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 확산, 백신 접종률 상승흐름 단절’에 위기감 고조
연방정부 등 예방접종 의무화 적용...단계적 확대 검토
바이든표 신규 방역, 법적 근거 마련 등 선결과제 산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매클레인에 있는 국가정보국을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미국 정부가 연방정부 직원들을 시작으로 연방기관, 사기업에 이르는 광역 백신 접종 의무화 시행을 고심 중이다. 우선적으로 일선 의료진들을 시작으로 연방정부 직원까지 코로나19 예방접종을 의무화하는 한편, 향후 백신 접종 의무화 대상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3억 명 이상의 대인구를 보유했음에도 양질의 백신 보급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세계 상위의 백신 접종률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이다. 그러나 이런 미국마저도 최근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과 백신 접종률 상승 흐름 단절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이에 더욱 공격적인 방역 조치 필요성이 제기되자, 바이든 정부가 코로나19 예방접종 의무화 카드를 꺼내든 것. 정치적으론 이번 방역 조치 성과가 내년 중간선거의 당락을 가를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바이든 정부로선 백신 접종 의무화 안착에 사활을 건 상황이다.  

미국 CNN, WSJ(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26일(현지 시각) 연방정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는 미국 정부가 백신 보급을 통해 대전염병 확산을 성공적으로 억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로, 연방정부 직원들에게도 의무적 백신 접종을 요구하고 있는 것. 

이와 동시에 바이든 정부는 연방기관이나 대기업을 중심으로 의무화 대상을 확대하기 위한 법적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국민 대상의 예방접종 의무화 도입을 위한 포석이자 단계적 조치로 풀이된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연방정부 소속 공무원 중 1순위로 일선 의료진을 꼽으며, 이들 의료종사자들에 대한 코로나19 예방 접종을 우선적으로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이날 예방 접종 의무화가 적용된 의료진은 치과의사, 검안사, 족부(足部)전문의, 간호사 등이다. 공격적 예방 접종으로 의료진 집단면역이 형성되기까진 약 8주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의 공식 발표가 있은 당일 미 보훈처는 전국 의료종사자 11만5000여 명에게 두 달 내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라고 고지했다. 바이든 정부의 백신 접종 의무화 방침이 적용된 첫 사례다.

이번 의료 실무진 예방접종 의무화는 미 정부의 백신 미접종자들을 향한 강력한 시그널이자, 코로나19 집단면역 목표 달성을 위한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 의지를 시사한다.  

미국은 인구 3억3200만여 명에 이르는 세계 3위 인구 대국임에도 백신 접종률이 글로벌 상위를 달리며 방역 우수국 사례로 손꼽힌다.

지난 27일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률은 56.51%(1억8899만여 명)로, 완전 접종률도 절반에 가까운 48.83%(1억6331만여 명)다. 현재 백신 완전 접종률 50%를 상회하는 국가는 영국(55.18%), 스페인(55.93%), 캐나다(56.74%), 칠레(63.13%), 네덜란드(50.52%), 벨기에(55.02%), 아랍에미리트(69.40%), 이스라엘(61.63%), 헝가리(55.96%), 싱가포르(53.37%) 등 28개국에 이른다.

반면 한국은 29일 기준 1차 접종률 35.8%(1838만2000여 명), 완전 접종률 13.7%(701만8000여 명)로 세계 중하위권에 속한다.   

접종률 증가 둔화에 델타까지...美 위기감 고조

그럼에도 여전히 지역사회 곳곳에서 백신 접종을 꺼리는 이들도 적지 않은 만큼, 미국 정부는 백신 접종률 상승세가 주춤한 현 시점이야 말로 공격적 방역 대책을 구상할 적기라고 판단하고 있다.

더욱이 미 백악관은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백신 접종률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지역에 대한 선제적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상황이다. 연방정부 소속 직원들 중심으로 백신 접종 의무화를 추진하는 것도 이에 따른 조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방미 중인 무스타파 알카디미 이라크 총리와 만나 “실제로 시설에서 일하는 모든 의사들이 예방접종을 받아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는 전염성 높은 델타 변종 바이러스의 확산과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백신 미접종자수를 우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집단면역 구축 노력에도 불구하고 백신 신규 접종률 증가세가 둔화한 이후 완전 접종률 50% 고지를 목전에 두고 정체된 실정이다. 

실제로 미국에선 코로나19 팬데믹 제2 위기설도 제기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보훈처에 이어 연방 정부 전체로 백신 의무 접종을 확대하려는 것도 이러한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27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실에서 일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키 대변인은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들에게도 별도의 조건 아래 실내 마스크 착용 권고 조치를 할 것이란 내용과 관련해 "대통령과 직원들이 다시 마스크를 쓸 준비가 돼 있다"라고 밝혔다. [뉴시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27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실에서 일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키 대변인은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들에게도 별도의 조건 아래 실내 마스크 착용 권고 조치를 할 것이란 내용과 관련해 "대통령과 직원들이 다시 마스크를 쓸 준비가 돼 있다"라고 밝혔다. [뉴시스]

美 정부의 접종 의무화, 여전히 갈 길 멀어

정부 소속 직원들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체 및 공공기관 등에 대한 백신 접종 의무화 확대 적용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울러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자들도 실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하는 기존 방역 지침을 복원했다. 미 워싱턴 국회의사당도 예외는 아니다.

CDC의 마스크 방역 지침 변경에 미국 일각에선 혼란이 야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오히려) 백신 미접종자들 때문에 엄청난 혼란이 빚어졌다”면서 “백신 접종에 더욱 협조적이었다면 미국은 지금과 매우 다른 현실을 마주했을 것”이라며 백신 미접종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미 정부는 사기업이나 연방기관 등으로 접종 의무화 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부분에 대해선 당장은 기업과 지방정부의 독자적 판단에 맡기겠다는 방침이다.

바이든 정부의 이번 공식 발표는 백신 접종 대중화에 한 단계 근접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의무화 전면 확대에 앞서 대국민 합의와 법적 근거 마련이란 선결과제가 산적해 있다. 백신 접종률을 대폭 끌어 올리겠다는 미국 정부의 정책 실현 의지는 확고하지만, 대중들에게 백신 접종을 강요할 권한은 제한적이다. 

한편, 프랑스는 백신 접종률 극대화를 위해 강경책을 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카페를 포함한 대부분 실내 공공장소에서 반드시 예방접종 증명서를 제시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프랑스에선 정부가 백신 접종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며 시민단체 등을 주축으로 분노 시위가 잇따라 혼란이 야기됐지만, 한편으론 백신 접종률도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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