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립편집위원
이경립편집위원

자연인 윤석열에 대한 차기대선주자 지지도가 예사롭지 않다. 검찰총장 윤석열은 맞으면 맞을수록 더 단단해지는 대장간의 쇳덩이에 불과했지만, 자연인 윤석열은 신기루 속 오아시스처럼 실의에 빠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어렴풋한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다. 가히 ‘윤석열 신드롬’이라 불러도 좋을 만하다.

그가 검찰총장 사퇴 후 외부일정으로 처음 만남 사람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라고 한다. 101세의 노교수를 찾은 이유는 연세대 교수를 했던 자신의 아버지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니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최근 김형석 교수가 왕성한 활동으로 보수층에 회자되고 있는 상황과 연관시키면 단순한 만남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더군다나 김형석 교수는 자연인 윤석열에게 “함께 일 할 사람을 모으라”는 충고를 했다고 하니 단순한 인사방문은 아니다. 차기 대선에 출마하고자 하는 윤석열이 스스로 출사표를 던지지 않고, 101세 노교수의 지식과 신망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대가 없이 빌려 사용한 고도의 계산된 대리출사표에 다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저 우직한 검찰총장 정도로 이해하고 싶어 하던 윤석열이 아니라 상당한 정치적 감각과 능수능란한 권모술수까지 장착한 마키아벨리스트 정치인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인은 서생(書生)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윤석열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상인의 현실감각’을 가진 ‘예비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서생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는 더 지켜 볼 일이다.

그렇다면 윤석열이 이러한 ‘상인의 현실감각’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예비정치인’ 윤석열의 강점은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정치를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고쳐야 할지, 고칠 수 없다면 어떻게 감춰야 할지에 대해 동물적 감각을 자랑한다.

현재 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약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에게서 군복 입은 전두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온갖 비리의 온상이었지만 불도저처럼 밀어붙여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이명박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는 것이다.

전두환은 12.12 신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대통령에 올랐다. 대통령 재임 중에는 강압적으로 반대세력을 억압했다. 야당은 대화가 아닌 길들이기 대상이었고, 국회는 거수기였으며, 경찰을 몽둥이 삼아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는 5공화국 이후 국회의원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에 오른 유일한 사람이다. 대화와 타협을 기조로 하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이명박은 샐러리맨 신화를 이룬 장본인이었지만, 그가 성공하는 과정은 대한민국 천민(賤民)자본주의와 함께 했다. 성공을 위해 불법과 위법을 다반사로 하였고, 타인의 슬픔과 고통은 그의 디딤돌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의 전과(前科)는 전과(戰果)로 치환(置換)됐다.

윤석열은 군대 이상으로 경직되고 비민주적 조직문화를 자랑하는 검찰에서 30년을 보냈다. 그가 속했던 검찰에게 국민은 섬겨야 할 대상이 아니었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는 존중의 대상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는 국회의원 등의 선출직 공무원이 된 적도 없다. 또한 그의 장모는 이명박형 경제 범죄로 피해자에게 고통을 주었으며, 그 자신도 피해를 보고 있다. 그의 유일한 위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두환도 이명박도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두환이 쿠데타를 할 때의 대한민국 민주주의 수준이 아니며, 이명박이 대통령이 될 때의 폐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그에게는 높디높은 허들이다. 그래서 꼼수로는 안 된다. 장모문제가 명쾌히 해명되고, 국민을 섬기는 국회의원이라도 한 번 해본 뒤에 대권에 도전해도 될 텐데... ‘눈 가리고 아웅’ 하기 에는 우리 국민들의 수준은 이미 한껏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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