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공학과요.”
“그럼 그때 전기 자동 차단기가 작동할 만한 문제가 발생 했었나?”
곽정 형사가 다시 물었다.

“자동 차단이 작동되려면 과전류가 흘러야 하는데, 합선이 대표적 케이스지요. 합선이 될 때는 팍하는 소리가 나거나 연기, 불꽃이 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전혀 없었어요.”
“그렇다면 누군가가 두꺼비집 스위치를 내려 일부러 전기를 차단시켰을 가능성이 많군.”

곽정 형사가 다시 염 관장을 보고 말했다.
“두꺼비집을 만지지 말도록 하세요. 지문이나 DNA를 채집해야 할 테니까요.”
그때였다. 전시실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던 관람객이 불평을 했다.
“이거 뭡니까? 우리는 빨리 좀 보내 주세요. 우리가 그림 훔쳐 간 용의자라도 되나요?”

관람객 열한 명 중 짙은 안경을 쓴 여자 관람객이 항의를 했다. 옆에는 비서인지 딸인지 모를 젊은 여자가 함께 있었다.
곽정 형사는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한참 만에 생각이 났다.

인사동 골동품 거래의 큰 손으로 이름난 한강 그룹 사모님이었다.
“오늘 관람객 열한 명은 일단 신원만 확인한 뒤에 돌려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염 관장이 곽정 형사한테 제안을 했다.
곽정 형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핸드폰으로 어딘가 전화를 했다.
“조금만 기다려요. 감식반과 형사 한 사람이 더 올 거요.”
곽정은 그렇게 말한 뒤 앉아 있는 관람객들을 둘러보았다.
“이봐 알바 대학생.”

곽정이 불렀다.
“정찬입니다.”
“음, 정찬이. 내가 저 사람들 신원을 확인 할 테니까 옆에서 메모 좀 해 주어.”
“제가 도와드리는 것은 좋지만 나중에 그게 법적 효력이 있겠습니까? 저는 경찰관도 공무원도 아닌데요.”

“ㅋㅋㅋ⋯ 별 걱정을 다 하는구나.”
곽정 형사는 관람객의 신원과 소지품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조명이 꺼진 사이에 그림을 훔쳤다면 그림이 아직 이 실내에 남아 있는 것이 틀림없다.

관람객 중 누군가가 가지고 있거나 어디 숨겨 두었을 것이다.
“한강그룹 사모님 아니십니까? 죄송하지만 핸드백 좀 열어 볼까요?”
곽정 형사가 공손하게 말했다.
“별꼴이야? 내가 도둑년으로 보여요?”

여자가 화를 벌컥 냈다.
“그냥 절차입니다. 죄송합니다.”
여자는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고 커다란 명품 백을 열어 보였다.
같이 온 비서도 백을 열어 보였다.

엷은 원피스를 입고 있어서 그림을 몸에 감출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잘 접어서 백 같은데 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캔버스에 그린 유화 작품은 그렇게 접으면 작품이 손상되어 못쓰게 되는 경우가 많다. 명화 전문 절도라면 그런 무모한 짓은 하지 않는다.
“이제 가셔도 좋습니다.”

“아니에요. 있다가 경매에 참여할 겁니다.”
여자는 뒤뚱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다음은 다른 여자가 두 사람 있었는데 모두 신원만 확인했다.
두 사람 중 한 여자는 지나치게 가슴이 파인 옷에다가 히프가 엄청 풍만해서 인상적이었다.
“성함이?”

곽정이 눈을 가슴에서 떼려고 일부러 바닥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고현정.”
“예? 고현정 씨는⋯ ”
“맞아요. 스타 이름과 같아요.”
“예⋯ ”

“저도 옥션 참가하러 왔어요.”
그 여자의 커다란 핸드백에도 이상이 없었다.
다음에는 30대의 남자였는데 곽정 형사가 안면이 있었다.
“배용굽니다. 안녕하세요 형사님.”

그 사람은 명화 수집 및 거래자로 이름난 배용구라는 남자였다. 인사동의 화랑가에서 살다시피 하는 사람이라 곽정 형사도 낯이 익었다.
얼굴이 둥글고 눈이 서글서글하고 늘 미소를 지어 인상으로는 착한 사람 같이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문제가 있는 남자였다.
그 사람도 별 이상한 점이 없었다.

“전시 끝나고 경매에 참여할 것입니다.”
배용구는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찍어 둔 그림이 있습니까?”

곽정 형사도 대꾸를 해 주었다.
“한 점 딱 있습니다.”
“성공하세요. 그다음⋯ ”
그때 고현정이 배용구에게 자기 핸드백을 맡기면서 말했다.
“이거 좀⋯ 화장실 다녀올게요.
“아는 사이군요.”

곽정 형사가 물었다.
“예. 경매장에서 가끔 만났어요.”
그러나 곽 형사는 남자에게 핸드백을 맡기는 여자란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한 명을 모두 조사했으나 수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명화의 행방도 물론 알 수가 없었다.
곽정 형사는 열한 명의 관람객에게 모두 가도 좋다는 말을 해 주었다.
그러나 대부분 아래층의 경매장으로 갔다.

그때 경찰서의 감식반 몇 사람이 들어왔다.
“우선 그림이 없어진 벽과 그 밑에 있는 부서진 그림틀 감식하고, 다음에 두꺼비집에서 지문이나 DNA 채집하도록 하세요.”
감식반이 작업을 하는 동안 곽정 형사는 염 관장과 함께 전시장을 샅샅이 훑어보기 시작했다.

전시장에서 노출되지 않은 곳은 조그만 사무실 겸 대기실과 화장실뿐이었다.
곽정 형사는 화장실 천장까지 살펴보았다. 그러나 실내 어디서도 그림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제 그림을 모두 옮겨도 되겠습니까?”

수사가 난감하게 되어 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염 관장이 곽정 형사한테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옮깁니까?”
“아래층 경매장에서 경매를 해야 합니다. 여섯 시부터 경매가 시작되니까 서둘러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곽정 형사는 감식반의 감식 작업이 거의 끝났다는 것을 알고 대답해 주었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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