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조 투자·4만 명 고용` 역대급 발표…출소 11일만에 나와
- 취업 제한 공방에 대외행보 자제...교육 현장에 모습 비치기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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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역할론`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앞서 재계는 이 부회장이 추석 연휴를 활용해 백신 특사 또는 반도체 투자 사절단의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할 것으로 예측했다. 삼성이 투자한 파운드리 제2공장 부지 선정이 임박한 상태라 이 같은 추측에 힘이 쏠렸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자신을 둘러싼 취업 제한 논란 등을 고려해 미국행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4일 김부겸 총리를 만난 것은 첫 대외 행보라 주목 받았지만 사업장이 아닌 청년 교육현장이라 부담이 덜해 이날 행사장을 찾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현재 그는 가석방 상태로 경영 참여는 할 수 없다. 일부 시민단체의 고소·고발도 계속되고 있어 활동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정리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지난달 13일 재수감됐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7일 만에 출소했다. 최종 확정된 형기 2년 6개월의 60%를 넘겨 가석방 대상이 됐다. 그는 출소 당일 취재진 앞에 서서 "저에 대한 걱정과 비난, 우려 그리고 큰 기대를 잘 듣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이후에도 특혜 논란이 계속되자 청와대까지 진화에 나섰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반대하는 국민의 의견도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반도체와 백신 분야에서 역할을 기대하며 가석방을 요구하는 국민도 많다"라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구축과 한미 정상회담 후속 조치, 코로나19 백신 수급과 관련해 이 부회장이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란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 통 큰 투자 결정…정부 기조에 발맞추나

그리고 가석방 12일 뒤, 삼성그룹은 마치 준비라도 해 둔 것처럼 240조 원 규모의 초대형 투자 계획과 4만 명 고용 계획을 내놓았다. 이는 삼성이 발표한 투자 계획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삼성의 이번 투자 계획은 이 부회장의 의지가 크게 반영된 것으로 그의 출소 이후 어느 정도 예견됐다. 2018년 이 부회장이 경영 복귀 이후 발표했던 ‘3년간 180조 원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때보다 60조 원 증가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관계사는 지난달 24일 ▲반도체·바이오 등 전략사업 주도권 확보를 위한 투자 확대 ▲미래 세대를 위한 고용/기회 창출 ▲기초과학 원천기술 연구개발 지원 다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 조성 등 크게 3개 분야로 나눈 투자 및 고용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사업에서 원가 경쟁력 격차를 다시 확대하고, 14나노 이하 D램, 200단 이상 낸드플래시 등 차세대 제품 솔루션 개발에 투자해 `절대 우위`를 공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기존 바이오의약품 외에 백신 및 세포·유전자치료제 등 차세대 치료제 CDMO(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에 신규 진출하기 위한 투자를 확대한다. 삼성은 바이오 사업 시작 9년 만에 CDMO 공장 3개를 완공한 바 있다. 현재 건설 중인 4공장이 완공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생산 능력(CAPA)을 62만 리터로 확대, 2위 베링거인겔하임(48만 리터)을 제치고 CDMO 분야의 압도적인 세계 1위에 올라선다. 삼성은 CDMO에서 5공장과 6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파이프라인 지속 확대 및 고도화에도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아울러 삼성은 향후 3년간 4만 명을 직접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통상적인 채용 계획상 3년간 고용 규모는 약 3만 명이나 삼성은 첨단산업 위주로 고용 확대하기로 했다. 삼성은 향후 3년간 삼성의 국내 대규모 투자에 따른 고용 유발이 56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삼성은 이날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관계사의 공채 제도를 지속해서 유지하겠다고도 밝혔다.

삼성 측은 이번 투자 계획 발표 배경에 대해 "향후 3년간은 새로운 미래 질서가 재편되는 시기로, 코로나19 이후 예상되는 산업·국제질서, 사회구조의 대변혁에 대비해 미래에 우리 경제·사회가 당면할 과제들에 대한 기업의 역할을 다하기 위한 것"이라며 "투자와 고용, 상생을 통해 대한민국 경제와 사회 전반에 활력을 높여 삼성에 대한 국민적인 기대와 바람에 부응하겠다"라고 밝혔다.

- 잠행 모드 경영 당분간 지속할 듯 

하지만 이러한 발표에도 이 부회장은 잠행 모드를 이어가고 있다. 1주일에 한 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재판을 위해 온종일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해 앉아 있는 것 외에 대외활동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8일 정의선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등 10대 기업 총수들이 모여 미래먹거리를 위한 수소 기업 협의체를 발족할 때도 이 부회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삼성물산이 협의체에 참여하지만 국내 최대 그룹 총수는 그 자리에 없었다.

재계는 이 부회장의 적극적인 현장 경영이 재벌 특혜 논란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조심스러워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일부 시민단체가 사실상의 경영 복귀를 방증하는 것이라며 이 부회장을 취업규칙 위반 혐의로 압박하기 때문이다. 일부 단체는 검찰에 고발까지 했다. 

이 부회장의 경우 형 집행이 끝나는 내년 7월 이후, 5년간 삼성전자에서 일할 수 없다. 현행법상, 횡령·배임액이 5억 원을 넘으면 범행 관련 업체에 한동안 취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부회장은 구치소를 나선 직후 삼성 사옥을 찾아 논란을 키웠다. 삼성전자 주요 경영진을 만나 업무 보고를 받고, 각 사업 부문별 간담회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이 부회장이 28조 원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고발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13일 이 부회장을 조세 포탈 등 혐의로 고발한 투기자본감시센터 관계자를 불러, 고발인 자격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윤영대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는 본지와의 만남에서 "지난 7월 이 부회장 가족이 이건희 회장의 유산을 포괄 상속받고도 차명재산 과징금과 양도세 등 28조 6000억 원을 내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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