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규제완화’ 누구 작품인가?

이명박 대통령(위) · 김문수 경기도지사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에 비수도권 지역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여야를 초월해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격한 대립양상을 띠고 있는 형국이다. 비수도권 의원들을 비록해 자치단체장과 시민단체가 한 몸이 된 대규모 항의 집회도 예정돼 있고, 제도적인 대응책도 강구되고 있다. 김문수 경기지사만 정부 정책에 호의적으로 반응하며, 추가 조치를 압박하고 있어 일견 이명박 대통령과 김 지사 간 ‘결탁설’도 정치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수도권 규제완화 방침으로 빚어진 정치권 미묘한 갈등양상을 다각도로 짚어봤다.

수도권 규제완화는 여당의 지도부부터 이견충돌을 일으켰다.

지난 3일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영남출신의 박희태 대표는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 계획 발표로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에서 심한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고, 영남출신의 허태열 최고위원은 “수도권 규제완화로 지방은 난리”라며 “당에서 뭘 했는지 자괴감을 금할 길이 없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최고위원 난상토론

그러나 서울이 지역구인 홍준표 원대대표는 “수도권 규제완화는 수도권의 국제 경쟁력을 높여줘야 경제가 산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고, 경기 지역구인 박순자 최고위원은 “세계를 상대로 경제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수도권 규제완화는 불가피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충청권의 송광호 최고위원은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면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데 그렇게 안 될 경우 책임을 누가질 것인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고 맞받아쳤다.

여의도 연구소장이기도 한 영남출신의 김성조 의원은 야당의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수도권 규제완화 철회를 강력히 요구했고, 당내 수도권 의원과 비수도권 간 논란이 일자 수도권 3개 시도당 위원장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야권의 반발도 거셌다.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무분별한 경기부양 대책으로 초래되는 수도권의 문제점을 확실하게 따져 여야를 막론하고 국가균형발전이 훼손되지 않도록 힘을 합쳐나가겠다”고 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이번 규제완화 조치는 경기부양의 일환으로 강행하는 것이지만 하책 중의 하책”이라며 “필연적으로 지방경제의 후퇴를 가져오고 결국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문수 경기지사는 후속조치를 논의하는 등 정부 조치에서 한 발짝 더 나가는 모습이다. 김 지사는 5일 대책회의에서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는 법이다. 중국에도 가는 세계적 기업들이 한국에는 오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며 수도권 규제완화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번 수도권 규제완화 조치와 관련, 경제 활성화를 위한 현 정부의 부득이한 조치라는 데 대체로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김 지사와 현 정부를 연계시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 최대 수혜자는 박근혜 전 대표라는 관측이 높다. 박 전 대표가 오랜 침묵 끝에 내놓은 첫 발언이 규제완화에 대한 우려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지방경제를 살리기 위한 투자환경 개선 등 현실적 대안을 먼저 내놓고 수도권 규제완화를 해야 하는데 현실적 대안 없이 하는 것은 선후가 바뀐 것”이라고 정부 방침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지방경제를 살리기 위한 대책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면서 “수도권 규제도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옳은 방향이고 그렇기 때문에 선후가 바뀐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문수 지사의 핵심 측근이었던 한 인사는 “김 지사가 대권보다는 경기도 경제활성화 때문에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라며 “김 지사의 수도권 규제완화 요구를 핵심 측근들은 강력하게 만류했다”고 밝혔다.

한 정치분석가는 “수도권 규제완화로 김 지사만 좋아진 것은 사실이나, 김 지사가 이 문제로 현 정부를 공격해 왔기 때문에 이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수도권 규제완화는 박 전 대표가 당내 입지를 굳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며 “침묵 끝의 첫 발언이 규제완화에 대한 우려였다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밝혔다. 그는 “국정주도권 상실은 물론 이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이 더 빨라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수도권 규제완화에 대한 저항은 대규모화 되고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전망이다.

13개 비수도권 시도지사와 지역 국회의원들로 이뤄진 지역균형발전협의체가 대규모 상경집회를 갖기로 했다. 비수도권 의원들은 관련법 개정을 공동 저지하고, 헌법소원도 검토할 방침이다.

지역균형발전협의체는 4일 국회에서 긴급 실무협의회를 갖고 12일이나 19일 께 대규모 상경집회를 개최키로 했으며, 시도별로 1000명씩 모두 1만3000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전국적인 대규모 릴레이 시위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발이 거세지자, 이명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의 정례회동을 통해 수습책을 내놓기도 했다.


파장 일파만파 정국 요동 칠 듯

이 대통령은 “수도권 규제 합리화로 인한 개발이익을 전적으로 지방에 이전, 지방발전 프로젝트의 재원으로 활용할 것”이라며 “이 방안은 내년 상반기에 마련해서 2010년까지는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충청지역구 의원은 “수도권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이 수익을 내면 그게 정부 돈이냐”면서 “기업들이 법인세를 내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될 것이며, 그걸 13개 시도에 나눠주면 그게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지역 사람들이 무슨 앵벌이도 아닌데 그런 정책이 어디 있느냐”며 “그야말로 미봉책”이라고 지적했다.

수도권 규제완화의 전국적 반발이 커지고 있다. 규제완화의 파장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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