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친 심신을 어루만져주는 가수"

휴가철인데도 코로나19 여파로 방콕 해야 하는 사람들은 너무 지쳤다. 갈 데도 마땅치 않아 한강 줄기를 따라 쉴 곳을 찾는다.  30여년 전 부터 낭만이 흐르던 미사리 카페 촌. 지금은 몇몇 곳밖에 없지만 여기는 아직도 희망을 노래하는 가수가 있다.

'권용욱.'

2001년에 ‘희망’이란 제목으로 앨범을 낸 이후 우울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다시 한번’이라는 자작곡을 불러준다. ‘라이브의 지존’ ‘희망의 가인(歌人)이라 불리는 권용은 청중이 단 한명 있더라도 열과 성의를 다해 노래하는 가수로 유명하다. 


50대에 접어든 가인 권용욱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브라스밴드를 하면서 음악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에는 기타를 치면서 라이브 무대에 섰다. 1985년 부산에서 통기타 가수로 활동하다가 포항, 태안 등 지방무대에서부터 서울 대학로로 진출한 후, 1990년대 초반 라이브의 명소 미사리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대형 콘서트와 가요 TV MC, 라디오 방송 고정 게스트로 활동하며 콘서트 형 가수로서 맹활약해 왔다.

2001년에는 1집 음반 ‘희망(HOPE)’을 발표했다. 1집에 담겨있는 ‘희망’이란 곡은 이후 2집 ‘날개’(2004), 3집 ‘인생’(2005), 리메이크 앨범 ‘Life is…’(2008)를 냈다. 현재까지 50여 곡을 발표했고, 특히 1집에 실린 ‘길’은 통기타, 어쿠스틱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

‘벤허’ ‘윤시내의 열애’ 등 수많은 라이브 카페가 미사리의 밤을 장식했지만 지금은 ‘윤시내의 열애’에서만 권용욱의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낭만의 밤을 맞을 수 있다. 

권용욱은 최근 찌는 듯한 더위와 코로나19로 지친 팬들을 위해 ‘희망 라이브’를 선언하고 미사리 카페와 유튜브 ‘권용욱 TV' 채널에서 삶의 의욕을 돋우는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젊은 연인들부터 황혼을 바라보는 부부까지 손을 잡고 앉아서 권용욱의 열창에 환호한다.

닉네임 코코**는 "권용욱TV는 희망 세포 배양소, 행복 세포 배양소입니다"라고 감탄한다.

또 다른 닉네임 요가**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무의미한 나날들, 권용욱의 노래를 들으면서부터 죽어 있던 감정 세포들이 마구마구 살아난다. 삶에 생동감이 생겼다”는 글로 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해외에 있는 새로운 팬까지 팬 카페에 감동의 글을 올린다. 

권용욱은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서 노래해 왔다. 20여 년 전 공중파 방송의 아침드라마 '폭풍의 여자'에서 ‘사랑아 사랑아’를 부를 때부터 불행한 사람을 위해 노래할 결심을 했다. 지적 발달 장애우 돕기 자선공연을 시작으로 매년 2회 이상의 콘서트를 이어가고 있다. 

권용욱의 콘서트 역량은 청중을 열광시킨다. 오랜 라이브 무대 경험으로 쌓은 재치 있는 입담도 주목 받는다. 그 재능을 인정받아 각종 프로그램의 MC로도 활약해 왔다. 또한 드라마 OST 전문 가수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로 MBC 아침드라마 <폭풍의 여자>에서 ‘날개’를 불러 대중의 가슴에 깊이 스며들었다. 

- 쓰레기처럼/잡초처럼 살다/지쳐버린 영혼들

이젠 아무 거들떠/보지 않는/하찮은 이 된다 해도

가슴 속에/깊은 꿈 있으니/쫄지 말고 살아가라

널 보며 무시해도/이 악물고 살아가라

할 수 없다 생각하지 마/겁내지마 덤벼봐
(권용욱 ‘닐개’)

권용욱의 진가는 자신이 작사 작곡한 ‘날개’ ‘희망’, 희망2‘, ’다시 한 번‘ 같은 노래에서 느낄 수 있다.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행복한 삶을 가꾸게 하는 ‘희망 라이브’에 공감하며 그에게 박수를 보내게 된다고 한다.

팬들은 권용욱이 무대에 서면 마음이 푸근해진다고 한다. 팬들끼리는 서로를 ‘호프님!’으로 부른다. 권용욱의 팬 카페 이름이 ‘Hope in Hope’이듯 권용욱이 바로 ‘희망(Hope)’을 노래하는 가수이기 때문이다.

비록 2000여 명의 팬밖에 없지만 20년이 넘는 팬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가족 같은 팬클럽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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