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삼국통일 어떻게 이루어졌나>에서 “백제가 이미 망하고 고구려도 멸망하기 직전인 668년 6월에 신라의 김유신이 아우와 생질에게 한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금 신라는 충성과 믿음 때문에 생존했고, 백제는 오만 때문에 망했으며, 고구려는 교만 때문에 위태롭다.”

이것은 멸망 당시 백제와 고구려가 군사력과 물질적 토대가 취약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또한 두 나라의 근본적인 멸망 원인은 ‘정신력’에 있었고, ‘오만과 교만은 강자가 약자에게 먹히는 지름길’이라는 말이다.

정순태 선생은 자신의 저서 <송(宋)의 눈물>에서 이렇게 갈파했다. “송의 망국사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위험하다.” “배부른 나라는 배고픈 나라에 먹힌다.”

조갑제 선생은 송과 한국은 공통점이 많다며 “송의 말로(末路)가 쇠망하는 한국의 모델이 될 수도 있다.” “한반도의 ‘배고픈 나라’ 북한에 ‘배부른 나라’ 남한이 먹히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정순태 선생의 주장에 주목했다.

지난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은 망했다. 아프간은 20년 만에 탈레반의 나라로 되돌아갔다. 미국은 아프간에 군사비 8157억 달러를 포함해 총 2조2600억 달러의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 부었다. 재건 사업에도 360억 달러를 썼다. 전쟁 기간 중 미군 2442명이 숨지고, 2만666명이 다쳤으며, 참전용사 의료비용도 2960억 달러에 달했다.

세계 역사를 보면 평화협정은 모두 휴지조각이 되고 전쟁으로 이어졌다. 월남과 월맹이 파리평화협정을 맺었지만, 1975년 미군이 철수한 후 사이공이 함락되어 월남이 패망했다. 아프가니스탄 패망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탈레반과 맺은 평화협정이 주원인이었다. 두 나라는 지도자의 무능과 부패, 군기 문란, 국민의 국가수호 의지 부족 등으로 망국의 길을 재촉했다.

월남-아프간 패망을 보며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국제정세는 자국의 이익과 관련하여 수시로 변한다.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이다. 중국은 미국의 아프간 철수를 미국패권 쇠퇴의 한 사례로 조롱했다.

그러나 바이든 미 대통령은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과 세계 곳곳에서 동맹관계의 복원에 전략적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은 이 두 핵심 목표의 교차점에 있지만, 안보는 스스로 지킬 힘과 의지가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국가의 존재 목적은 생존(안보)과 번영(경제)에 있다. 경제는 먹고 사는 문제이나, 안보는 죽고 사는 문제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국가 패망의 원인’으로 ‘권력층이 독재를 할 경우, 국민 다수가 애국심이 없을 때, 사회가 분열되어 서로 다툴 때’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역사를 잊고 사는 민족에게, 역사는 비극의 반복이라는 벌(罰)을 내린다. ‘스스로 지키고자 하지 않는 나라는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역사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북한 특수부대 8만 명이 자살폭탄테러 훈련을 하고 있으니, 기습공격에 대비 외교적 군사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한국 사람들 정신 차려야 한다.”고 충고한 바 있다.

우리는 ‘제2 베트남’이라는 오명을 자초한 아프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과연 대한민국은 지금 그 옛날 신라처럼 정신전력이 북한보다 우위에 있는지, 오만하고 교만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또한 대한민국은 송나라와 닮은 점은 없는지 자문해야 한다. 물질적 풍요에 젖어 자주국방과 상무정신을 잃어간 점, 경제·문화·예술은 발달했으나 애국심과 지도층의 청렴성이 부족한 점, 문존무비(文尊武卑)의 폐단이 많은 점 등이 그것이다.

대한민국은 한민족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나라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가난과의 싸움에서는 이겼지만, 풍요와의 정신적 싸움에서는 지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김여정 하명(下命)을 따른다는 의심이 수차례 제기된 바 있다. 한미연합훈련 연기 연판장, 대북전단금지법 제정 등이 그것이다.

안보문제에 관해서는 이념이나 정파를 초월해 굳건한 한미동맹에 국론통일이 되어야 한다. 전시작전권 환수-종전선언-평화협정-미군철수-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은 절대 안 된다. 국가안보에서 만큼은 ‘국론통일’의 정치를 펼쳐야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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