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방치’ 시각장애인 안마사들 불법으로 내몰리는 까닭은?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불법 안마시술소로 내몰리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를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왔다. 글 게시자는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동안 언론 등에 불법 성매매 안마시술소 단속 문제는 많이 등장했지만, 생계를 빌미로 그곳에서 이용당하고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 안마사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와 관련한 내부 고발이 처음 나온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안마원과 안마시술소는 법적으로 안마사 자격이 있는 시각장애인만 허가를 받아 개설·운영·종사할 수 있다.

일요서울 취재 결과, 안마원의 경우는 엄격하게 관리되는 반면 안마시술소는 사실상 방치돼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일부 비시각장애인 업주들이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의 자격증을 이용, 합법으로 가장해 안마시술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안마권’이라는 고유 권한을 가진 시각장애인들의 일자리가 성매매 범주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짚어봤다. 

- “성매매 범주에서라도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불편한 현실”

지난 달 청와대 국민청원에 ‘성매매 안마시술소 막아 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일부 불법 성매매 안마시술소들이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이용해 불법이 아닌 척 위장하고 있어,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이 같은 상황을 잘 모르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내용이 골자다.

글을 올린 시각장애인 A씨는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서 “불법 성매매 안마시술소 업소에서까지 안마 일을 하며 생존권을 지켜 온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봐 제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건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며 “더 이상 불법 성매매 안마시술소가 아닌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각장애인 관련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며 문제를 체감해 온 그는 “시각장애인계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지만 뿌리 깊은 문제를 바꿔 나가기엔 한계가 있어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한안마사협회 등 관계자들이 1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안마시술기관 생존권 보장 촉구 결의대회에서 시각장애인 안마사의 생존권 대책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07.10. [뉴시스]
대한안마사협회 등 관계자들이 1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안마시술기관 생존권 보장 촉구 결의대회에서 시각장애인 안마사의 생존권 대책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07.10. [뉴시스]

시각장애인 안마사들…모르고 범죄 연루될 가능성도

의료법 제82조 제1항은 시각장애인 중 일정한 교육이나 수련과정을 마친 사람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안마권은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고유 권한인 셈이다. 또한 안마시술의료기관인 ‘안마원’과 ‘안마시술소’도 시각장애인 안마사만이 개설·운영권을 갖는다. 이를 실제로 개설·운영하기 위해선 지자체 보건소와 대한안마사협회 등으로부터 ‘안마(시술소)원 개설 신고서’ 서류 등을 내고 절차를 거쳐 허가까지 받아야 운영할 수 있다. 

현재 ‘안마원’은 관할 지자체인 시군구 보건소에서 주기적으로 현장 방문해 관리하고 있지만 ‘안마시술소’의 경우는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상황을 꼼꼼하게 확인하기 어려운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불법 성매매 안마시술소에서 일하게 될 수도 있어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A씨는 “안마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성매매가 이뤄지는 공간에서도 안마만 하기 때문에 그곳이 성매매를 하는 곳인지 안마만 하는 곳인지 정확한 사정을 모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안마원과 안마시술소의 차이는 시설규모나 구비요건 등에 따라 구분된다. A씨는 “면적이 더 큰 건 안마시술소고 그보다 작은 규모는 안마원”이라며 “안마시술소는 대부분 평수가 크기 때문에 자금이 부족한 시각장애인들은 임대료나 시설비를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비시각장애인이 시각장애인 안마사의 명의를 빌려 ‘명의 사장’으로 앉혀 놓는다”고 말했다.

이어 “자금 출처 조사를 피하기 위해 3개월 전에 명의 사장의 통장에 자금을 입금해 놓고 함께 가지 않으면 돈을 찾을 수 없도록 해 놓는 수법을 이용한다”며 “실질적으로 안마시술소를 운영하며 거둬들이는 막대한 수입은 실소유주가 갖고 명의 사장은 명의 대여료만 몇 푼 받는다. 하지만 단속에 걸리면 명의 사장도 꼼짝없이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합법으로 가장한 불법 안마시술소는 단속에 걸리지 않기 위해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고용한다. A씨는 안마사 소개가 시각장애인 안마 업계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명의 사장과 안마사들을 매개하는 ‘시각장애인 브로커’가 있다”며 “명의 사장보다도 이들 브로커의 권한이 더 크다. 직접 안마사들을 모집·관리하는 브로커는 소개를 받은 실소유주에게도 수수료를 받고 명의 사장에게도 받는다”고 했다. 

불법 성매매 안마시술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시각장애인 안마사 B씨는 “(안마시술소는) 대부분 손님들이 안마만 받으러 오는 게 아니어서 안마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했다. 50분 코스라고 하면 10~20분정도 안마를 하고 나오면 뒤이어 아가씨들이 들어갔다”며 “50분 코스가 끝나면 이불정리, 타월 정리 같은 걸 맡아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시간에 평균 20여만 원 코스라면 안마사는 약 1~2만 원 사이를 받게 된다. 요즘엔 올라서 그보다 조금 더 주는 수준이라고 들었다”며 “그것조차도 업주들이 기분 좋으면 주는 거고 심사가 틀어지면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을 쉽게 자르곤 하기 때문에 항의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사진=뉴시스]
대한안마사협회 등 관계자들이 1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안마시술기관 생존권 보장 촉구 결의대회에서 시각장애인 안마사의 생존권 대책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07.10. [뉴시스]

관련 기관·주무부처…“불법 알지만 처벌 권한 없어”

대한안마사협회 관계자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협회는 의료법에 따라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관리하고 안마원이나 안마시술소에 허가를 내주는 권한까지만 있다. 내부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한 파악은 어렵다”며 “비시각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의 명의를 빌려 안마시술소를 운영한다는 일부의 사례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들이 이용당할지 말지 그 선택은 당사자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마원은 남녀노소 누구나 다니고 건전하게 운영되고 있고 면허를 빌려 운영한다는 이야기나 불법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지만 안마시술소의 상황은 잘 모르겠다. 협회에 서류를 완벽하게 작성해서 갖고 오는데 불법인지 아닌지 어떻게 파악할 수 있겠느냐”며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그 안에서 성매매가 아닌 ‘안마’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불법이라고도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불법이기 때문에 무작정 하지 말라고 막아버린다면 이들의 생계는 어떻게 책임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시각장애인 관련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관계자는 “대한안마사협회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선 관여하고 있지 않다”며 “연합회 쪽에서 파악하는 것은 안마사 자격자나 현재 개설돼 있는 안마원·안마시술소를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대한안마사협회 관련 부처인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안마원·안마시술소 개설 및 허가는 시군구청장이 허가권을 갖고 있고 관련해서 불법 행위가 발생하면 경찰서, 보건소 등에서 단속을 하고 있다”며 “그 안에서 불법적인 일이 일어나면 안 되는 게 맞다. 이와 관련해 근절해 달라는 민원을 받기도 하지만 이는 행정처분에 따라 이뤄져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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