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는 소유물이 아니다’… 준비 안 된 ‘젊은 부모’의 비정함 드러나

- 학대 대물림·공감 능력 부족·경제 및 심리적 문제 등 원인 
- 전문가들 “부모 교육의 필요성·중요성 인식하고 배워야”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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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최근 생후 20개월 된 딸을 폭행한 후 시신을 아이스박스에 넣고 방치한 부모에게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이 외에도 10살 조카를 물고문해 숨지게 한 이모 부부, 입양한 2살 정인이를 학대해 뇌출혈에 빠뜨린 양부모, 생후 29일 된 딸을 반지 낀 손으로 때려죽인 친아빠 등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무자비한 학대를 일삼고 사망까지 이르게 한 잔혹한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가해자들 대부분이 ‘젊은 부모’라는 것이다. 실제 최근 3년간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가해자 10명 중 7명이 20·30대 젊은 부모라는 통계 결과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자녀에게 학대를 가한 부모의 원인을 다양한 사회적·경제적 문제로 꼽았다. 재발 방지를 위해선 ‘부모 교육’이 절실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14일 오후 1시40분께 아동학대 살해 및 사체유기 등 혐의를 받는 피의자 A(26)씨가 대전지법에서 오후 2시 30분부터 열리는 영장 실질 심사를 받기 위해 대전 둔산경찰서에서 나와 호송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2021.07.14. [뉴시스]
14일 오후 1시40분께 아동학대 살해 및 사체유기 등 혐의를 받는 피의자 A(26)씨가 대전지법에서 오후 2시 30분부터 열리는 영장 실질 심사를 받기 위해 대전 둔산경찰서에서 나와 호송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2021.07.14. [뉴시스]

생후 20개월 된 딸이 밤에 울었다는 이유로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때려 숨지게 하고 아이스박스에 유기한 친부 양모(29)씨가 지난 14일 구속됐다. 양 씨는 “생활고로 스트레스를 받던 중 어느 순간부터 아이의 울음소리가 짜증나기 시작했다”고 진술했다. 법원은 아동학대 살해·사체유기 등 혐의를 받는 양 씨가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양 씨의 아내는 앞서 지난 12일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됐다. 양 씨의 아내는 “사망 당일 양 씨가 아이를 이불로 덮고 무차별적으로 때렸다”고 진술했다. 

올 초에는 10살짜리 조카에게 귀신이 들렸다며 강제로 욕조 물에 집어넣는 ‘물고문’을 하고 심하게 폭행해 숨지게 한 ‘이모(33·34) 부부’의 사례도 있었다. 최근 법정에서는 이들이 사망 직전 조카를 욕실로 데려가 개의 대변을 억지로 먹게 하는 등 끔찍한 학대 장면이 적나라하게 담긴 영상이 공개돼 세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양부모의 오랜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에 이어 그와 비슷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며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이 일었다. 분유를 토한다는 이유로 생후 2주 아들을 내던진 20대 부부, 생후 105일 된 딸을 쿠션 위에 엎어놔 숨을 못 쉬게 한 20대 친부, 잠을 안 잔다며 생후 29일 된 딸을 반지 낀 손으로 때린 20대 친부 등의 사례들도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19 아동학대 주요 통계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19 아동학대 주요 통계

아동학대 사망률 5년 새 3배 증가… 준비 안 된 ‘젊은 부모’가 대부분

아동학대 사망 발생 건수는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19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례는 최근 5년간 계속해서 증가 추세로 나타났다. 증가 속도 또한 2015년 1만1715건에서 2019년 3만45건으로 2배 이상 가파르게 뛰었다.

또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 접수된 사례 중 아동학대 사망은 2015년 16명에서 2019년 42명으로 늘었다. 수사당국은 학대 신고가 없었거나 피해 아동이 혼자 있다가 숨지는 등 학대와 죽음의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아 단순 사망으로 처리됐을 경우를 감안하면 실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동학대 사망률이 증가한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최근 발생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가해자들 대부분이 20·30대 젊은 양육자라는 것이다. 친척, 양부모, 친부모 등의 차이는 조금씩 있지만 젊은 부부가 아동에게 학대를 일삼았다는 점은 동일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발생한 아동학대 사망 사례에서 가해자로 파악된 53명 중에는 20대(20세~29세)가 25명으로 가장 많았고 30대(30세~39세)가 16명으로 뒤를 이었다. 아동권리보장원의 최근 3년 통계에서도 아동학대 사망 사건 가해자의 73%가 20·30대인 것으로 조사됐다. ▲2017년 69.5% ▲2018년 73.4% ▲2019년 77.4%로 점차 늘어나고 있다.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의 중심에 있는 친모 석모(48)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리는 22일 오전 경북 김천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이 엄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2021.04.22. [뉴시스]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의 중심에 있는 친모 석모(48)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리는 22일 오전 경북 김천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이 엄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2021.04.22. [뉴시스]

전문가들 “부모 교육 반드시 필요해”

전문가들은 젊은 층에서 아동학대 사망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난 원인으로 ‘학대 피해 대물림’ ‘공감 능력 부족’ ‘경제적 문제’ ‘심리적 질환’ 등을 꼽았다. 끔찍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부모 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 등을 인식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일요서울에 “부모가 아동학대를 한 원인은 복합적으로 볼 수 있다”며 “어릴 때 자신의 부모에게 학대 당했던 경험이 대물림된 경우도 있고 젊은 세대가 경제적·심리적으로 부모가 될 준비없이 아이를 낳은 경우도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스박스 유기 사건이나 정인이 사건처럼 부모가 속으로 참고 억제했던 짜증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보다 약한 아이에게 폭력을 분출하는 경우도 있다”며 “아이가 폭력을 당함으로써 얼마나 힘들지 깊게 공감하지 못 하는 것도 문제로 보인다”고 했다. 

김소희 한국토닥토닥연구소 소장은 “어릴 때 학대 경험이 대물림되는 경향도 있지만 학대를 당했다고 해서 모두가 학대하는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학대 부모의 경우 부모 역할에 대한 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낳았다고 해서 자녀를 소유물처럼 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또 “현재 부모가 된 젊은 세대의 경우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만 정서적으로는 허기진 경우가 많다”며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소통하는데 부족함이 따르면서 공감 능력도 무너져버린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젊은 층 중에서 스트레스 관리가 안 되는 심리 질환을 가진 부모들이 상대적으로 약한 아이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표출하는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감정·분노 통제 능력이 결여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어른 부모’ 많아지면 아동학대도 줄어들 것”

전문가들은 부모 교육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책 ‘부모와 아이 중 한 사람은 어른이어야 한다’의 저자 임영주 부모교육연구소 대표는 “부모의 행복이 곧 아이의 행복”이라며 “단지 부모가 아이를 잘 키우고 훈육하는 것만이 궁극적인 목적이 되면 안 된다. 아이를 부모가 원하는 대로만 키울 순 없다”고 단언했다. 

임 대표는 “부모가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려면 부모 스스로에게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성숙해진 부모, 어른다운 부모였다면 아동학대 같은 일은 저지를 수 없을 것”이라며 “이성적인 생각과 판단을 가진 ‘어른 부모’로서 아이를 키워야 하기에 부모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꼭 부모가 되지 않더라도 어른이 되는 과정을 알아가는 부모 교육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며 “내 아이의 부모가 되진 않더라도 어른 부모들이 많이 생긴다면 그만큼 아동학대도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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