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가장한 ‘착취’, 반복되는 고3 실습생 사고… “피맺힌 죽음 다신 생기지 말아야”

14일 오전 전남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마리나 요트정박장 주변 울타리에 잠수 작업 중 숨진 특성화고 실습생 고(故) 홍정운 군을 추모하는 현수막이 걸리고 조화가 놓여져 있다. 앞서 지난 6일 요트 선체에 따개비를 떼려던 실습생 홍군은 바다에 빠져 구조됐으나 숨졌다. 2021.10.14. [뉴시스]
14일 오전 전남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마리나 요트정박장 주변 울타리에 잠수 작업 중 숨진 특성화고 실습생 고(故) 홍정운 군을 추모하는 현수막이 걸리고 조화가 놓여져 있다. 앞서 지난 6일 요트 선체에 따개비를 떼려던 실습생 홍군은 바다에 빠져 구조됐으나 숨졌다. 2021.10.14. [뉴시스]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최근 전남 여수 요트업체에 현장실습을 나가 물속에서 작업을 하던 특성화고 홍정운(18) 군은 현장실습 중 죽음에 이르게 됐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홍 군의 유족을 만나 위로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고 진상규명대책위원회 등은 지난 15일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검찰과 해경에 제출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들도 현장실습 제도의 폐지와 근본적인 대책 수립 등을 정부와 교육당국에 촉구했다. 특성화고 고3 실습생들의 사고가 반복됨에 따라 이들을 위한 현장실습 기업 가이드라인이 10여 년 전에도 만들어졌지만 실상은 무용지물이던 셈이다. 이번 사건으로 현장실습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진짜 대안이 마련될 수 있을까. 

- 가이드라인·개선방안 마련돼도 결국은 ‘무용지물’
- “현장실습제도 폐지만 외칠 게 아니라 보완해야”

전남 여수 특성화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홍정운 군은 지난 6일 전남 여수 요트업체에 현장실습을 나가 물속에서 작업을 진행하다 익사했다. 경찰은 홍 군이 허리에 12㎏짜리 납 벨트를 차고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떼어 내는 작업을 하다 수중으로 가라앉았다고 밝혔다. 홍 군의 부모는 편지글을 통해 “물이 무서워도 선장이 되겠다며 다짐을 하고 꿈을 이어 가던 장한 아들을 위해 싸울 수 있는 모든 사람과 싸워 분통함과 억울함을 해결하고, 다시는 이 땅에 피맺힌 죽음이 생기지 않게 외칠 것”이라고 전했다. 

사고 발생 일주일 만인 지난 13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전남 여수 추모의 집을 방문해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가 발생해 교육부 장관으로서 큰 책임을 느낀다”며 “현장 실습 전반의 문제점을 살피고 제도를 보완하는 등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홍 군 사고를 계기로 부산시교육청은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실습 현장 전수조사를 결정했다.

지난 15일 홍 군의 유족과 진상규명대책위원회는 여수해양경찰서와 광주지검 순천지청을 잇달아 방문해 사업주 구속수사 등 책임자 처벌과 엄벌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2017년 전북에서 발생한 유플러스 고객센터 실습생 사망사건 이후 직업계고 현장실습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왔지만 근본적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결국 또다시 비극을 목도하게 됐다”며 ‘학생을 교육 대상자가 아닌 인력으로 보는 현재 현장실습제도의 폐지와 근본적인 대책 수립’을 정부와 교육당국에 촉구했다.

14일 오전 전남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마리나 정박 중인 한 요트에 잠수 작업 중 숨진 특성화고 실습생 고(故) 홍정운 군을 추모하는 조화가 놓여져 있다. 이 요트 선체에 붙은 따개비를 떼내고자 잠수 작업 중 실습생 홍군이 바다에 빠져 구조됐으나 숨졌다. 2021.10.14. [뉴시스]
14일 오전 전남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마리나 정박 중인 한 요트에 잠수 작업 중 숨진 특성화고 실습생 고(故) 홍정운 군을 추모하는 조화가 놓여져 있다. 이 요트 선체에 붙은 따개비를 떼내고자 잠수 작업 중 실습생 홍군이 바다에 빠져 구조됐으나 숨졌다. 2021.10.14. [뉴시스]

매년 반복되는 사고에 희생당하는 홍 군들

홍 군과 같은 특성화고 고3 현장실습생들의 크고 작은 사고는 매년 반복돼 왔다. 2011년 광주 기아차 공장에 현장실습을 나간 김민재 군은 자동차 공정 중에서도 3D라고 불리던 도장 작업에서 주 70시간 일 12시간의 장시간 교대근무를 했다. 김 군은 동료에게 구토감을 호소했고 결국 뇌출혈로 쓰러져 현재까지도 투병 중이다. 2012년 12월 울산 신항만에서 한라건설 작업선이 전복되면서 사망 및 실종된 12명 중에 현장실습생 3명도 포함돼 있었다. 풍랑주의보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강행한 게 결국 사고를 부른 것이다. 

2014년 1월 CJ제일제당 육가공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계기로 취직해 일하던 김동준 군은 12시간씩의 과중한 업무를 소화했다. 하지만 선임들의 호통과 괴롭힘, 회식자리에서 뺨을 맞는 등 가혹행위를 당한 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같은 해 2월 현대차 협력 업체인 금영ETS 공장에서 밤새 내린 폭설로 공장 지붕이 무너지면서 당시 공장에 남아 야간 노동을 하던 현장실습생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야간 노동과 잔업을 못하게 돼 있지만 임금명세서에는 버젓이 해당 내역이 찍혀 있었다. 

2017년 11월 제주도 생수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이민호 군은 혼자서 작업을 하다가 프레스기에 몸이 끼여 사망했다. 그해 1월에는 전주 LG 유플러스 협력회사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홍수연 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실습생 신분이었음에도 홍 양은 가장 악명 높은 부서로 배치돼 고강도 노동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실습생들의 사고가 반복됨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10여 년 전 ‘현장실습 기업 가이드라인’을 내놓기도 했다. 2013년에 발표된 ‘기업, 특성화고 현장실습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매뉴얼은 단위 학교의 내실 있는 현장실습 운영을 위해 개발된 것이다. 매뉴얼에 담긴 내용과 각종 서식 중 법령, 규칙 등에서 제시하는 내용 외에 단위학교 등에서 참고해 학교 실정 등에 맞도록 수정·보완해 활용하도록 돼 있어 강제성은 떨어지는 것이다. 

2017년에는 교육부가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2018년부터 전면 폐지하고 기존 6개월이던 현장실습 기간을 3개월로 줄여 ‘학습 중심’ 현장실습으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교육부가 내놓은 방안에는 현장실습 분야를 전공에 맞는 직무 관련 분야로 한정되도록 유도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현장에 투입된 실습생들은 대부분 자신의 전공과는 관련 없는 분야에서 일을 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14일 전남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마리나 요트정박장에서 잠수 작업 중 숨진 특성화고 실습생 고(故) 홍정운 군 사진 현수막 앞에 조화를 놓고 있다. 2021.10.14. [뉴시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14일 전남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마리나 요트정박장에서 잠수 작업 중 숨진 특성화고 실습생 고(故) 홍정운 군 사진 현수막 앞에 조화를 놓고 있다. 2021.10.14. [뉴시스]

폐지만이 근본적 대안 될까

정부가 내놓은 다양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실습생들이 열악한 현장으로 내몰리며 목숨을 잇는 현실이 반복되다 보니 일각에서는 오히려 현장실습을 폐지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39개 교육·노동 단체는 ‘현장실습폐지·직업계고 교육정상화 추진 준비위(추진위)’를 구성하고 공동행동에 나선다고 밝혔다. 

추진위는 “홍정운 학생의 죽음 앞에 그 어떤 정치인도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계산기 두드리며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지 말고 1963년에 도입한 현장실습이라는 구 시대적 교육 제도를 폐기하고 직업계고 교육 정상화를 위한 근본적인 교육 정책이 나올 때까지 현장실습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폐지는 섣부르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해 전국특성화고권리연합회가 ‘특성화고 현장실습 현황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학생들은 ‘무엇이 개선돼야 할지’에 대한 질문에 “다양한 실습을 할 수 있도록 기회가 확대되어야 한다”에 압도적으로 응답했다.

당시 설문에 참여한 인천지역 특성화고 3학년 이모군은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실습제도가 막히면 취업률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현장실습제도를 폐지할 게 아니라 이전보다 더 체계적이고 안전하게 그리고 학생들의 노동이 정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개선해주길 바란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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