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언론중재법안 강행 처리...징벌적 손해배상 ‘최대 5배’ 청구
고의·중과실 입증 책임 언론사에 전가...소송 악용·남발 우려도
야당·언론단체 일제 반발...“노무현 정신 위배, 反與 탄압 시도”

도종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시스]
도종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집권여당의 언론 규제 행보에 야당과 언론단체 등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反)헌법적 언론재갈법’, ‘군사정권에 버금가는 독재 정치’ 등 통렬한 비판이 줄을 잇는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7일 ‘허위·조작 보도’, 소위 ‘가짜 뉴스’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최대 5배까지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소위에서 강행 처리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핵심은 언론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에 따라 재산과 인격권 침해, 정신적 고통이 있었다면 법원이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을 정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허위·조작 보도의 경우 고의나 중과실로 추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반복적인 허위 조작 보도와 기사 제목을 왜곡하는 경우, 사진과 삽화 같은 시각 자료로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 등이 징벌 대상이다. 또 왜곡의 기준으로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단어를 구체적으로 포함시켰다. 이를 두고 복수의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선 허위·조작 보도를 규정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고의나 중과실로 추정한다는 조항으로 인해 입증 책임이 언론사로 전가될 수 있다. 즉, 원고 측이 비판성 보도를 두고 고의 또는 중과실이라고 주장하면 고의성이나 중과실 책임을 언론사가 입증해야 한다는 것. 자칫 이러한 법적 근거를 활용해 보상금을 노리고 언론을 역압박하는 등의 악용 사례 남발을 부추기는 ‘독소 조항’이 될 우려가 크다.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가령 국회의원, 정부 고위 관료 등 권력가나 대기업 등을 비판하거나 지적하는 보도에 대해서도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보도로 인해 손해가 발생할 것을 인식한 경우’에는 언론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했다. 언론의 존재 가치인 ‘비판 기능’을 사실상 부정하는 정치 행정인 셈이다.  

한 법률 전문가는 본지 취재에서 “언론중재법 조항을 살펴보면, 우선 허위·조작 보도의 개념이 모호하다. 자의적 해석에 따라 허위·조작이라 판단될 수 있어 해당 조항이 남발, 오용될 수 있다”면서 “손해액의 ‘5배’라는 기준을 산정한 근거도 부실해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발탁하며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감시를 당부한 바 있다. 언론의 핵심 기능 중 하나가 ‘권력 비판과 감시’다. 악의·왜곡 보도에 대한 기준조차 모호한 기형적 법안으로 언론 핵심 기능을 거세하겠다는 집권당의 이같은 언론 억제 구상은 문 대통령의 일언과도 전면 배치되는 행보로 보여진다.   

그간 여당은 왜곡·악의 보도에 대한 자의적, 피상적 잣대로 “언론지형이 기울었다”고 주장하며 언론중재법 개정을 추진해 왔다. 

언론의 비판 기능 억제, 국민들의 기본권 침해 등 반헌법적 요소가 짙다는 세간의 우려를 등지고 민주당은 입법 절차를 서두르며 ‘기울어진 언론지형’ 다잡기에 혈안이 된 모양새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상임위(문체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 처리에도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현재 문체위 전체회의 구성이 전체 의석(16명) 중 범여권(민주당 8명, 열린민주당 1명)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가 가능한 상황이다.

“언론재갈법, 언론 자유 훼손, 반민주적 악법”

문체위 전체회의 의석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 집권여당의 ‘머릿수 밀어붙치기 식’ 입법 강행에 국민의힘과 정의당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여권이 ‘가짜 뉴스’라 규정하는 왜곡·악의 보도의 기준부터가 집권세력의 진영 논리와 당리당략에 반(反)하는 언론 활동 제약을 위한 포석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만큼, 민주당이 입법을 추진 중인 언론중재법안은 위헌 소지는 물론 언론의 표현 자유와 권력에 대한 비판 기능을 억제하겠다는 좌편향적 언론관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노무현 대통령은 다수의 인터넷 언론사나 신규 언론사를 설립하고 선택은 국민이 한다는 취지로 언론 다양성을 추구하는 정책을 폈다”라며 “노무현 정부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경직된 언론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강민국 국민의힘 원내대변인도 이날 논평에서 “집권세력에 불리한 기사에 재갈을 물리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일갈했다.

정의당도 비판에 나섰다. 이동영 수석대변인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선출직 정치인, 대기업 등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면서 시민들의 알 권리를 위한 언론의 기능과 역할이 위축되고 제한될 수 있다”며 “보통시민들을 위한 언론 개혁이 되어야지, 집권여당에 최적화된 언론개혁을 추진한다면 언론의 자유는 훼손되고 시민의 알 권리는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5단체(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도 28일 성명을 통해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민주적 악법”이라며 “향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 및 정부 정책의 비판·의혹 보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시도로 간주한다”며 민주당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에 적극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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