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든 사회든 개인이든 꿈이 있어야 한다. 꿈(夢·몽, 미래)을 잃은 나라는 병들고 나락으로 추락하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는 게 역사의 법칙이다.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는 모두 꿈이 있다. 미국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미국夢·몽)’라는 아메리칸 드림이 있고,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중국夢·몽)’이라는 중화 패권이 있고, 일본은 ‘강한 일본을 되찾자(일본夢·몽)’는 일등국의 꿈이 있다.

유대인들은 2000여 년 동안 세계를 유랑하면서 언젠가는 ‘약속의 땅’에 돌아가 독립국가를 만든다는 꿈을 키웠다. 테오도어 헤르츨(1860~1904)은 근대 ‘시온주의(Zionism)’의 태두다. 그는 반유대주의에 맞서 이스라엘 건국의 토대를 닦았고, 마침내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은 건국을 선포했다.

시진핑은 국가 주석에 취임하면서 ‘중국의 꿈’을 두 개의 100년으로 정의했다. 2021년(중국공산당 창설 100년)까지는 먹고 살 만한 나라를 만들고, 2049년(중국정부 수립 100년)까지는 확고한 세계 1등 나라로 올라선다는 것이다.

아베는 거의 30년간 혼미하던 일본의 기백을 일깨워냈다. 망해가던 일본 기업들이 신(新)미일동맹, 아베노믹스로 부활했다. 대졸 취업률이 94%에다 전쟁 가능한 국가로 만들고, 중국 굴기에 대항하는 나라로 만들었다.

1899년 공화 정부를 모의한 죄로 체포된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내 나라를 구해주소서”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한성감옥에서 <독립정신(獨立精神)>을 썼다. 대한제국의 문제점과 주변 열강의 움직임 및 국민들이 해야 할 일들을 저술한 이승만은 20대에 이미 가슴 속 깊이 요동치는 자주독립과 입헌정치를 향한 꿈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朴正熙, 1917~1979) 대통령 시절.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고, 월남에 장병을 참전시키던 시절에는 국민들이 배고팠지만 행복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이병철의 “기업보국”, 정주영의 “해봤어?”,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도전정신도 박정희의 “하면 된다”는 시대정신과 정확히 일치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박정희정신은 연기처럼 소멸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역사는 지워지고, 박물관에 가야 발견할 수 있는 박제(剝製) 언어가 되었다. 그 빈자리를 “공정·평등·분배”라는 포장된 가치들이 차지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꿈이 없다. 왜 그럴까? 누구도 꿈을 꿀 수 있게 놔두지 않는 사회가 되었고, 공정·정의·법치가 무너진 나라로 변질했기 때문이다. 위선이 상식을 덮고, ‘공짜 유혹’과 ‘나눠 먹자’는 오도된 분배 정의가 만연해 있다. “나라 잘 돼봐야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이기주의 풍조가 대세가 되었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지도자도 없다. 한국의 합계 출산율(0.84명)은 세계 꼴찌고 인구 고령화 속도가 세계 1위이다. 설상가상 20~30 청년들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외치며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20년 집권 전략’은 들어봤지만 ‘20년 산업 전략’은 듣지 못했다. 국가 백년대계를 얘기하는 대선주자들은 보이지 않고 망국적인 포퓰리즘만 만연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가 희생당하기 마련이다. 미래는 과거 역사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현재에 대한 반성 위에 설계되어야 한다. 진영으로 편이 갈린 꽉 막힌 정국에 변화의 물꼬를 트려는 여당 신임 대표의 청신한 행보에 주목한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를 비롯한 신임 지도부가 지난 5월 3일 동작구 국립 현충원을 찾아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송 대표는 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 방명록에는 “3·1 독립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기여한 대통령님의 애국독립정신을 기억합니다”라고 남겼고,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방명록에는 “자주국방 공업입국. 국가발전을 위한 대통령님의 헌신을 기억합니다”라고 적었다.

이는 낡은 이념에 얽매였던 과거 여당 지도부와는 차별화된 행보이다. 향후 좌파 진영에서 폄훼했던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송 대표는 전당대회 중 “당명을 빼고 다 바꾸겠다”고 했는데, 민주당을 상식 있는 정당으로 만들어 야당과의 진정한 ‘협치’와 당 쇄신에 박차를 가하길 기대한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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