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소환장 겁먹은 정치인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여의도가 박연차 리스트로 몸살을 넘어 홍역을 앓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연차 리스트’에 이어 ‘정대근 리스트’, ‘강금원 리스트’가 곧 터질 것이라며 초긴장된 상황이다. 검찰 주변에서도 오는 9월 정기국회전까지 사정정국이 계속될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주 ‘박연차 리스트’(본지 779호 단독입수-박연차 리스트 추정 전현직 국회의원 명단 ‘공개’)가 보도된 이후 여의도에는 6종의 ‘박연차 리스트’가 횡횡하고 있다. 기존의 문건에는 정치권 전현직 인사들이 대다수였지만 새롭게 등장한 리스트에는 정치권 인사를 비롯해 전현직 검찰, 청와대 인사들이 포함됐다. 특히 문건 제목도 ‘박연차 리스트’에서부터 ‘박연차 비서실본’, ‘여의도본’, ‘서초동본’ 등 다양하게 실명으로 거론돼 있다. 정치권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는 ‘박연차 리스트’를 모아봤다.

본지가 보도한 779호 ‘박연차 후원금 리스트’에는 전현직 국회의원 25명과 민주당 고위 인사 등 26명의 인사들이 담겨 있었다. 이 명단에는 민주당.열린우리당 전현직 의원이 과반수를 넘었고 한나라당 친박, 친이 인사들이 일부 포함됐다.

이후 정치권에는 박연차 리스트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이 중에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뿐만아니라 정OO, 양OO, 신OO, 최OO, 홍OO 등 후원한 인사들의 실명과 직책이 담긴 리스트도 출현했다. 특히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 명의로 후원금을 받은 정치권 인사들과 받은 날짜, 금액이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었다. 이 문건에는 2006년 4월 6일 열린우리당 C 의원(300만원), J 의원(300), 2004년 4월 열린우리당 M(300), K(300), 민주당 전 의원 K(200) 등 포함돼 있었다.

정 전 회장이 건넨 날짜와 소액임을 감안한다면 합법적으로 후원금을 받은 인사들을 중심으로 명단이 나열됐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정 전 회장이 최근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며 태도를 바꾼 이상 합법적으로 돈을 받은 인사들 역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박연차 리스트, 강금원 리스트 ‘횡횡’

정 전 회장은 2007년 6월 박 회장에게서 홍콩 계좌로 250만달러(37억원)를 받은 혐의가 추가로 드러났지만 막판까지 부인해왔다. 중국의 한 비료원료 납품 회사로부터 20만달러의 뇌물을 받은 정 전 회장은 총 뇌물액수가 110억원에 이른다. 홍콩 계좌로 받은 돈외에 세종증권 인수 청탁 대가로 세종캐피털 홍기욱 사장으로부터 받은 50억원,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휴켐스 인수와 관련해 받은 20억원, 현대차로부터 서울 양재도 농협 빌딩 매각 리베이트로 받은 3억원이 등이다.

반면 정 전 회장은 정치인들에게 건넨 자금은 이광재 민주당 의원에게 3만 달러,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에게 1000만원 등 모두 50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지난해 구속된 뒤에 구 정권 정치인 30여명이 구치소를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진 정 전 회장이 입을 열 경우 파장은 ‘박연차 리스트’ 맞먹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 인사들의 관측이다.

현행 선거법상 개인당 500만원이하 후원금이 허용돼 있지만 돈을 받은 인사들중 민주당 서갑원 의원,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 열린우리당 김맹곤 전 의원, 한나라당 허태열 의원, 경남 김해시을 송은복 후보자 등이 검찰수사를 받고 있거나 소환될 인사들이어서 합법적으로 돈을 받은 인사들 역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박연차 리스트’가 버전업된 문건에는 고위 검찰 인사들 명단까지 담겨져 있어 사실일 경우 파문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그동안 검찰은 ‘검찰관계자는 없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이 문건에는 M 지검장, P 기관 부장, S 고검장, L 고검장, P 전 고검장, K 전 고검 차장, P 전 지검장 등 PK에 근무했거나 근무 중인 검찰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검찰뿐만아니라 경찰 고위 인사들 실명 또한 존재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전 청장출신 2명과 PK 지역청 차장 등이다.

검찰에서는 구체적인 검경 고위인사 연루설이 나오자 박 회장이 부산지검 평검사로 재직하던 부장검사와 검사장 한 인사, 그리고 전직 경찰 최고위급 인사 등 금품을 수수한 인사들에 대해 소환 조사가 임박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편 본지가 입수한 6건의 문건에는 단순히 ‘박연차 후원금 리스트’에서부터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만든 박연차 리스트’, ‘박연차 비서실본’, ‘여의도본’, ‘서초동본’ 등 다양한 버전들이 존재했다.

이들 문건 내용중에는 ‘박연차 리스트는 알려진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거론되고 있으나 확인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임’이라고 적혀 있어 신빙성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검찰측 역시 ‘확인되지 않는 사실을 보도하는 것과 관련 곤란하다’는 입장이지만 언론사 및 여의도 정가는 문건 구하기에 혈안이 돼 있어 당분간 이런 문건은 추가로 나올 공산이 높은 상황이다.


전현직 고위 검찰 · 경찰 인사 실명 등재

아울러 문건에 이름이 있는 정치인들은 ‘합법적인 후원금을 받았을 뿐이다’, ‘표적 수사다’며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문건을 접한 한 정치권 인사는 “‘여기서는 70명이다 저기서는 30명이다’하는데 대체 어느 문건이 맞고 틀리는지 알 수 없다”면서 “버전이 다른 게 하도 돌아다니다보니 현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인사들을 죽이는 ‘살생부’라는 생각이 든다”고 음모론을 제기했다.

기자가 접한 6종의 ‘박연차 리스트’를 비교해 보면 정치권 전현직 인사들 30여명은 중복돼 거명돼 있지만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인사들이 새롭게 추가됐다는 점에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유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만 했다.

한 문건에는 경찰 고위 인사 실명을 거론하면서 ‘(PK 지역) 일선 서장들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이 돈을 먹었다’는 구절이 삽입돼 있어 사적인 감정이 담긴 듯한 뉘앙스마저 풍겼다.

이에 민주당 한 핵심 관계자는 “리스트가 확대 재생산되고 살생부처럼 돌고 있는데 이는 검찰이 나서서 클리어 해야 한다”면서 “그런데 오히려 검찰쪽에서 흘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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