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 나, 제거해야겠다" 메모 발견…인사 불만 품은 직원 단독 범행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지난달 서초구에서 발생한 일명 `생수병 독극물 살인사건`이 직장 내 불만에서 비롯한 범행이었다는 경찰 조사 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더욱이 경찰 조사에서 같이 살던 룸메이트에게도 비슷한 범행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 이 소식을 접한 직장인들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과연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경찰, 용의자 `살인 혐의` 적용 검토…인사 불만 따른 표적 범행
- 기업 인사담당자 "인사 시즌 앞두고 불안…내부 소통 더 늘려야!"


포털백과사전 `나무위키`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지난달 18일 발생했다. 서초구 소재의 한 회사에서 남녀 직원 2명이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생수병에 든 물을 마신 뒤 약 1시간 간격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당시 이들은 물을 마시고 "물맛이 이상하다"라고 주변에 말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가운데 상대적으로 물을 많이 마신 한 명은 위중한 상태로 병원 치료를 받다가 6일 만에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이날 무단결근한 대리급 직원 강 씨에 대한 방문 조사를 위해 그의 집을 찾았다. 그런데 집에 인기척이 없어 강제로 진입한 후에야 숨진 강 씨를 발견했다. 사인은 음독자살로 밝혀졌다.

- 1명은 사망…피의자 사건 후 극단적 선택

앞서 같은 달 10일에도 숨진 강 씨의 룸메이트였던 이 회사 직원 1명이 사무실에서 음료를 마시고 병원 신세를 진 일이 있었다. 물이나 음료를 마신 이들은 모두 강 씨와 같은 팀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다. 사망한 직원은 강 씨가 근무하던 팀의 팀장이었다.

국과수 부검 결과 강 씨의 혈액에서 독극물이 검출됐는데 숨진 직원의 혈액, 룸메이트가 마신 탄산음료에도 같은 성분이 나왔다. 강 씨의 집에서는 농업용 살충제와 살균제 원료로 쓰이는 아지드화나트륨과 메탄올, 수산화나트륨 등 여러 독성 물질과 이를 배송 받은 택배 상자가 발견됐다. 또한 지문을 검출하는 데 쓰이는 가루도 나왔다. 그리고 강 씨가 사용하던 휴대전화 2대 중 1대에서는 화약 약품 회사와 독성 화학물질 관련 논문을 검색하는 등 9월 초부터 독극물 관련 내용을 찾아본 흔적이 발견됐다. 

다만 국과수 분석에서 생수병에는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았으나 피해자에게자서 아지드화나트륨이 검출됐다. 강 씨는 범행에 앞서 지난 9월 자신의 회사와 계약한 다른 업체 사업자등록증을 도용해 인터넷으로 독극물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진다.

동료 직원들은 경찰 조사에서 강 씨가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등 다소 내성적이었으나, 따돌림 등 특별한 일은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가 난 날 다른 직원들은 당황했으나 강 씨는 다른 생수를 마시면서 "나는 괜찮은데 왜 그러지"라고 말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다른 직원은 강 씨가 지방 발령 가능성을 접하고 불만을 품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강 씨는 지방에 있는 본사에 입사해서 2~3년 전 서울 지사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불만을 품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진술도 있었다고 한다.

반면에 상급자인 A씨가 강 씨의 업무 태도에 불만을 제기하고 경남 사천에 있는 본사로 발령내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들었다는 진술도 있었다. 경찰은 회사 사무실에 있는 강 씨의 책상에서 "짜증 난다", "제거해버려야겠다", "커피는 어떻게 하지?" 등의 문장이 적힌 메모가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인사 불만뿐 아니라 나이가 같은 동료가 나에게 일을 많이 시키고 부려 먹는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며 "사무실에서 발견된 A씨의 메모에 이와 관련한 원망과 일에 대한 불만이 적혀 있었다"라고 밝혔다. 강 씨의 휴대전화와 태블릿 PC, 통신 기록 등을 살펴봤지만 공범이 있을 가능성은 작다고도 했다. 

같이 살던 룸메이트에게도 비슷한 범행을 저지른 것에 대해선 경찰은 "친한 사이였는데 이런 일이 있으면 막아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A씨의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생수병 사건`을 강 씨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짓고 형사소송법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불송치 처분해 수사를 공식적으로 마쳤다.

- 모방범죄 우려 지적도…인사 담당자도 `주목`

한편 기업 인사 시즌을 앞두고 드러난 이번 사건에 대해 인사담당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않았다. 어느 기업에서든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는 이유에서다. 모 기업 인사담당자는 본지와의 대화에서 "인사 시즌 가장 많이 받는 항의 중 하나가 지역 재배치 문제다"라며 "특정 직군에 한 해 순환근무 제도를 활용하지만, 업무 주 수를 못 맞추거나 결원 발생 문제로 근로자가 원하는 지역 배치가 어려운 경우 불만을 드러내는 직원이 종종 나온다"라며 "이들과 더 많은 소통만이 오해를 풀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독성 물질의 이름과 구매과정이 그대로 알려지면서 모방범죄가 우려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한 온라인상에서 무분별하게 판매되는 독극물 재료에 대해 정부의 단속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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