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립편집위원
이경립편집위원

아사리판(阿?梨判). ‘여러 명이 뒤섞여 싸움이 벌어졌거나 질서가 없이 어수선한 상태를 뜻하는 말’이라고 다음백과사전이 전한다. 어원이나 유래에 대한 설명도 있지만, ‘무엇인가를 빼앗기 위해 여러 사람이 무질서하게 뒤섞여 혼란스러운 상태를 표현할 때 사용한다.’는 친절한 설명이 확 와 닿는다.
추석 연휴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철저하게 방역수칙을 준수하면서 정치얘기를 심도 있게 나눴다. 정치학 교수, 변호사 등의 전문가, 캠프에서 일하면서 사시(斜視)로 선거판을 보는 사람, 종편 뉴스를 보면서 일희일비하는 시골 촌로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의 설을 설파했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로 집약됐다. 이런 대선 판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얘기를 종합하면 누구도 믿지 못하겠고, 누구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저들 중에 누군가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하다는 얘기였다. 한마디로 아사리판이라는 것이다.

87년 체제 후에 탄생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현재의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상대편에 선 지지자들이 상대후보를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행위는 있었지만, 상대후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무리 박빙의 선거였다고 하더라도 상대후보의 당선을 부정하면서 선거무효나 당선무효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러한 것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더욱 굳건히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좀 다를 것 같다. 여야에서 각각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의혹투성이로 좀처럼 의혹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새로운 의혹들, 더 강력한 의혹들이 이번 추석연휴에 쏟아져 나왔다.
고발사주, 제보사주에서 시작한 추석 상차림은 ‘대장동 의혹’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서 의혹의 당사자들이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해명을 통해 의혹을 해소하면 그만이지만, 그들의 생각은 우리들과는 달랐다. 그들이 의혹에 대처하는 방법은 새로운 의혹의 제기로 이전의 의혹을 ‘돌려막기’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 국민들이 피곤할 수밖에...

누군가 말한다. 이러한 아사리판을 정리할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없냐?”고.

이 물음에 대해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없다!”고.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없지만, 아사리판을 정리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애초 이번 대통령선거가 아사리판이 되어버린 이유는 후보들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이러한 후보들을 우리 유권자들에게 보여주는 ‘프리즘 역할’을 해야 할 여론조사기관, 언론들의 문제도 크다.

먼저 여론조사기관에게 묻는다. “지금과 같이 여야 후보를 나열하고 누구를 지지하는지 묻는 행위, 여당 후보로 누가 더 적합한지, 야당 후보로 누가 더 적합한지 묻는 1차원적인 여론조사를 그만두고, 각각의 후보에 대해 대선후보로서의 자격을 인정할 수 있는 후보인지 아닌지를 묻는 질문은 할 수 없는지?”, 묻는다. 그러한 질문이 가능하면 우리가 조금은 더 높은 수준의 후보들을 놓고 고심할 수 있지 않을까? 아사리판에서 헤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언론에게 묻는다. “대선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일구설(一擧手一投足一口舌)을 옮길 시간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려는 자의 기준을 설정하고 그러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후보를 골라내는 작업은 할 수 없는지?”, 묻는다. 그러한 작업이 가능하면 우리는 조금은 더 양질의 후보들을 놓고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사리판에서 헤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다. 우리들 모두가 최악을 피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그렇지만 각각의 최악이 다를 수 있어 우리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얻기 힘들다. 다만, 현행 대통령선거제도가 그 역할을 다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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