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가 뜨거워지고 있다. 내년 3월 차기 대선과 더불어 서울 종로에서도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실시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진원지는 현 지역구 의원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이재명 대세론에 밀려 어려움을 겪어온 이 전 대표는 민주당 대선경선에서 막판 대역전극을 노리며 의원직 사퇴라는 배수진을 쳤다. 민주당 지도부에서는 이낙연 전 대표의 사퇴를 강력 만류했지만 이 전 대표의 뜻은 완강하다. 이결국 의원직 사직원이 지난 15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내년 대선과 동시에 정치1번지 서울 종로에서도 또하나의 빅매치가 현실화됐다. 여야 모두 차기 대선은 물론 정치1번지 종로를 수성해야 하는 치열한 눈치싸움에 접어든 셈이다. 정치적 비중을 고려할 때 서울 종로 보선은 사실상 또하나의 차기 대선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를 방문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장미꽃을 받고 있다. 2017.05.16. 뉴시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를 방문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장미꽃을 받고 있다. 2017.05.16. 뉴시스

- 이낙연, 민주당 호남경선 앞두고 반등 위해 의원직 사퇴 배수진
정치1번지종로 무주공산여야 거물급 정치인 출마 하마평
- 노무현·이명박도 거쳐간 상징성에 차기대권으로 가는 지름길

여야 모두 거물급 정치인들의 참전이 예상된다. 서울 종로라는 상징성을 고려할 때 대권주자로도 손색없는 명망가들이 줄줄이 출전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종로 출마를 저울질했던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물론 김부겸 국무총리의 차출설도 나온다.

또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선전 중인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이나 서울시장 보선에서 고배를 마셨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하마평에 오른다. 야권 인사들의 면면도 더욱 화려하다. 원외 30대 중반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밖에 최재형 전 감사원장,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 나경원 전 원내대표의 도전 가능성도 점쳐진다. 차기 대선보다 더 뜨거운 서울 종로 보궐선거를 둘러싼 여야의 역학관계를 들여다봤다.

이낙연vs황교안2년만 종로 거물들의 빅매치

21대 총선 이후 16개월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서울 종로에는 정치적 격변이 일어났다. 민주당 대선경선에서 고전 중인 이 전 대표가 의원직 사퇴라는 히든카드를 내민 것이다. 오는 25일과 26일 호남 경선에서 반등을 노린 것이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의 가치,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버리고 정권 재창출에 나서기로 결심했다저의 모든 것을 던져 정권 재창출을 이룸으로써 민주주의와 민주당, 대한민국에 진 빚을 갚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추미애 전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의 숨결이 밴 정치1번지 종로가 민주당원과 지지자에게 어떤 상징성을 갖는지를 망각한 경솔한 결정이라고 비판했지만 철회 가능성은 거의 없다. 특히 이 전 대표는 의원직 사퇴 선언 이후 의원회관에서 짐을 빼고 보좌진들을 면직키로 하면서 사퇴 선언 번복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에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던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의 사직안이 지난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전 대표의 사직안 역시 어떤 식으로든 처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 종로가 무주공산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여야 거물들의 움직임도 점차 빨라지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아직 보선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지만 여야의 각축전은 조만간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권에서는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임 전 실장은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성사라는 문재인정부 최전성기를 보냈다. 20대 총선을 통해 여의도 입성이 점쳐졌지만 서울 종로가 이낙연 전 대표에게 돌아가면서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 때문에 내년 3월 종로 보선이 실시되면 임 전 비서실장의 출마가 유력해질 수 있다. 오랜 원외 생활을 접고 여의도 진입을 통해 정치적 도약기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전 비서실장을 제외하면 거물급 여성 정치인들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검찰개혁 이슈를 주도해온 추미애 전 장관과 언론인 출신의 대중 정치인인 박영선 전 장관이 대표적인 다크호스다. 두 사람은 장관직 수행을 위해 각각 21대 총선에 불출마했다. 추 전 장관은 고민정 민주당 의원에게, 박 전 장관은 윤건영 민주당 의원에게 지역구를 물려줬다. 두 사람이 만일 여의도 재진입을 노린다면 서울 종로가 유력 카드가 될 수 있다. 종로 보선을 통해 여의도에 진입한 이후 차차기 대선을 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종로가 고향인 5선의 이종걸 민화협 상임의장 역시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다만 추미애·박영선 전 장관의 경우 종로 보선보다는 차기 대선 이후 실시될 서울시장 선거에 오히려 관심이 높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밖에 김부겸 국무총리의 정치적 행보도 무시못할 요소다.

김 총리 주변에서는 내년 6월 서울시장 출마설, 대구시장 출마설, 차기 당 대표 도전설 등 다양한 정치적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권의 필승카드로 김 총리를 전격 차출할 것이라는 전망도 없지 않다. 다만 문재인정부 임기 마지막 총리라는 상징성 때문에 출마 자체는 어려울 것이라는 상반된 관측도 나온다.

최재형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준석 대표에게 언론중재법 저지공동투쟁을 위한 '당대표-대선 예비후보 연석회의' 제안서 전달 전 인사하고 있다. 2021.08.23. 뉴시스
최재형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준석 대표에게 언론중재법 저지공동투쟁을 위한 '당대표-대선 예비후보 연석회의' 제안서 전달 전 인사하고 있다. 2021.08.23. 뉴시스

야권, 이준석.최재형에 황교안 재도전까지

야권에서는 이준석 대표가 첫손에 꼽힌다. 이 대표는 지난 2012년 대선국면에서 박근혜비대위 멤버로 화려하게 정치권에 입문했지만 이후 10년간 3차례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 22대 총선은 오는 2024년 열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대표의 원내 진입을 위해서는 서울 종로가 가장 근접권에 있다. 이 대표는 현 지역구인 서울 노원병을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지만 내년초 정치지형의 유동성에 따라서는 종로 출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종로 도전설이 솔솔 피워오르고 있다. 최 전 원장은 이른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낙마시 보수야권의 히든카드로 플랜B를 자처했지만 최근 상황은 쉽지 않다. 지지율 정체상태가 지속되면서 보수야권의 최종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낮아졌다. 정치도전 이후 크고작은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경선패배 이후 국회의원부터 시작해서 성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 전 원장은 감사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종로와도 인연을 맺었다.

황 전 대표와 나 전 원내대표의 경우 절박한 상황이다. 황 전 대표는 지난 총선에 출마한 후보였다는 점에서 결자해지 차원으로 보선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다만 총선참패 책임론 탓에 당 안팎의 반감이 적지 않은 것은 걸림돌이다. 나 전 원내대표의 경우 21대 총선 패배 이후 전당대회, 서울시장 보선 출마 등을 통해 정치적 활로를 모색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다만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보수야권에서 가장 대중적인 여성 지도자라는 점에서 서울 종로출마가 정치적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현 지역구인 서울 동작을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으로 부담으로 꼽힌다.

대권행 급행열차윤보선·노무현·이명박 거쳐가

2020421대 총선에서 최대 빅매치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대결이었다. 양측 모두 여야를 대표하는 차기 주자였다. 결과는 싱거웠다. 민주당이 180석을 휩쓰는 압승 분위기 속에 이낙연 전 대표가 정치1번지의 주인공이 됐다. 이 전 대표는 종로 승리를 바탕으로 여권의 차기 주자로 우뚝 섰다. 황 전 대표는 종로 패배는 물론 총선 참패의 책임론 속에 사실상 정계은퇴의 상황에 내몰렸다.

서울 종로는 단순한 지역구가 아니다. 권력의 심장부인 청와대가 위치한 그야말로 정치의 중심이다. 과거 정부에서는 총리실을 비롯해 교육부, 행안부, 통일부 등 정부 각 부처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과거 종로를 거쳐간 역대 의원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이 모두 종로 지역구 의원 출신이다. 특히 199615대 총선은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진검승부를 벌였고 승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이후 이 전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보선이 치러졌는데 노 전 대통령이 출마해 승리를 거뒀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 때문에 서울 종로는 대권으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로 입소문이 났다. 실제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대권으로 가기 위해서는 종로 지역구 의원을 거쳐야 한다는 우스개마저 생겨날 정도다. 여야 현역 정치인 중에서 서울 종로 도전에 나선 이들은 한둘이 아니다. 민주당 대선경선에서 중도 사퇴했던 정세균 전 총리가 대표적이다. 호남에서 다선 지역주 중진으로 활동했던 정 전 총리는 19대와 20대 총선에서 지역구를 서울 종로로 옮기는 승부수를 던져서 성공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원외 시절 정치재개의 발판으로 서울 종로에 도전하기도 했다. 21대 총선은 서울 종로가 왜 정치1번지로 불리는지 명쾌하게 보여줬다. 당시 지지율이 가장 높아서 여야의 유력 대선주자로 꼽혔던 이 전 대포와 황 전 대표가 맞붙었기 때문이다. 승자는 이 전 대표였고 이 전 대표는 이후 차기구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반면 황 전 대표는 사실상 차기구도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맛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김부겸 국무총리와 주례회동을 마친 후 대화하고 있다. 2021.05.17.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김부겸 국무총리와 주례회동을 마친 후 대화하고 있다. 2021.05.17. 뉴시스

차기대선 러닝메이트 성격깜짝히든카드 등장?

차기 대선은 여야 모두 박빙의 승부가 예상된다. 민주당 중심의 정권재창출론과 국민의힘 중심의 정권교체론이 팽팽히 맞선 상황이다. 사실상 절대 강자가 없는 상황이다. 주요 여론조사기관의 차기 지지율 조사에서도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대 중후반의 지지율로 나란히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 종로 보선에 거물 정치인들을 출마시켜서 바람몰이에 나설 수 있다. 종로 보선 출마자가 대선주자로서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일종의 러닝 메이트 성격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 최적의 후보를 찾기 위해 고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종로 보선만이 아니다. 여야 의원들의 선거법 재판 진행 상황에 따라서는 차기 대선과 더불어 사실상 미니총선이 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윤희숙 의원이 사퇴한 서울 서초갑은 보선이 실시되기 때문이다. 서울 2곳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재보선 지역은 56곳에 이를 수 있다.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형이 확정된 민주당 정정순 의원의 지역구인 청주 상당도 재보선이 예정돼 있다.

또 선거법 위반 혐의로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이규민 민주당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안성과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받은 무소속 이상직 의원의 지역구인 전북 전주을 역시 재보선 후보지다. 이를 종합하면 사실상 차기 대선과 미니총선이 같은날 열리는 셈이다. 차기 대선 승패와 관계없이 여야 모두 상황은 절박하다. 우선 민주당은 21대 총선 압승의 분위기를 이어가면서 의회 다수의석을 유지해야 한다. 국민의힘 역시 총선참패의 악몽을 딛고 내년 4월 재보선에서 최대한 많은 의석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 1번지 종로의 상징성을 고려할 때 거론되는 여야 후보들의 면면은 사실상 차차기 대선에 나설 인사들이 적지 않다. 또하나의 차기대선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라며 임종석 vs 이준석 추미애·박영선 vs 나경원 김부겸 vs 최재형 등 대중의 관심을 끄는 빅매치 카드가 성사될 경우 차기 대선에 버금가는 관심을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차기 대선에서 여야 모두 박빙의 혈전을 치를 경우 종로 보선에 나설 후보 결정을 놓고 여야는 최대한 눈치싸움에 접어들 것이다. 물론 최종 선택은 여야 대선후보들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대선주자의 약점을 최대한 보완할 수 있는 러닝메이트 성격을 후보들이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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