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레임덕에 휘청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축년 새해 신년사를 통해 임기 후반기 비전을 제시했다. 대통령 신년사는 정치·경제·사회·문화는 물론 외교안보 분야까자 포괄해 한해 국정운영 방안을 포괄적으로 제시하는 기회다. 매년 1월 중순 열리는 신년기자회견과 더불어 대통령의 국정인식을 체크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극단적인 진영논리로 분열된 정치사회적 갈등 완화를 위해 포용과 통합을 강조했다. 또 코로나19 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선도국가로의 도약을 힘차게 강조했다. 특히 지지율 하락의 근본원인인 부동산정책 실패에 대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매우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인 점은 상징적이다. 이러한 올해 신년사는 2018, 2019, 2020년 신년사와는 적잖은 차이가 있다.

뉴시스
뉴시스

- 장및빛 자화자찬·분열정치 반성없는 내로남불 비판 쇄도
- 남북관계 이슈 줄고 부동산 사과 및 코로나 극복 강조

악재로 여겨졌던 권력기관 개혁문제에도 원론적 언급에 만족했고 한반도 이슈는 크게 부각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나름으로는 임기 후반의 안정적 관리에 포커스를 두고 신년사를 발표한 격이다.

다만 통합에 방점을 찍은 신년사라고 강조했지만 분열정치를 방치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야권이 내놓은 정반대의 반응에서 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합격점을 내렸다. 반면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야권은 낙제점을 내렸다. 민주당은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혁신적 포용국가, 한국판 뉴딜추진, 2050 탄소중립 등 국정과제 추진을 통해 올 한해를 회복과 포용, 도약의 해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다.

반면 야당에서는 원색적인 비난과 성토가 쏟아졌다. 문 대통령의 신년사가 국민적 물음에 눈 감고 귀를 받은 동문서답으로 말잔치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특히 K방역 신화에 대한 자화자찬은 물론 북한에 대한 지나친 짝사랑이 넘쳐났다는 평가다. 여야의 상반된 인식은 통합과 포용을 강조한 문 대통령의 신년사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분열상을 여과없이 보여준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유독 국민통합을 강조했지만 집권 5년차에 접어들면서 여전히 분열 해소와 국민통합이라는 정치적 목적은 미해결의 난제로 남겨두고 있다.

부동산 이슈 사과하면서 코로나 극복 강조 사면 침묵

문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의 최대 원인으로 불리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 통크게 사과했다. 취임 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동안은 투기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집값 원상회복을 강조했지만 수도권 집값폭등으로 촉발된 국민들의 주거불안을 다독이면서 고개를 숙인 것이다. 올해 신년사를 통해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는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거의 모든 언론이 문 대통령의 신년사 내용 중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이는 지난해 신년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고 강조한 대목이나 2019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정부에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고 언급한 것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를 통해 30%대 중반으로 하락한 지지율 반등을 노리면서 민생경제 회복에 집중해 임기 후반기 국정운영의 동력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다. 실제 신년사를 키워드로 분석해보면 경제가 29회로 가장 많았다. 이는 지난해 신년사 18회보다 무려 11차례 많은 것이다.

또 지지율 하락의 주요 변수였던 검찰개혁 논란과 코로나19 백신 확보 논란에 대해서는 파장 확산을 의식한 듯 원론적인 수준의 언급을 벗어나지 않았다.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간 거친 갈등은 대통령 지지율 급락의 도화선이 된 악재였다. 문 대통령은 권력기관 개혁은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일이라면서 법질서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공정하게 적용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K방역 신화를 뒤늦은 코로나19 백신 늑장확보 논란에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문 대통령은 다음 달이면, 백신 접종을 시작할 수 있다. 우선순위에 따라 순서대로 전 국민이 무료로 접종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논란에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어떤 식으로는 이를 언급할 경우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과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야권에서는 사면에 대한 문 대통령의 침묵에 대해 아쉽다는 반응이 나왔다. 국민통합 차원에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필수적인데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것이다.

김정은과 비대면 정상회담 추진 논란여야 엇갈린 인식

문 대통령의 올해 신년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대목은 한반도 이슈에 대한 언급이 현저히 줄었다는 점이다. 20175월 취임 이후 매년 신년사에서 문 대통령이 가장 강조한 대목은 남북관계 이슈였다. 특히 20184월 남북정상회담과 9월 평양정상회담, 같은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역사적인 제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지형을 둘러싼 역사적 대변화가 모색되면서 문 대통령 역시 남북관계 이슈에 정성을 쏟았다.

다만 2019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 성과없이 끝나면서 한반도 문제는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한반도 정세와 지형을 고려한 탓인지 문 대통령의 올해 신년사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내용은 비중이 대폭 축소됐다

다만 올해 신년사에서 대북 메시지는 적었지만 눈에 띄는 대목이 없지 않았다.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해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에게 비대면 정상회담을 제의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언제든, 어디서든 만나고, 비대면의 방식으로도 대화할 수 있다고 제의했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제8차 당대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남측의 태도에 따라 “3년 전 봄날과 같이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한 화답 성격의 제안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정상간 대면외교가 사실상 힘들어진 만큼 화상 정상회의 방식의 비대면 회담을 제의한 것이다. 지난해 신년사에서 나는 거듭 만나고 끊임없이 대화할 용의가 있다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답방을 직접 언급한 것에 비하면 표현이 완화된 대목이다. 다만 문 대통령의 제안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실제 김정은 위원장과의 비대면 정상회담 제의에 여야는 격렬하게 반응했다. 물론 여권은 조심스럽게 김정은 총비서의 서울답방을 타진하면서 남북대화 재개를 촉구했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 복심으로 손꼽히는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이나 대한민국 답방을 한다면 남북관계에 일대 진전이 이루어질 것이라면서 반드시 올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설훈 의원 역시 여름 정도면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정책 등에서) 자리를 잡을 시기이고, 코로나 상황도 어느 정도 안정될 것이라면서 김 위원장의 답방은 여름이 적기라고 본다고 군불을 땠다.

여권의 희망섞인 관측에 야권은 강력 반발했다. 특히 2018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북미정상회담이라는 메가톤급 이슈에 선거참패를 경험했던 야권은 여권이 오는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또는 내년 3월 차기 대선을 앞두고 남북관계를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였다. 북한의 핵 위협이 여전한 가운데서도 현실에 눈감은 이상적인 제안이라는 질타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를 직설적으로 비난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김정은이 노골적으로 핵무기 기반으로 통일한다고 하는데 대통령이 아무 말이 없다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북의 핵 위협에 한마디 못 하고 회피하는 모습에 국민은 큰 실망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속 빈 신년사라고 깎아내렸다.

신년사 말로는 통합속내 분열정치 반성없는 '내로남불'

뉴시스
뉴시스

여권은 문 대통령의 신년사를 옹호했지만 야권은 융단폭격에 나섰다. 민주당은 대통령 신년사를 입법으로 뒷받침하겠다는 각오를 다졌지만 야권은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동문서답이라며 평가절하했다.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의 신년사는 국민통합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형식에 그친다는 게 야권의 지적이다. 내용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오히려 분열정치의 모습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위기에서 벗어나 일상으로의 회복, 선진 경제강국으로의 도약, 상생과 연대를 통한 포용성 강화 등 말로는 성찬이지만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의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4년간의 국정실패와 분열정치에 대한 반성보다는 책임회피와 변명은 물론 미사여구로만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야권의 유력 정치인들은 일제히 비난대열에 가세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4년 내내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잘못된 정책으로 국가 경제와 민생 경제를 망가뜨리더니 마지막 5년차에 갑자기 포용과 선도국가를 이야기한다국정전환의 결단은 없고 책임회피와 장밋빛 자화자찬에 실망했다고 깎아내렸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온갖 미사여구로 장식된 긴 신년사에 부동산 문제 관련은 딱 세 문장이었다잘못된 임대차법들을 당장 고치겠다, 잘못된 세금을 고치겠다, 재건축 재개발 규제를 풀겠다 등 시장이 원하는 이야기는 없었다고 꼬집었다.

검찰개혁 문제와 관련해서도 국민을 위한 검찰개혁이 아니라 살아있는 권력을 위한 검찰장악에 불과했던 점을 반성하지 못한 점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을 탈당하고 서울시장 보선 출마를 선언한 금태섭 전 의원은 회복, 포용, 도약이 신년사를 가득 채운 자화자찬과 미사여구로 가능할지 의문이라면서 문 대통령은 지난해 청와대와 여당이 앞장섰던 정쟁과 갈라치기에 대해 먼저 반성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야 정치권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임기 후반부로 접어든다. 새로운 국정과제를 추진하기보다는 이제까지 해온 일들을 잘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라면서 진영논리와 정파적 관점에서 벗어나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국민통합을 위해 보다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의 대전환없이 기존의 대립적 정치구도를 답습할 경우 예기치 못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