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반기문 추락 후 金·尹으로 다시 돌아온 충청대망론

김동연 [뉴시스]
김동연 [뉴시스]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충청대망론’을 둘러싸고 범야권 후보들 간 적자경쟁의 서막이 올랐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8월20일 고향인 충북 음성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범야권에선 충청의 적자로 부친이 충남 출신인 서울 태생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주목해왔다. 정치권 일각에선 김 전 부총리의 대선 출마가 윤 전 총장의 지역기반인 충청권을 흔들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최근 대선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들쭉날쭉한 윤 전 총장 입장에선 악재가 아닐 수 없다. 김 전 부총리의 출마가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충청 표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일요서울이 알아봤다. 

-김동연 출마로 ‘충청’ 표심 흔들?... “충청 대표할 능력 보여줘야”

지난 19대 대선에서 ‘충청대망론’과 함께 충청을 기반으로 한 정치인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야권이었던 민주당에선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충청 대표 주자로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을 비롯한 여권진영에선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중심으로 충청대망론이 떠올랐다. 

하지만 안 전 지사는 2018년 3월 미투파문으로 정치권에서 낙마한 뒤 2019년 9월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선고를 받아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난 모양새다. 그리고 반 전 총장은 대권에 의지가 있는 것처럼 나섰지만 결국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정치권에서 퇴장하고 말았다. 그렇게 충청대망론은 사그라지는 듯 보였다. 이후 충청을 대표할 만한 마땅한 정치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20대 대선을 앞두고 야권의 대선주자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선두를 달리기 시작하며 정치권에선 충청대망론의 불씨가 다시 지펴지기 시작했다. 윤 전 총장은 사실 서울 태생이지만 충청권으로 분류된 이유는 그의 부친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가 충남 공주 출신이기 때문이다. 특히 윤 전 총장이 여야 대선주자를 통틀어 선두를 달리는 여권의 이재명 경기도 지사와 후보 지지율에서 박빙의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조사돼 충청의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여권에서도 충청 잠룡으로 부각됐던 양승조 충남지사, 이인영 통일부 장관, 박범계 법무부 장관 등이 꼽혔지만 이번 대선에 뛰어들진 않았다. 

- 김동연 “충청인의 자부심으로 꿋꿋하게” 고향서 대권 도전
하지만 범야권에서 제3지대와 맞물려 충청 출신의 새로운 주자가 떠올랐다.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동연 전 부총리가 내년 대선 도전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8월20일 고향 충북 음성을 찾은 김 전 부총리는 꽃동네 방명록에 ‘고향의 품에 와서 국민 삶을 보듬는 정치의 첫발을 내딛습니다’라고 썼다. 

김 전 부총리는 그동안 “정권 교체나 정권 재창출을 뛰어넘어 정치 세력을 교체하고 정치판을 바꾸겠다”며 대권 도전 의지를 밝혀왔다.

김 전 부총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도 “기존 정치 세력에 숟가락 얹어 탑승할 생각 없다”며 “정치 벤처 기업에 근무하는 심정으로, 뜻과 실천을 위한 세력을 모아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제3지대 신당 창당 의지를 드러냈다. 이어 김 전 부총리는 “삶의 전쟁과 정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출마하려는 것”이라며 “창당을 포함한 모든 대안을 열어놓고 고민한 뒤 구체적인 계획을 곧 말씀 드리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고향에서 ‘국민 삶을 보듬는 정치의 첫발을 내딛겠다’며 대선 출마 의지를 공식화한 김 전 부총리는 음성읍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원로와 사회단체와 간담회에서도 “충청인의 자부심을 가지고 꿋꿋하게 가겠다”고 강조했다. 김 전 부총리는 “본격적인 대선 행보를 시작하기 전에 고향을 찾아 어르신을 뵙고 38년 전 공직을 시작하던 초심을 되살리고 있다”며 “조상의 뼈를 묻은 고향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자신의)고향은 음성이고 외가는 진천, 처가는 공주”라고 강조한 그는 “충청대망론의 취지는 편협한 (지역주의)정치를 넘어 통합으로 가는 것”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충청권 출신 대통령의 가능성을 일컫는 ‘충청대망론’의 불씨를 다시 살리겠다는 것이다. 역대 대선에서 김종필·이회창·이인제·안희정 등 충청 출신 주자가 있었으나 모두 고배를 마셨다. 김 전 부총리와 같은 음성 출신인 반기문 전 총장이 19대 대선 당시 유력 주자로 부상했었으나 역시 완주하지 못했다.
김 전 부총리는 전날 서울에서 재경 음성군 고문단을 만나 “장관을 그만두고 고향에 가서 대선 출마를 선언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양당 구조를 깨고 대통령이 됐다”면서 “기존 정치인의 생각과 행태를 따르지 않는 ‘큰길’을 갈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뉴시스]
윤석열 [뉴시스]

 

- 윤석열 “내 뿌리는 충남” 언급 통해 충청 주자 자처
김동연 전 부총리가 본격적인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전에는 윤석열 전 총장이 ‘충청대망론’의 중심에 서 있었다. 윤 전 총장은 자신이 충청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윤 전 총장은 7월 대전을 방문한 자리에서 “저희 집안이 집성촌에서 500년 살아왔고, 부친과 형제분들은 학교 때문에 공주로 이전해 지금까지 살고 계시다. 뿌리는 충남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충청에서 태어나거나 초·중·고교나 대학을 다닌 적이 없는데도, 집안의 뿌리가 충남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충청대망론 주자라는 점을 은근히 내세운 것이다.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였던 양승조 충남지사는 한 라디오 매체에 출연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충청권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렇지만 윤 전 총장이 충청권의 대망론의 적임자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충청과 대망론의 주자라고 생각하신다면 충청에서 태어났든지 학교를 다녔든지 아니면 생활을 했든지 충청의 이익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던 게 있어야 한다”면서 “윤 전 총장은 아버님, 조상이 충남이라는 거 외에는 다른 게 없다. 충청과 대망의 주자라는 것은 좀 어불성설이, 언어도단이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그런 가운데 충청 지역에선 서울 출신의 윤 전 총장과 달리 충북 음성 출신의 김 전 부총리의 대선 출마로 인해 윤 전 총장을 향한 충청표심이 흔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충청에 기반을 둔 야권 관계자는 8월26일 본지와의 만남에서 “아직까지 충청에서 윤 전 총장에 대한 지지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고 있지만 그건 충청대망론 보다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반영된 표심”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김 전 부총리가 충청을 대표할 만한 대선 주자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충청 표심은 이동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8월2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두 후보 모두 대선후보로서 검증해야 할 측면이 많다”며 “충청대망론 자체가 여망에만 그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을 넘어 후보의 경쟁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충청을 둘러싼 두 후보 간 적자경쟁이 범야권 대선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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