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목숨 끊은 박원순 문구 보기 싫다”···존치 검토 돌입

서울 마포대교에 적혀있던 자살예방문구. [뉴시스]
서울 마포대교에 적혀있던 자살예방문구.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서울 한강대교 난간의 ‘자살예방문구’ 존치 여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는 시민들의 요구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자살 예방 문구를 지우기 시작, 한강대교 모든 문구를 지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서울시의회가 지난해 행정사무감사에서 자살 예방 문구 효과 재검증을 요청함에 따라 존치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원순 전 시장이 쓴 문구 삭제···한강대교 전체 삭제 계획은 보류

서울시의회, 효과 재검증 요청···자문단 구성, 효과유무 검증 후 결정

이번 한강대교 자살 예방 문구 논란이 시작한 것은 지난해 7월 박 전 시장이 사망한 시점부터다. 비서 성추행 의혹을 받은 박 전 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가 작성한 자살 예방 문구를 보는 것이 불편하다는 시민들의 민원이 잇따랐기 때문.

박 전 시장은 지난 2013년 한강대교 난간에 ‘우리, 맘잡고 다시 해보아요. 행운은 잠시 쉬고 있을 뿐입니다’라는 문구를 적은 바 있다.

어떻게 시작됐나

자살 예방 문구의 시작은 지난 2012년이다. 서울시와 삼성생명이 합동으로 벌인 ‘생명의 다리’ 캠페인을 계기로 시작됐던 것.

서울시는 지난 2012년 한강 다리 중 투신율 1위로 꼽히는 마포대교 난간에 시민 공모로 받은 자살 예방 문구를 써넣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당시에는 난간에 감지기가 장착된 LED 조명이 설치됐다. 사람이 지나가면 불이 켜지면서 문구가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 마음을 돌리게 한다는 의도였다.

시민 공모를 거쳐 선정, 지난 2013년에는 문구를 다리에 새겼다. 그러나 2015년 말 캠페인 중단과 함께 조명을 없애, 일부 문구만 남게됐다. 투신 방지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면서다.

부적절하거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일부 문구가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 사람을 위로하기는커녕 역효과를 낸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폭포는? 나이아가라 폭포’, ‘자가용의 반대말은? 커용’ 등의 문구와, 삶에 대한 응원의 뜻을 담았으나 극단적 선택을 부추기는 것으로 오독될 여지가 있는 ‘한번 해 봐요’ 등 문구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문구를 제거해야 한다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접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시설 노후화도 문제로 떠올랐다. 지난 2015년 말 일부 문구만 남겨뒀던 서울시는 설상가상 태풍 ‘링링’이 들이닥치면서 문구가 새겨진 플라스틱 덮개가 다량으로 날아가 훼손되자 전문가 자문을 거쳐 자살 예방 문구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결국 서울시는 지난 2019년 10월 마포대교에 적한 자살 예방 문구를 전부 없앴다.

한강대교에는 지난 2013년에 자살 예방 문구가 적혔다. 시민들이 직접 쓴 마포대교 문구와 달리 한강대교에는 사회 명사 44명이 만든 문구가 들어갔다. 성악가 조수미, 가수 이효리, 배우 하정우, 체조선수 손연재 등 유명 인사들이 참여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이 열린 지난해 7월13일 서울시청에 고인의 운구차량이 도착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이 열린 지난해 7월13일 서울시청에 고인의 운구차량이 도착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아직 논란 여지

있다고 판단”

박 전 시장의 자살 예방 문구를 지우기 시작하면서 서울시는 이를 계기로 한강대교 자살 예방 문구도 전부 삭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서울시의회 재검증 요청에 따라 존치 여부를 살펴보게 된 것.

서울시의회는 “한강대교 자살 예방 문구의 효과 유무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된다”면서 “삭제 전에 자살 예방 문구의 효과 유무를 재검증하고 효과적은 자살 예방이 가능토록 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울 마포대교에 붙어 있던 자살예방 문구가 제거되고 추락 방지대가 설치돼있다. [뉴시스]
서울 마포대교에 붙어 있던 자살예방 문구가 제거되고 추락 방지대가 설치돼있다. [뉴시스]

서울시는 3월까지 한강대교 자살방지문구 효과 검증과 존치 여부를 결정해 추진할 방침이다. 한국자살예방협회, 서울시자살예방센터, 보건의료정책과, 소방재난본부 등이 참여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자살예방 관련 자문단 구성과 자문을 실시한 뒤, 3월까지 자문의견에 따른 세부 조치계획을 수립해 추진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한강대교에 안전난간 설치공사도 진행하고 있다. 투신 차단율을 높이기 위해 기존 난간을 철거하고 안전난간을 설치하는 방식이다. 공사는 11월24일까지로 예정돼 있다.

추상적인 문구보다는 물리적으로 펜스를 높이는 것이 투신 시도를 줄이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 서울시의 판단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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