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腹)와 등(背) 양쪽에서 적이 몰려오는 샌드위치 형국’을 ‘복배수적(腹背受敵)’이라 한다. 한반도처럼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인 나라의 안보와 외교는 곧바로 생명줄이다.

대한민국은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굴기(屈起)하기 전에는 ‘미국과는 경제, 중국과는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좋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이제 안미경중(安美經中)은 유통기한이 지났다.

중국은 6·25전쟁 이후 내적 세력균형 전략을 취해 왔다. 마오쩌둥은 “굴을 깊이 파고 많은 식량을 비축하고 패권을 논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2013년 출범한 시진핑 정부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 대신 ‘대국굴기’(大國崛起)로 대외기조를 전환했다.

시진핑은 존 케리 미 국무장관에게는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 두 나라를 포용할 만큼 넓다”는 말도 했다. 나아가 ‘중국몽’ 실현을 위해 남중국해 군사 거점화와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추진함으로써 미국 중심의 세계 패권질서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안보 증진을 목적으로 지난 9월 15일 미국·영국·호주로 구성된 3자 안보동맹인 ‘오커스(AUKUS)’가 출범했다. 미국이 고농축우라늄(HEU)을 연료로 하는 핵추진잠수함(핵잠) 개발과 보유를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이 핵 비확산 체제에 예외까지 둬가며 핵잠 기술을 다른 나라에 이전하는 것은 1958년 영국 이후 63년 만이다. 모리슨 호주 총리는 오커스 체제 아래 8척의 핵잠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중국이 보유한 핵잠은 6∼9대다.

지난 9월 24일 워싱턴에서는 미국·일본·호주·인도 4자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4개국을 다시 뭉치게 한 가장 큰 동인은 그동안 급속히 커진 중국의 위협이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G7 정상회의 직후인 지난 6월 14일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규칙에 기반 한 국제질서와 동맹 안보에 대한 구조적 도전’으로 선언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와 실질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일본과 호주는 쿼드 참여국이고, 뉴질랜드는 태평양안전보장조약(ANZUS)의 일원이다. 사실상 한국을 ‘반중(反中) 동맹’에 참여하라는 요구이다. 반면에 중국도 음으로 양으로 한국을 압박해 올 것이다. 중국의 당면 목표는 한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대중(對中) 포위망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쿼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5년 내내 미·중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갈팡질팡하고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제정세 하에서는 원칙에 입각한 대응이 최선이 될 수 있다.

중국은 향후 러시아-이란-파키스탄과의 4각 체제를 구축해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에 맞서는 전략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매슈 포틴저 전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최근 외교지 기고에서 미국과 세계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시진핑의 ‘신 전체주의’ 세계질서 구축 기도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월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미국이 대만을 방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중국 옥죄기’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쿼드에 이어 클린네트워크(반중 기술동맹), 민주주의 연대 강화 등이 이를 입증한다.

지난 6월 퓨리서치센터(미국) 여론조사에서 조사 대상 17개국 중 미국보다 중국에 더 우호적인 시각을 가진 국가는 싱가포르가 유일했다. 우리나라는 호감도가 미국(77%)이 가장 높고, 중국(22%)은 미미했다. 우리 국민은 미·중 사이에서 동맹국인 미국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한국의 안보·외교는 최악의 길로 가고 있다. 국가안보 보다 정권안보를 앞세우면 외교는 실패한다. 구한말 정권 안보를 위해 열강을 끌어들였던 ‘외교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어설픈 ‘줄타기 외교’로는 미·중 갈등의 희생물이 될 수 있다.

내년은 한·중 수교 30주년이다. 중국의 거칠고 오만한 외교에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약소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상상력과 창의력의 외교를 펼쳐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여 세계 자유우방들과 협력관계를 긴밀히 하면서 중국과는 북핵 대응 공조를 소재로 미·중 협력의 물꼬를 트는 유연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자하문연구소장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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