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선각자(先覺者)들은 대한민국이 처한 현 안보상황을 “6.25 이후 최대 국가위기”라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 정권을 ‘임진왜란 전야의 조선 조정’ 또는 ‘경술국치’ 전야의 대한제국 조정’에 비유하고 있다.

천하가 비록 아무리 편안할지라도, 전쟁을 잊어버린다면 반드시 위기가 찾아오는 법이다(天下雖安 忘戰必危·천하수안 망전필위). 조선은 전쟁을 잊었기 때문에 거의 망했다가 살아났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은 시대를 내다보는 통찰로 구국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을 헤쳐나간 명재상이다. 송복 선생은 <위대한 만남>에서 임란에서 조선을 구한 수훈갑으로 ‘서애 류성룡과 충무공 이순신’을 꼽고 있다. 백권호 영남대 명예교수는 임란에서 조선을 살린 3가지 요소를 ‘첫째, 류성룡의 리더십, 둘째, 이순신의 혁혁한 해전 전승, 셋째, 의병·승병을 포함한 국민의 살아있는 의식’을 들고 있다.

임진왜란 전야의 조선은 ‘군량, 병력, 무기, 국방체제’ 등 전시자원동원 역량이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첫째, 임란이 발발한 1592년 조선의 세입규모는 쌀을 기준으로 60만석 정도로 추정된다. 이듬해 파병된 이여송의 4만5천명의 군량이 48만6천석에 이르기 때문에, 전쟁을 치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재정규모였다.

둘째, 조선이 정규군으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최대 1만2천 명에서 최소 8천 명에 불과해, 왜군 병력이 2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상대가 될 수 없는 병력규모였다. 셋째, 왜군이 당시 최신식 개인화기인 조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조선은 개인 무기와 화력이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조선은 명에 대한 사대외교로 자주국방정책을 포기했기 때문에, 국방체제가 전국규모의 전쟁을 치를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

류성룡은 이처럼 전쟁수행 능력이 전무(全無)한 조선을 ‘적재적소’와 ‘신상필벌’의 인재등용과 위기관리·문제해결 능력을 발휘해 한반도가 일본 땅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는 이순신을 정읍현감(종6품)에서 7등급 뛰어넘는 전라좌수사(정3품)로 천거하였으며, 권율도 형조정랑(정5품)에서 4단계 상승시켜 의주목사(정3품)로 추천하였다. 이는 육군·수군, 문신·무신을 초월한 기상천외(奇想天外)한 파격적 실용 인사였다.

류성룡은 중앙정부에서 파견한 도원수가 이끄는 ‘제승방략체제’에서 양인개병(良人皆兵)이나 병농일치(兵農一致)를 기반으로 하는 ‘진관체제’로 전환했다. 또한 중앙군으로는 훈련도감, 지방군으로는 속오군을 설치하여 양병(養兵)의 문제를 해결했다.

대내적으로는 민생의 안정을 위해 상업을 장려했으며, 공납을 쌀로 통일하는 작미법(作米法)을 시행했다. 왜군의 수급을 베어오는 천민들에게 양인 신분을 주는 면천법(免賤法)과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을 공책에 기록해 상을 주는 고공책(考功冊)을 실시했다. 군량미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둔전(屯田)을 실시하고, 곡식을 자발적으로 내는 사람에게 종이 벼슬을 주는 공명첩(空名帖)을 발급했다.

대외적으로는 명나라의 원조를 직접적으로 이끌어냈으며, 명과 일본 사이에 비밀협정이 있다는 것을 간파한 후 이를 파기하고 조선이 주도권을 잡도록 노력하였다. 또한 파탄지경의 민생을 살리기 위해 중강(中江, 의주)에 국제무역시장을 열고(중강개시中江開市), 명의 곡물과 조선의 면포를 교역함으로써 양민들의 굶주림을 해결하였다.

송복 선생은 ‘서애는 통찰력의 특출한 소지자’라고 했다. “그것은 당시로서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한반도 지킴이의 통찰력이었고, 그 통찰력으로 한반도는 끝내 조선의 것으로 돌아왔다. 그 통찰력의 첫째는 육지 아닌 바다를 지키는 것이고, 둘째는 한양·수도권이 아닌 전라·호남권을 지키는 것이며, 그렇게 해서 셋째로 지구전(持久戰)으로 한반도 나라를 지키는 것이었다.”

자유와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말이 있다. 미·중간의 패권 경쟁과 북핵 위협,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까지 복합적 불확실성이 뒤덮고 있는 대한민국의 안보상황이 위태롭다. 북한 주민은 통일 후에 함께 살아야 할 대상이지만, 북한군과 정권은 우리의 ‘주적(主敵)’이다. 주적 개념이 없어진 ‘국방백서’를 고쳐야 한다.

대선 예비주자들 중에는 표만 의식해서 ‘모병제’를 외치는 분들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지도자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예지(睿智)를 가진 ‘통찰(洞察)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내년 20대 대선을 앞두고 ‘국난극복의 리더십’을 발휘해 조선을 구한 서애 류성룡 같은 ‘통합의 지도자’ 출현을 기대한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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