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철 편집국장
홍준철 편집국장

최근 MBC 스트레이트 프로그램에서 사실상 한국 종이신문의 종언을 선언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필리핀 마닐라까지 날아가 재래시장에서 포장지로 사용되는 한국 종이신문의 실태를 추적 보도했다. 방송 의도야 한국 메이저 신문사들이 ABC협회(유료발행부수 인증협회)에 가입해 있지만 광고 때문에 발행 부수를 부풀리거나 조작해 과대 광고료를 받고 있다는 의혹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에 MBC는 매일 주요 신문사들이 몇 십만부씩 종이신문을 찍고 있지만 대부분은 동남아시아 과일·생선·꽃가게 포장지로 수출되고 실제 독자에게 판매되는 신문은 턱없이 낮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종이신문이 처한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도한 셈인데 뒷맛이 영 개운치 않은 것은 신문 기자로 살아왔고 현재도 살고 있는 필자의 처지 때문일 것이다. 크게 방송도 언론사다. 그러나 종이와 지상파 방송인 MBC, KBS, SBS와의 큰 차이는 이들 방송사는 뉴스를 원오브뎀으로 갖고 있지만 종이신문은 정치, 경제, 사회 등 주요 뉴스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연예, 문화, 스포츠면도 있지만 메인은 아니다. 한 마디로 뉴스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그만큼 종이신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런데 MBC 스트레이트는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포장지로 둔갑한 한국 신문의 초라한 민낯을 고발하면서 망신을 넘어 굴욕감까지 느끼게 편집했다. 동종업계간 건들지 말아야하는 게 자존감이다. 특히 기자가 자존감이 사라질 때 기사는 왜곡되고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게다가 언론시장이 종이시대에서 이미 네이버, 다음 등 포털로 넘어간 지 오래다. 또한 1인 미디어가 생길정도로 다매체 시대로 기존에 종이신문이 누려왔던 특권 역시 사라진 지 오래다. 시간상의 문제지 돌을  던지지 않아도 고사직전이다.

물론 그렇다고 한국 신문사들이 잘했다는 뜻은 아니다. 유료발행부수를 부풀리고 일부 신문사는 조작까지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제시대부터 군부독재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진실을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목숨까지 위협받으면서 기사를 작성했던 그 많은 선배 후배 동료 신문기자들의 자존감까지 망가뜨리면서까지 망신주기용 편집을 했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100년 이상 전통을 지닌 신문사를 갖고 있는 영국은 신문시장의 몰락에 대처가 달랐다. 코로나19에 온라인의 발달로 영국 저널리즘 역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유료부수의 격감을 걱정하는 신문사들이 영국 ABC협회에 부수 인증 결과를 일반에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을 했다. 영국 ABC 협회는 매달 일간지의 유료 부수 발행을 공개하고 광고주는 이를 참조해 광고 단가를 결정해 왔다. 결과는 ABC 협회는 이런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동안 종이신문의 사회적 기여를 인정하고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현실을 감안한 조치였다. 물론  한국신문사들과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무리일 수 있다.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영국 신문사들의 전통이 이런 조치가 가능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현재 문재인 정권은 ‘가짜뉴스와 전쟁’을 선포하면서 언론개혁을 예고하고 있다. 사실상 언론 길들이기다. 눈에 가시같은 존재가 한국 보수 신문사들일 것이다. 그렇다고 언론사들을 정권 입맛에 맞게 요리하기가 만만치 않다. 이런 가운데 MBC가 동종업계에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신문사와 방송사가 서로 진흙탕싸움을 할수록 정부는 언론개혁의 명분은 더 커질 것이다. 딜레마다. 방송사의 민낯도 까보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더 이상 다 죽어가는 종이신문 시장에 ‘영혼없는’ 돌파매질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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