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여관 신관(가운데)와 구관(오른쪽). 구관은 지난 1942년 지어졌다. 
보안여관 신관(가운데)와 구관(오른쪽). 구관은 지난 1942년 지어졌다.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서울에는 다양하고 독특한 명소, 그리고 장인(匠人)들이 있다. 일요서울은 드넓은 도심 이면에 숨겨진 곳곳의 공간들과 오랜 세월 역사를 간직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서촌 골목 안쪽에서 80여 년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종로구 통의동 역사 명소 ‘보안여관’이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서인지 서울 경복궁을 중심으로 서촌 골목길 곳곳에는 20·30대 젊은 층들이 한껏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젊은 층을 중심으로 역사적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북촌, 서촌 등의 공간이 ‘핫한’ 장소로 떠오르면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보안여관을 가는 좁은 골목 어귀에는 고풍스러운 음식점과 카페, 상점 등이 관광객들을 맞고 있었다. 

서울 경복궁역 4번 출구로 나온 뒤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청와대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보안여관 간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고동색의 작은 목조 건물인 보안여관 맞은편에는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이 보이고 옆 뒤쪽으로는 신식 빌딩들이 있다. 이 중심에서 새하얀 바탕에 파란 고딕체로 옛 느낌이 물씬 풍기는 간판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1942년 일본인 건축가가 설계해 지은 보안여관은 2002년까지 60년간 쉼터이자 숙박 공간으로 사용됐다. 서촌 통의동 일대는 이전부터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시인 이상을 비롯해 다양한 문학인과 예술가들이 머물며 문화촌의 명맥을 이어왔다. 이 중에서도 특히 보안여관은 문학계 거장들이 거쳐간 곳으로도 유명하다. 

미당(未堂) 서정주는 ‘천지유정’에서 “1936년 가을 함형수와 나는 둘이 같이 통의동 보안여관이라는 데에 기거하면서 김동리, 김달진, 오장환들과 함께 ‘시인부락’이라는 한 시의 동인지를 꾸며내게 됐다”고 적었다. 최성우 보안여관 대표는 2007년 역사가 담긴 이 건물을 매입 후 카페와 서점, 갤러리 등이 한데 모인 복합 예술 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4년여 전 보안여관 바로 옆에는 좀 더 높은 건물이 세워졌다. 바로 ‘보안1942’다. 보안여관의 시작과 함께한다는 의미다. 이들 신·구 보안여관은 서로 보완 역할을 하고 있다. 신관은 구관이 못다한 숙박 기능을 잇기 위해 3·4층을 머무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나머지 지하 2층까지는 카페와 전시관, 모임 공간 등이 들어가 있다. 두 건물은 2층에서 다리로 연결돼 과거와 현재를 오갈 수 있게 돼 있다. 

현재 보안1942에서는 청년작가 지원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이곳에서 첫 개인전을 연 김이예르 작가의 ‘파라다이스(Paradice)’ 전시는 지난 5일부터 오는 29일까지 열린다. 전시 타이틀은 걱정이나 근심 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의 ‘Paradise’와 주사위 ‘dice’가 합쳐져 만들어졌다.

보안여관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자신이 속한 세계가 사실 무작위성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여러 가지 힘은 개인 의지와 상관없이 세계 규모에 따라 책정된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세계관이 내포돼 있다. 이번 전시에는 4점의 영상 작품과 소품으로 쓰인 5점의 설치 작품이 전시돼 이곳에 서 있으면 마치 작품 속 한 장면에 들어온 것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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