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지분 쥔 심상정 ‘캐스팅 보트’ 급부상...대선 초특급 변수 되나

심상정 정의당 의원 [뉴시스]
심상정 정의당 의원 [뉴시스]

- 정의당 ‘脫위성정당’ 선언, 민주당과 잦은 갈등에 통합 불발론↑   
- 沈, 진보진영 표심 잠식 가능성...여야 접전 시 민주당에 치명타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진보 여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이후, 정가에선 대권 ‘4수(修)’에 나선 심 의원이 차기 대선에서 범여권의 운명을 가를 변수를 쥐고 있다는 전망이 팽배해졌다. 이와 반대로 범야권에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제3지대 독자 노선을 택했지만 종국적으로 국민의힘과 후보 단일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의당의 실질적 지주인 심 의원의 대선 파급력에 못 미친다는 평가다. 차기 3.9 대통령선거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정권 재창출·교체 대의를 걸고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대권 도전 선언과 동시에 지지율 5%대 파이를 확보한 심 의원이 내년 대선판의 최대 ‘캐스팅 보트’로 급부상할 전망이다. 이에 집권여당의 속내는 복잡하다. 정권 말기에 접어든 청와대와 민주당을 바라보는 정의당의 시선도 예전 같지 않다. “기득권층, 신 적폐세력”이라며 통렬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데다, 언론개혁 등 각종 법안 처리를 두고 민주당과의 대치 국면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선거철마다 군소 정당들이 씬스틸러급 조연을 도맡아 왔다. 여야 거대 정당 사이에서 핀셋 검증을 들이밀며 판세를 뒤흔들기도 하고, 합당과 후보 단일화를 놓고 선거 국면을 주도하기도 한다.

다만 문재인 후보가 대선 말미까지 대세를 유지했던 지난 19대 대선에서 정의당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당시 유일하게 여성 후보로 나선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지지율 6.17%(202만 표)를 얻으며 군소 정당 후보로서 선전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파로 이미 여야 힘의 균형이 무너진 대선 국면에서 정의당은 변수가 아닌 상수에 그쳤다.

이와 달리 차기 대선은 여야 대선 후보들의 초접전이 예상되면서, 대선 지지율 5% 안팎의 심 의원의 대선 출마 선언이 갖는 무게감은 다르다.

실제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TBS 의뢰로 지난 13~14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7명에게 범여권 대선후보 적합도(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를 조사한 결과 심 의원은 5.2%로 이재명 경기지사(27.3%), 이낙연 전 대표(18.9%),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5.7%)의 뒤를 이어 4위를 차지했다.

공식 대선 출마 선언에 앞서 컨벤션 후광도 없이 5%대의 지지율을 얻은 것은 21대 국회 여성 최다선인 심 의원의 저력이 읽히는 대목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9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석방 불허 촉구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9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석방 불허 촉구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당 2중대’ 탈피 선언한 정의당의 ‘마이웨이’

심 의원의 대권 도전은 이번이 4번째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선 민주노동당(정의당의 전신) 경선에서 권영길 후보에게 밀려 좌초됐고, 2012년 대선에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단일화에 합의하며 일선에서 물러났다. 지난(2017년) 대선 완주에는 성공했지만 득표율 5위에 머물며 고배를 마셨다.

차기 대선 출마를 결심한 심 의원과 정의당 측은 범여권 후보 단일화 없이 독자 노선을 걷는다는 방침이다.

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지난 5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단호하게 말씀드리지만 단일화는 없다. 완주할 것”이라며 “적어도 집권여당이나 제1야당이 이 구도를 본인들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결선투표제는 당연히 도입해야 한다”고 당 차원의 대선 완주 의지를 재확인했다.

정의당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심 의원도 지난 12일 자신의 SNS를 통해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 심 의원은 “정치인 심상정의 마지막 소임을 찾겠다”면서 “이번 대선에서 정의당의 미래를 여는 길에 저의 쓰임새가 있다면, 후보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고 대권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또 그는 “정의당이 차지하고 있던 제3당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정의당이 주춤하는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는 ‘민주당 2중대’, ‘위성·군소 정당’과 같은 오명을 벗고, 국민들에게 진보정당으로서 독자적 가치를 인정받겠다는 결기를 피력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그러면서 심 의원은 “진보 정치의 역사 위에 있는 저의 책임이 가장 크고, 이 책임 앞에 눈 감지 않겠다”라며 “진보 집권을 꿈꾼 동지들의 헌신을 희망으로 부활시키자. 양당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도록 한국 정치의 판을 가로지르자”고 당원들을 독려했다. 정의당에 따르면 심 의원은 오는 24일 대선 출정식을 가질 예정이다. 


(왼쪽부터) 지난 19대 대선에 출마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뉴시스] 
(왼쪽부터) 지난 19대 대선에 출마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뉴시스] 

정의당, 차기 대선서 민주당에 ‘몽니’ 될까

이렇듯 ‘탈(脫) 민주당 2중대’와 ‘대선 완주’를 공언한 정의당이 집권여당에겐 ‘몽니’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선 지난 대선의 경우 중도·보수 표심이 홍준표·안철수·유승민 후보 난립에 대거 분산되면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대선 레이스 완주에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압도적 표 차로 당선됐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온건 보수 표심의 일정 지분을 가져간 데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보수 진영으로 유입될 수 있는 중도 유권층을 대거 포섭한 결과다.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24.03%의 득표율로 문 후보(41.08%)에 17.05% 차이로 패하며 정권을 넘겨줘야 했다.     

그러나 차기 대선은 야권 대선주자들이 국민의힘으로 소속을 굳히며 제3지대 변수를 최소화한 만큼, 19대 대선과는 여건이 크게 달라졌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다시금 중립지대로 향했지만, 대선 정국이 무르익을 즈음에는 국민의힘과 후보 단일화에 나설 것으로 전망돼 보수 진영의 표심 분산 리스크는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차기 대선은 여야 박빙 대결구도로 흘러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5% 안팎의 지분을 쥐고 있는 심 의원의 존재는 민주당에겐 부담이다. 심 의원은 민주당 지지를 철회한 중도 진보 유권자들의 차선책이 될 수 있다. 결국 민주당 중심으로 뭉쳤던 진보 진영 민심이 심 의원의 대선 출마로 산개할 수 있다는 평가다. 

아울러 정의당 대선후보 경선 문턱을 넘은 심 의원이 본격적인 세몰이에 나서게 될 경우, 노동·여성계를 중심으로 표심 이반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것도 집권당으로선 불쾌한 지점이다.

심 의원의 대선 출마는 여권 단일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에겐 또 다른 위험요소다. 현재 민주당이 열린민주당과의 통합을 추진 중인 가운데, 정의당이 대선 완주 의지를 고수한다면 뿌리가 같은 열린민주당 단일 흡수만으론 민주당이 대선에서 통합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심 의원이 지난 2012년 대선과 같이 본선 말미에 민주당 후보의 손을 들어주고 퇴장하는 시나리오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민주당은 20대 국회에선 캐스팅 보트를 쥔 정의당에 귀를 기울였지만, 지난 총선 압승으로 21대 국회를 장악한 이후 정의당에 대한 태도가 급랭했다. 조국 사태에 대한 입장도 극명한 온도 차를 보였고, 문재인 정부 내각 인선 과정에서도 정의당의 의견이 묵살됐다.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 이은주 원내수석부대표, 장혜영 의원과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김동훈 한국기자협회 회장, 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 소속 회원들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 강행 처리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 절차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 이은주 원내수석부대표, 장혜영 의원과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김동훈 한국기자협회 회장, 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 소속 회원들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 강행 처리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 절차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게다가 정의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석방 건으로 줄곧 당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과거에는 정의당이 선거철 빅 이벤트에서 대승적 판단으로 진보 진영 통합에 수긍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급기야 야당 기질을 발휘하며 발톱을 드러낸 이상 대선 본선에서 범여권 연대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심 의원은 지난 17일 의원총회에서 “정의당은 정부의 정책이라면 무조건 찬성해 온 집권여당,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이 하는 것은 무조건 반대해 온 제1야당과 달리 국민의 입장에서 찬성할 것은 찬성하고, 반대할 것은 반대해 온 정당”이라며 세간에 당 정체성을 각인시켰다.

이런 가운데 정의당과 친문(親文)계의 묘한 갈등도 범여권 통합론에 재를 뿌리는 악재가 될 수 있다.

정의당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취재에서 “우리 당 후보가 선출되면 친문계의 극렬한 저항도 어느 정도 예상되는 바다”라면서 “당 지도부에서도 거듭 입장을 밝혔지만 만일 심상정 의원이 이번 대선 후보로 경선의 턱을 넘게 되면 완주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과 통합하기엔 명분과 실리 모두 약한 게 사실이다”라고 범여권 통합에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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