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필벌(信賞必罰)은 공로 있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잘못한 사람에게 벌을 주자는 원칙이다. 중국의 상앙(商鞅)과 한비자(韓非子)가 대표하는 법가(法家)는 강력한 국가는 군주의 덕치(德治)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신상필벌의 법 제도와 엄격한 시행으로 만들어진다고 역설했다. 진(秦)나라는 신상필벌과 법치행정을 시행해 변방국가에서 강대국이 되고 500년 넘게 지속돼 왔던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고 마침내 천하통일을 이루어 냈다.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신상필벌을 경시하는 오랜 역사가 있다. 성리학을 교조적으로 신봉한 조선 사대부들의 법치 인식은 편협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부국강병‘은 왕도정치의 이념과는 맞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기술되어 있으며, 사림파 개혁론자인 조광조(趙光祖)는 부국강병을 ‘인의(仁義)에서 벗어난 패술(霸術)’이라고 매도했다.

박광준 일본붓교대학 교수의 저서 <조선왕조의 빈곤정책, 2018>을 보면 조선왕조가 가난한 나라가 되고 만 이유를 “교조적 성리학 사상의 존재와 개인의 빈곤 책임을 인정하는 법가사상(法家思想)의 부재, 농민들에게 종자를 빌려주고 추수 후에 상환 받는 환곡제도와 창 제도의 실패 등”에서 찾았다.

조선 사회는 공산주의적 농본사회였다. 정책기조는 ‘무본억말(務本抑末, 본업인 농업에 힘쓰고 말업인 상업을 억제함)’이었는데, 상업은 ‘간난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는(赤子入井·적자입정)’ 위험한 행위로 간주하여 억제했다.

실학자 홍대용(洪大容)은 조선의 문제는 주자학을 받아들였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자학만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했다. 개인의 동기와 인센티브를 인정하고 중시하면 사회가 위태로워진다는 생각이 조선 주자학의 기본입장이었다. 박제가(朴齊家)는 조선이 백년 이상 전쟁이 없었고, 백성들이 사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쇠퇴한 원인을 ‘무역이 멈춘 것’에서 찾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조선 주자학의 ‘균(均, 평등)’ 사상에 연원(淵源)한 가난을 탈피하기 위해 새마을정책의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차별화정책’을 폈다. 그는 1972년 2월 7일 지방 초도순시 후 경북도청에서 이렇게 유시(諭示)했다.

“(전략) 농어촌을 일률적으로 지원해 본 결과 기대한 만큼 성적을 거두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부지런하고 잘하는 부락은 우선적으로 도와주자, (중략)

일은 하지 않고 노름이나 하고 술이나 마시고 게으른 그러한 퇴폐적(頹廢的)인 농어촌을, 부지런히 일해서 잘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그런 농어촌과 꼭 같이 지원해 준다는 것은 오히려 공평한 처사라 할 수 없습니다. (하략)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였습니다.”

박정희의 ‘차별적 지원’은 법가사상의 신상필벌(信賞必罰)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정책의 결과 1977년에는 고학년 ‘자조·자립마을’은 100%에 이르고, 저학년 ‘기초마을’은 사라졌다.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사장은 새마을운동은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차별화한 ‘통제된 경제발전실험’이라 정의한다. 그는 “새마을운동을 통해 10년도 안돼서 3천만의 대한민국 국민의 빈곤문제를 해결했으니 인류역사에 지울 수 없는 경제적 금자탑을 세운 셈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런 인센티브 차별화 정책마인드가 수출기업지원정책, 중소기업지원정책, 중화학기업육성정책에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강조한다.

밀턴 프리드먼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자유시장경제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에서 정부가 시장에 어떤 명분으로든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며, ‘불완전한 시장이 불완전한 정부보다 낫다’는 기본 철학을 설파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책을 졸속 도입해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인상했는데, 이는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현실을 깊이 고려하지 않은 실패한 정책이다. 시장을 활성화하고 도전과 성취를 인정해 주면 경제위기를 더 빨리 극복할 수 있을 텐데, 부자 증세와 ‘확대재정 만병통치’ 가 판을 치고 있다. 경제정책만큼은 조선 시대로 회귀하면 안 된다.

불행하게도 지금 대한민국은 새마을운동의 인센티브 차별화정책을 버리고, 인센티브를 역 차별하는 ‘평등주의 정책실험’에 내몰려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스스로 돕는 ‘자조·자립정신’의 자리를 국가에 의존하는 ‘분배·공유 정신’이 대체하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우리가 국운이 쇠퇴하는 것을 두 눈 뜨고 방치한다면 아무도 우리를 구해주지 않는다. 박정희 대통령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