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청와대 대변인이 교체됐다. 전임 김만수 대변인이 부천 소사 선거구에서 치러질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사표를 낸 데 따른 것이다. 신임 정태호 대변인은 청와대 386 핵심 참모로 꼽히는 인물이다. 이해찬 의원의 보좌관 출신으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위원회 전문위원을 거쳐 청와대에서만 정책기획비서관실 행정관, 정무기획비서관실 행정관, 정무팀장(정무기획비서관·정무비서관 겸임), 정책조정비서관, 기획조정비서관 등을 두루 거쳤다.그가 ‘대통령의 입’으로 발탁된 것은 운동권 출신이면서도 모나지 않은 친화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 한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후반기를 맞아 언론과의 긴장관계를 해소해야 될 필요성을 느낀 것이란 해석이다.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의 입들은 누구였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청와대 대변인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대통령 홈페이지는 청와대 대변인에 대해 “대통령의 주요 국정 활동을 언론과 국민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론 ‘대통령의 국정운영 관련 브리핑 기획 및 실행’, ‘국정 주요의제 발굴 및 메시지 관리’, ‘언론보도 모니터링을 통한 주요 현안 점검’, ‘대통령 비서실의 각종 보도자료 관리 총괄’ 등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그러나 청와대 대변인, 특히 참여정부 청와대 대변인은 그야말로 ‘파리 목숨’이었다. 항상 정권과 언론 사이의 미묘한 관계 탓에 ‘줄타기’를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참여정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의 사이가 워낙 나쁘다 보니 중간에서 조율하기가 쉽지 않다.

김만수 전대변인 유머 탁월
참여정부 3년여 동안 청와대 대변인 가운데 1년을 넘긴 사람은 윤태영 현 연설기획비서관과 김만수 전 대변인 등 2명 뿐이다. 김만수 대변인은 지난 2004년 4·15 총선 당시 부천 소사에서 맞대결을 벌인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내놓았기 때문에 부천 소사 국회의원 보선에 대비하려고 사표를 제출했다.김 전대변인은 유머 감각이 뛰어났다. 연초에 청와대 참모들이 개각을 비롯한 각종 인사에서 소외됐을 때 출입기자들이 ‘물 먹은’ 이유를 캐묻자 “그냥 대변인을 돌로 치십시오”라는 농담 한 마디로 기자들의 폭소를 유도하면서 이 문제를 유야무야 넘긴 것은 유명한 일화다. 반면, 각종 현안을 브리핑하면서 본질에 접근하기 보다는 순발력에 의존한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사실 참여정부 청와대는 ‘대변인 복’이 없는 편이었다. 초대 송경희 대변인부터 ‘사고’를 쳤다. 송 전 대변인은 사상 첫 여성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박선숙 대변인에 이어 두 번째 여성 대변인으로 발탁됐지만 처음부터 위태위태하다가 결정적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송경희 첫 대변인 사고로 낙마
취임 후 한 달이 채 안됐을 때인 2003년 3월20일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개시했을 때 출입기자로부터 “전군에 경계령이 내려졌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송 대변인은 자신이 없는 표정으로 “워치콘3, 한 단계 높였다, 그런 말씀이 있었다”고 전했다.이에 기자들이 “데프콘(Defense Readiness Condition)이 아니냐”라고 물었고, 송 대변인은 “죄송하다. 제가 군사나 작전에 관해 충분하게 답변해드릴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충분히 이해해주시리라고 본다”고 주춤했다.

그러나 “한 단계를 올린 것은 맞나”라고 기자들이 다시 확인을 하자 송 대변인은 “네”라고 답했다.워치콘(Watch Condition)은 군의 대북 정보감시체제를 의미한다. 따라서 워치콘 분석은 데프콘 수위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워치콘 격상이란 직접적으로 북한을 자극하는 조치를 의미한다. 당시 송 대변인은 워치콘과 데프콘의 차이도 구별하지 못한 상태에서 군사적으로 극도의 민감한 사항을 부정확하게 언급했다. 송 대변인의 발언은 ‘워치콘 2로의 격상’으로 받아들여졌고, AP 등 주요외신들은 즉각 이를 근거로 “이라크전과 동시에 한반도 긴장도가 높아졌다”는 요지의 기사를 긴급 타전해 버렸다.이에 따라 북한측이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는 바람에 노무현 대통령이 당시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과거정부에선 언론사출신 중용
후임인 윤태영 대변인 정도가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그나마 ‘성공한 대변인’으로 꼽힌다. 노무현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도 불리는 그는 밤낮없이 기자들과 상대하느라 몸이 상해 김종민 대변인에게 바통을 넘겼다. 김종민 대변인은 성실성은 인정 받았지만 막판에 여러 번의 브리핑 에러를 하는 바람에 낙마했다. 현재 청와대 대변인은 1~2급 비서관급이다. 대변인과 부대변인, 그리고 3명의 직원으로 이뤄지는 ‘대변인팀’을 이끌고 있지만 차관급인 홍보수석의 통제를 받는다.반면, 전임 정권인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시절까지 청와대 대변인은 차관급인 공보수석이 겸임했다. 그 때까지는 언론사에서 잔뼈가 굵은 경륜이 있는 인물들이 주로 청와대 대변인을 맡았다.

그러나 참여정부에서는 ‘386 참모’들이 대변인의 맥을 잇고 있다.이에 따라 청와대 기자들이 상주하는 춘추관의 분위기도 많이 변했다. 이전에는 공보수석(대변인)이 하늘 같은 언론사 선배인 경우가 많아 기자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오히려 훈계를 듣거나 질책을 당하기도 했다.일례로 국민의 정부 시절 박준영 대변인(중앙일보 출신)은 자신의 금융기관 청탁 문제가 불거져 기자들의 질문이 잇따르자 “이 중에서 나에게 청탁 한 번 안해 본 기자가 몇이나 되느냐”고 일갈했다.그러나 참여정부 들어서는 대변인과 출입기자들의 나이가 비슷하거나, 오히려 기자가 선배인 경우도 있다. 심지어 대변인이나 부대변인이 출입기자를 ‘선배’ ‘형’이라고 호칭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일화 무궁무진했던 박지원 대변인
국민의 정부 시절 가장 유명한 대변인은 박지원 대변인이었다. 그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청와대 기자실을 휘어잡았다. DJ의 야당 총재 시절부터 ‘영원한 대변인’이었던 그에 대한 일화는 무궁무진하다.그 중에서도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것이 ‘청와대 대변인의 언론사 심야 방문과 물컵 사건’이다.1998년 3월9일 서울 서소문의 중앙일보 사옥 사장실. 밤 11시를 조금 넘어 홍석현 사장과 금창태 부사장, 한남규 편집국장과 청와대 대변인이 대면했다. 당시 박 대변인은 술에 취한 상태였다. 현안은 중앙일보 가판 1면에 실린 ‘주양자 보건복지부장관 경질’ 기사였다.

앞서 박 대변인은 가판기사를 보고 “아직 아무런 방침이 결정되지 않았는데 이런 기사를 쓸 수 있느냐”고 중앙일보측에 항의전화를 해놓은 상태였다. 그러자 중앙일보측은 “전화로 그러지 말고 할말이 있으면 찾아오라”고 했고, 박장관은 밖에서 만나던 인사들과의 술자리를 접고 중앙일보를 찾았다.기사의 사실 여부를 놓고 옥신각신 승강이가 오가다가 박 대변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 들고 있던 물컵이 탁자위에 곤두박질 치면서 유리조각이 나뒹굴었다. 이 대목에 대해선 박 대변인이 집어던졌다는 중앙일보측 주장과 “돌아서면서 물컵을 손에서 놓쳤다”는 박 대변인의 말에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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