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 방식으로 추진” 2500억 제안까지… 신경전 과열

지난 5월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영화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관련 간담회를 열었다. 사진은 이건희 컬렉션 중 하나인 이중섭 작가 작품의 ‘황소’를 소개하는 모습이다. <뉴시스>

 

[일요서울 | 신유진 기자]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놓고 전국 각지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지역만 서울시를 비롯해 대구시, 부산시, 경기도 과천시, 수원시, 용인시, 오산시, 평택시, 경남 진주시, 전남 여수시 등 전국 팔도에서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몰두하고 있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족은 2만 점이 넘는 미술품을 국가에 기증했다. 이 회장이 보유했던 작품의 개수도 눈길을 끌었지만 작품의 가격은 물론 그 가치는 사상 유례없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면서 외신에서도 주목해 더욱 화제가 됐다. 각 지역에서는 이 회장의 작품을 소유한 미술관이라는 수식어만으로도 지역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눈치다.

유치 추진 첫 시동 걸었던 부산… 수도권 vs 비수도권 대립 구도 형성

문체부, 종로구 송현동에 이건희 미술관 건립 추진?… 지자체 반발

이건희 미술관 유치 문제를 두고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의 많은 지자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부산은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위해 공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3일 부산시는 정부에 이건희 미술관 건립에 대해 공모 방식으로 추진해 달라고 공식 건의했다.

현재 부산을 비롯해 이건희 미술관 유치 의사를 밝힌 곳은 수도권의 경우 과천시, 수원시, 평택시, 서울 용산구 등이며 지자체에서는 대구, 경남 진주, 의령군, 전북 전주, 전남 여수 등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지자체 30곳 등에서 유치를 희망하기 때문에 각 지역에서는 유치 과정을 투명하게 공론화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 유치에 적극적인 ‘부산’
  파격적 제안 내놓은 ‘대구’

이건희 미술관 유치 의사를 처음으로 밝힌 지역은 부산시로, 박형준 부산시장은 본인의 SNS에 “부산 북항에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부산 오페라하우스가 이미 건립 중”이라며 “이건희 미술관이 이와 나란히 들어선다면 세계적 문화 관광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수도권이 아닌 비수도권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처음으로 건의했던 곳도 부산이었다. 박 시장은 지난달 13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이건희 미술관 부산 유치 문제와 관련, 기자회견에서 “누군가가 이런 제안을 하지 않았다면 이건희 미술관은 당연히 서울이나 수도권에 들어서지 않았겠느냐”며 “우리나라 문화시설 2800여 개 중에 36%, 미술관은 전국 200개 중 50% 이상이 수도권에 편중돼 있어 문화예술 균형 발전이나 문화 분권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관점에서 이건희 미술관도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들어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구 경우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으며 이목을 끌기도 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이건희 미술관 건립에 시비와 시민 성금 등을 모아 2500억 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권 시장은 지난 1일 대구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이건희 미술관은 반드시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건립돼야 하며 최적지는 준비된 도시 대구”라며 “대구는 이건희 회장의 출생지이자 삼성의 창업지로 삼성의 태동을 기억하는 공간과 스토리가 곳곳에 스며 있는 삼성의 홈타운”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더해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 나선 나경원 후보까지 대구에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하겠다고 공약하며 대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나 후보는 지난 3일 대구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시민들이)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해 달라고 한다. 확실히 하겠다”라고 언급했다.

 

사진은 지난 5월 이건희 미술관 대구유치 시민추진단이 기자회견을 열고 이건희미술관을 비수도권에 건립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뉴시스]

 

- 청사부지에 미술관 건립 ‘과천’
  미술관 유치 추진위원회 출범 ‘용인’

경기도 과천시는 청사부지에 주택 공급 대신 이건희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3일 김종천 과천시장은 브리핑을 통해 “전날 김부겸 총리를 만나 청사 유휴지 문제를 항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이건희 미술관 건립과 종합병원 중심의 의료바이오클러스터 조성을 제안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특히 이건희 미술관이 유휴부지에 들어서게 되면 문화예술공간을 갖춘 공원이자 과천시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과천시민 1만여 명은 정부의 8.4 부동산정책 발표에 따른 정부과천청사 유휴지 주택 공급 계획을 반대하고 있다. 김종천 과천시장 역시 정부과천청사 유휴지 주택 공급 계획을 반대하고 있다.

용인시는 이건희 미술관 건립을 위해 ‘이건희 미술관 용인유치 시민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위원회는 용인시민을 비롯해 용인예총, 용인문화원, 경기도여성단체협의회 용인시지회 등 지역의 53개 단체가 자발적으로 나서 구성했다. 진주시 역시 지난 1일 ‘이건희 미술관 진주 유치위원회’ 출범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유치활동에 나섰다.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쟁 신호탄은 미술계가 먼저 터뜨렸다. 지난 4월30일 미술계는 이건희 미술관 부지와 관련해 서울 종로구의 송현동 부지와 정부서울청사 등이 적격하다고 밝혔다. 이후 박형준 부산시장을 비롯해 각 지자체 수장들이 수도권에 건립을 반대하고 지방에 유치하라고 뜻을 밝히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은 이건희 미술관을 두고 대립 구도에 들어갔다.

한편 문체부는 서울시 측에 종로구 송현동 부지에 이건희 미술관 건립 의사가 있는지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 측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다만 문체부는 지자체의 반발을 우려한 탓인지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지자체의 요청도 살펴보고 있다”, “와전됐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미 이건희 미술관을 송현동 부지에 건립하는 것에 기대하는 분위기다. 또한 송현동 부지는 애초 삼성가(家)에서 미술관 건립을 위해 매입했던 땅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달 중 문체부는 각계 의견을 수렴해 미술관 신설 계획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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