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할머니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기일을 마친 뒤 취재진에게 질문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는 이날 고 곽예남, 김복동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2021.04.21. [뉴시스]
이용수 할머니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기일을 마친 뒤 취재진에게 질문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는 이날 고(故) 곽예남, 김복동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2021.04.21. [뉴시스]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각하’ 판결을 받았다. 올 초 1심 법원은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이 낸 소송에서 일본 정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석 달 만에 정반대 판결이 나온 셈이다. 재판부는 ‘국가면제(주권국의 타국 재판권 면제)’를 이유로 사건 소송 청구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재판장 민성철)는 21일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2차)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이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본안을 판단하지 않고 내리는 결정이다. 한 국가의 행위는 다른 나라의 사법권 관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국제관습법상 규범인 ‘국가면제 이론’이 재판부가 소송을 각하한 핵심적 이유다.

이날 재판부는 “국제관습법과 달리 국가면제를 부정하게 되면 판결 선고와 강제 집행 과정에서 충돌이 불가피하다”며 “법원이 추상적으로 국가면제에 대한 예외 조항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했다. 이어 피해자 구제는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간의 외교적 교섭을 포함해 대내외적 노력에 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석 달 전 같은 법원에선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재판장 김정곤)는 올해 1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1차 소송)에서 “일본군 위안소의 운영은 반인도적 범죄행위”라며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해도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대한민국 법원에 피고에 대한 재판권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 법원이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한 첫 사례다. 해당 판결은 원고와 피고 모두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한 21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8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기자회견에서 이나영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2021.04.21. [뉴시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한 21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8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기자회견에서 이나영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2021.04.21. [뉴시스]

1차 소송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2013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1인당 1억 원씩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조정을 서울중앙지법에 신청했으나 일본 정부가 응하지 않자 2016년 1월부터 정식 소송 절차에 들어가며 시작됐다. 

이용수 할머니 등은 2016년 12월 같은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일본 정부는 국가면제론을 이유로 두 소송 모두 응하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위안소 운영과 위안부 모집·강요 등 일본의 반인도적 범죄 행위는 국가면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2차 소송은 일부 원고들의 항소 가능성이 높아 대법원까지 가야 결론이 나온다. 다만 1차 소송의 원고들이 승소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한 효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민사소송의 효력은 해당 재판의 당사자 사이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판결을 집행할 방법은 없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재판장 김양호)는 지난달 29일 1차 소송 판결의 강제집행을 위해 국내 일본 정부 자산을 압류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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