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장관 ‘사과’에도 ‘병사 폭로’ 멈추지 않는 까닭

서욱 국방부 장관. [뉴시스]
서욱 국방부 장관.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최근 군이 ‘부실 급식’, ‘과잉 방역’, ‘병사 폭행’ 등 여러 논란으로 얼굴을 들지 못하는 모양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군 내 부조리가 터져 나온 것. 이러한 군 내부의 문제들은 모두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를 통해 외부에 알려졌다. 지난해부터 병사들에게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이 전면 허용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여러 일로 뭇매를 맞은 군 수뇌부는 연일 현장 점검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내부 폭로는 여전하다. 병영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병사들의 목소리가 거세지는 상황을 일요서울이 살펴봤다.

병사 휴대전화 사용이 부른 새로운 움직임···군투 빗발친다 

군은 하루가 멀다 하고 구설에 오르는 모양새다.

지난달 18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예방한다며 휴가 복귀 후 2주간 격리되는 장병에게 부실한 급식이 제공됐다는 논란이 일었다.

51사단 예하 여단 소속이라는 해당 제보자는 “휴대전화도 반납하고 TV도 없고, 밥은 이런 식인데 감방이랑 뭐가 다르죠. 휴가 다녀온 게 죄인가요”라는 글을 제공된 급식 사진과 함께 군 관련 페이스북 커뮤니티(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에 올렸다.

이 때부터 ‘부실 급식’ 논란이 시작됐다. 다른 부대에서도 ‘나도 당했다’는 식의 폭로가 잇따랐다.

- 고개 숙인 국방부 장관

육군훈련소도 도마에 올랐다. 과도한 방역 지침을 실시해 훈련병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폭로가 이어진 것.

지난달 21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현재 논산훈련소 근황’이라는 제목의 글이 확산했다. 글쓴이는 “올해 3월에 논산으로 입대한 친구가 격리 2주 동안의 일을 편지에 써 준 내용”이라며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하지 않는 군대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친구의 논란 훈련소 생활을 전했다.

해당 게시물에는 친구에게 온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 일부분이 공개됐다. 편지에는 “한 4일 정도는 이를 못 닦는다. 3일째 세수하고 머리 처음 감는다. 화장실도 차례대로 가야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군인권센터도 육군훈련소 관련 폭로를 이어갔다. 지난달 29일 군인권센터는 “여러 제보에 따르면 육군훈련소 모 연대에서는 생활관 별로 화장실 이용 시간을 단 2분씩 허용했다고 한다”며 “심지어 조교들은 화장실 앞에서 타이머를 돌리며 2분이 지나면 ‘개XX야’, ‘씨X 너 때문에 뒤 생활관 화장실 못 쓰고 밀리잖아’ 등 욕설과 함께 폭언을 퍼부었고 아예 다음 차례 화장실 이용 기회를 박탈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보통 화장실 이용 시간이 5시간에 1번씩 돌아오기 때문에 기회를 박탈당하면 10시간씩 화장실을 갈 수 없게 되는 것”이라며 “이처럼 반인권적이고 비인격적 대우가 이어지자 훈련병들은 소변을 참는 방편으로 가급적 물과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양치와 세면을 금지하고, 화장실 이용이나 샤워가 통제되면서 입영 장정의 기본권 보장이 미흡하다는 게 골자다.

군인권센터는 이러한 폭로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이하 국가인권위)에 직권조사를 요청, 국가인권위는 군 인권 상황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여러 논란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서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 국방위원회 업무보고 모두발언을 통해 “최근 일부 부대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조치 과정 중에 발생한 격리 장병 급식 부실, 열악한 시설 제공, 입영 장정 기본권 보장 미흡 등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리게 됐다”며 “국방부 장관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며 송구한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방부 청사 별관. [뉴시스]
국방부 청사 별관. [뉴시스]

- 급하게 소통 대책 내놓은 軍

군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국방부 장관이 공식적으로 고개를 숙인 상황에서 군 간부가 운동경기 도중 병사를 폭행해 전치 6주의 부상을 입힌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피해 병사는 폭행한 간부가 처벌받지 않는 등 후속 조치가 미흡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결국 부대 사단장은 공식 사과했다.

육군 22사단장은 입장문을 통해 “해당 부대 사단장으로서 이번 일로 인해 상처 받은 용사와 부모님께 심심한 위로와 함께 송구스러운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1월5일 한 용사가 풋살 운동 중 모 중사에 의해 슬개골 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입었고, 이후 처리 과정에서 간부들의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 있었다”며 “사건 발생 이후 군 수사기관에서 해당 간부에 대해 엄중히 조사한 후 법규에 의거 형사 처리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건 발생 시 지휘 조치를 소홀히 하고 부적절한 행동을 한 관계자들에게는 감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부대 규정에 의거 적절한 처분을 내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군은 여러 논란에 대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페이스북 커뮤니티 육대전을 비롯한 여러 온라인상에서의 폭로는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명 ‘군투(군대 미투)’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 군대 내 휴대전화 사용이 허용되면서 불러온 뜻밖의 변화다. 그동안 병사들이 참고 인내하던 문제들을 쏟아내고 있는 셈이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자 국방부도 익명성에 기반한 소통 채널을 만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6일 “근본적으로 익명성에 근거를 두고 소통 채널이 효과적으로 운영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존 고충처리 채널인 ‘국방 헬프콜’을 개선하고나 페이스북 ‘육군이 소통합니다’ 페이지 등 각 군의 SNS 채널을 통합해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물론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군 내에서 자체적으로도 해결이 가능한 문제들을 외부에 굳이 알릴 필요가 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곪아 있던 군 문제가 드러나고, 고쳐 나갈 수 있는 계기가 형성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역 병사들이 군의 뿌리 깊은 부조리 문화를 바꿔 나가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소통 방식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폐쇄적인 군대 분위기부터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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