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면책특권’은 무소불위?···비난 여론 빗발

[그래픽=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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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최근 주한 벨기에 대사 부인이 서울의 한 옷가게 직원들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면책특권’으로 인해 처벌할 수 없게 되는 등 외교관과 그 가족들이 면책특권 뒤에 숨어 일탈 행위를 서슴지 않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빈 협약에 규정된 면책특권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는 상황이다. ‘무소불위의 권력’, ‘수사 피하는 방패막이’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는 ‘외교관 면책특권’에 대해 일요서울이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빈 협약에 규정된 면책특권 수정을 공론화해야목소리

최근 면책특권에 대한 논란이 거세진 것은 주한 벨기에 대사 부인이 서울의 한 옷가게 직원들을 폭행한 사건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지난달 9일 벨기에 대사의 부인은 서울 시내 한 옷가게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직원의 뺨을 때리는 등 행패를 부렸다.

경찰은 주한 벨기에 대사의 부인을 폭행사건 피의자로 입건, 수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수사 초기부터 벨기에 대사 부인은 면책특권을 지니고 있어, 혐의가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형사처벌이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경찰은 우선 절차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당시 경찰은 “입건해서 통상적 수사 절차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외교부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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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도 입장을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달 16일 “주한 외교단 불법 행위에 대해 엄중 대처해 오고 있다”며 “본건에 대해서도 수사 당국과 협력해 적극 대응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주한 벨기에 대사관도 지난달 22일 “주한 벨기에 대사는 그의 부인에 관련된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부인을 대신해 피해자에게 사과드린다”며 “주한 벨기에 대사는 그의 부인이 가능한 한 빨리 경찰 조사를 받을 것임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녀는 뇌졸중으로 인해 입원 치료 중으로 현재 경찰 조사에 임할 수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이후에도 논란이 거세지면서 벨기에 대사 부인은 퇴원 이후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지만, 결국 벨기에 대사관이 ‘면책특권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혀 그를 재판에 넘기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경찰은 절차대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외교관과 그 가족들이 면책특권 뒤에 숨어 일탈 행위를 서슴지 않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오드바야르 도르지 몽골 헌법재판소장. [뉴시스]
오드바야르 도르지 몽골 헌법재판소장. [뉴시스]

지난 2019년 10월 기내에서 여 승무원을 추행하고, 협박성 폭언을 했던 몽골 헌법재판소장의 사건이 대표적이다. 오드바야르 도르지 소장은 범행 당일 항공사 측에 현행범으로 체포됐지만 한국 경찰에 인계되면서 면책특권 대상이라고 주장하며 석방을 요구해 풀려났다. 물론 다음 날 외교부는 도르지 소장이 면책특권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 입건해 조사한 뒤 10일간 출국 금지 조치를 했고 결국 그는 국내에서 약식기소가 확정됐다. 면책특권을 수사를 피하는 방패막이로 여겼던 사례다.

한국 외교관도 마찬가지

일요서울이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실에서 받은 자료(외교부에 요청해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올해 3월까지 주한 외국공관원 사건‧사고 발생 건수는 총 69건으로 집계됐다. 2016년에는 16건, 2017년에는 11건, 2018년에는 14건, 2019년에는 13건, 2020년에는 11건, 2021년 3월까지 4건으로 한 달에 한 번꼴로 일어나는 셈이다.

이 중 대부분은 교통사고, 소액절도 등으로 나타났다. 강력범죄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주한공관원들에게 국내 법규를 준수토록 지속 독려하고, 관련 공한 회람 및 가이드라인 배포 등을 통해 사건‧사고 예방에 각별히 노력 중”이라며 “사건‧사고 발생 시에는 사안의 경중에 따라 우리 수사당국 조사에 대한 적극적 협조를 촉구하고, 해당공관 대사 등 관계자를 초치해 항의하는 등 엄중히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외교부 의지와는 다르게 주한 외교관과 그 가족들의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6년 칠레에서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한국 고위 외교관, 2017년 주뉴질랜드 한국 대사관에서 현지 남성 직원을 성추행한 한국 외교관 등 범죄를 저지르고 면책특권을 내세운 사례다.

해외에서도 논란거리

그렇다면 외교관 면책특권은 정확히 무엇이고, 어떠한 권한을 가질까. 외교관 면책특권은 전 세계 192개국이 가입한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으로 보장된다. 외교관과 그 가족들에게 주재국의 민형사상 책임을 면해 주는 것이다. 체포나 구금을 당하지 않고, 형사 재판 관할권으로부터 면제돼 범죄를 저질러도 주재국에서는 재판에 넘길 수 없다. 빈 협약은 ‘개인의 이익을 위함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공관 직무의 효율적 수행을 보장하기 위해 외교관들에게 각종 특권을 제공한다’고 정해 놨다.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선 국내법으로 주한 외교관 등을 처벌하려면 외교관을 파견한 정부에서 면책특권을 포기하면 된다. 빈 협약 32조에서는 외교관을 보낸 파견국은 “재판 관할권의 면제를 포기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외교관 면책특권은 국가의 주요 권리로 여겨져, 이를 포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일요서울이 김 의원실에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올해 4월, 10년간 주한 외국공관원이 면책특권 포기(재판 관할권 포기)로 처벌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외교관 면책특권은 해외에서도 논란거리다. 미국 뉴욕의 경우, 지난 2015년 외교관 차량의 불법주차 과태료만 160억 원이 넘었다. 2019년에는 미국 외교관 부인이 영국에서 교통사고를 내고 자국으로 도망가 영국 국민의 공분을 샀다. 논란거리로 떠오를 때 마다 과도한 면책특권을 줄이자는 의견이 잇따랐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무산돼 왔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서울에 “아시다시피 크게 지적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국제적인 문제라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도 192개국이 가입해 있는 다자 협약을 고치는 것은 어려운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빈 협약에 규정된 면책특권 수정을 공론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는 상황이다. 이번 주한 벨기에 대사 아내 사건과 관련해서도 비난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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