장의 잦은 춘추관 방문이다. 이 실장은 지난 해 8월 취임한 후 수시로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머무는 춘추관을 찾는다. 그다지 큰 현안이 없어도 지나는 길에 들러 기자들과 터놓고 스킨십을 갖는 것이다.

과거정권 비서실장 권력 막강
물론, 이는 기자 출신인 이 수석의 개인적인 성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보다는 비서실 전체의 분위기를 함축한 측면이 더 강하다. 이전에도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김용태 비서실장처럼 기자 출신이 있었지만 그 때만 해도 비서실장실과 기자실의 거리는 멀고도 멀었다.비서실장이 기자실을 찾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어쩌다 비서실장실에서 기자간담회라도 열리면 분위기는 딱딱하기 그지 없었다. 그 만큼 과거 정권의 청와대 비서실장은 겉모습에서부터 권위가 묻어 났고, 실제 권력도 막강했다. 멀리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이후락 실장, 가까이는 김대중 대통령 때의 박지원 실장이 대표적이다.이에 비해 지금의 이병완 실장에게서는 어느 구석에서도 권위를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력부터 차이가 난다. 과거 청와대 비서실장들은 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장관급 각료나 중진 국회의원, 군 고위장성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병완 실장은 참여정부 출범 때 비서관으로 청와대 생활을 시작해 수석비서관(홍보), 특보(홍보문화)를 거쳐 비서실장까지 오른 인물이다.이런 현상은 실장뿐 아니라 청와대 비서실 전체가 마찬가지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과거처럼 ‘대통령 비서실’ 명함을 권위의 상징처럼 여기는 풍토는 사라졌다.

권력과 멀어지는 비서실
이처럼 권위를 반납함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이 의도했던 바대로 권력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있다. 개각이나 경찰청장 인사를 하루 앞둔 시점에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관련 수석이 그런 사실 자체를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것은 과거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특히 정치인 출신인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청와대 안에서 모든 인사가 이뤄졌고, 그 중심에는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이 있었다. 민정수석실에서 이른바 ‘존안자료’(정보기관 등에서 작성한 인물정보 파일)를 검토한 뒤 비서실장의 결재를 받고 대통령에게 보고해 최종 재가를 받아내는 식이었다.물론 거꾸로 대통령이 특정인을 지명해 검증을 지시한 뒤 그 결과를 보고 최종 낙점하는 일도 많았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헌법상으로 각료 제청권자인 국무총리는 입각 대상자가 결정될 때까지 사실상 배제되기 일쑤였다.

장관들, 이 총리 더 두려워 해
대통령 비서실의 약화는 상대적으로 다른 기관의 권력을 강하게 만들고 있다. 바로 행정부, 특히 국무총리와 여당이다.이해찬 국무총리의 경우 그렇찮아도 노무현 대통령이 잔뜩 힘을 실어주고 있는 마당에 연초 개각파동을 거치면서 명실상부한 2인자의 위치를 재확인했다. 각료 제청권을 충분히 행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보좌관 출신인 유시민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내정하는 과정에선 여당 일각의 거센 반발과 청와대 일부의 ‘신중론’을 무시하고 입각을 관철시키는 힘을 발휘했다.이 때문에 과거와 달리 지금은 각 부처 장관들이 대통령보다 국무총리를 더 두려워한다는 말까지 관가에 나돈다.

‘장관 군기잡는’ 업무보고
최근 청와대가 밝힌 행정 각 부처의 대통령에 대한 연두 업무보고 방식 개선안에서도 대통령의 권위와 권력 변화가 감지된다. 청와대에 따르면 앞으로 정부 부처별 대통령 업무보고는 대면보고를 생략하고 서면보고로 대체된다. 그 대신 미리 선정된 10여개의 핵심 국정의제와 관련된 부처들이 합동으로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부처별 대면보고가 의제중심 합동보고로 바뀌는 것이다.이전까지 대통령이 돌아가면서 받는 각 부처의 업무보고는 ‘장관 군기잡기’의 장이었다. 대통령이 보고를 받으면서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관계부처가 울고 웃었다. 심한 질책을 받은 부처는 밤을 새워 개선안을 마련하느라 부산을 떨었고, 다음 개각 얘기가 나오면 전전긍긍해야 했다.

대신 대통령에게서 칭찬을 들은 부서는 잔칫집 분위기가 됐다. 전두환 대통령 재임 시절의 일화다. 임기 초반인 어느 해 전 대통령이 모 부처에 들러 신년 업무보고를 받는데, 장관 대신 업무현안을 설명하는 A 국장의 브리핑 솜씨가 전 대통령의 마음에 쏙 들었다. 전 대통령이 알아보니 그는 학맥은 보잘 것 없었지만 마침 고향 후배였다. 이후 경제기획원(현 재정경제원) 출신으로 그 부서에 파견돼 있던 A 국장은 곧 원대복귀해 승승장구하다가 경제기획원 차관, 청와대 경제수석, 국회의원, 광역자치단체장 등을 지냈다.정부 부처 업무보고가 대통령 입장에서는 장관 군기잡기도 되지만 새로운 인재를 발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 셈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올해부터 이런 마당을 스스로 없애 버렸다.

여당 눈밖에 난 청와대 인사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청와대 비서실과 비교한 위상 강화도 주목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당정분리’를 천명하고 이를 실천한 데 따른 것이지만, 참여정부 임기 후반기로 접어든 지금은 단순한 당정분리라기 보다는 당이 확고한 우위를 점하는 위치로 변했다.과정이야 어떻든 여당 지도부가 대통령이 단행한 개각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미리 예정돼 있던 청와대 만찬을 일방적으로 취소한다든지, 소장파 의원들이 집단으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일 등은 과거 정권에선 가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뿐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정분리 원칙을 거듭 천명하면서 “나도 당무에 간섭하지 않을 테니, 당도 청와대 일에 참견하지 말라”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지만 여당은 사사건건 청와대 비서실에 시비를 건다.가령 여당에서는 걸핏하면 청와대 비서실의 특정인을 지목해 “여권 지지도 하락의 원인이 되고 있으니 교체해 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로 최근 청와대의 한 핵심 인사가 여당의 눈밖에 나는 바람에 자리가 위태로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청와대 비서실의 위상 변화는 어찌보면 시대적 조류다. 사회 분위기상 과거처럼 초법적인 권력 행사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다만 청와대가 내놓는 권위와 권력을 다른 기관이 그대로 휘두르게 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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