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세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112일 중국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중전회) 결의를 통해 역사적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6중전회 결의는 시진핑을 1945년 마오쩌둥(毛澤東)1981년 덩샤오핑(鄧小平)에 이은 세 번째 역사적 지도자로 규정 했다. 시진핑이 경제를 재편했고 공해를 줄였으며 빈곤을 퇴치했고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등 역사적 변혁을 성취했다고 추켜세웠다.

역사적인 변혁을 역설한 역사결의는 내년 가을 열릴 20차 공산당 대회에서 시진핑의 3연임 추대가 확실시됨을 엿보게 한다. 마오쩌둥 사망 후 중국은 장기 집권 폐단을 막기 위해 5년 임기의 주석 직을 2연임으로 제한했다. 그렇지만 시진핑은 2연임 제한과 개인숭배 금지 그리고 종신 집권제 폐지 등을 제 손으로 삭제, 북한처럼 1인 종신 독재로 가는 길을 터놓았다. 시진핑은 21세기 셀프 황제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마오쩌둥 집권 27년 동안 중국은 극좌 1인 독재하에 피비린내 나는 숙청과 경제파탄을 겪어야 했다. 1950년대에는 대약진운동강행속에 2000-3000만명이 굶어죽어야 했다. 1960-70년대엔 문화대혁명구호아래 10-20대의 홍위병난동으로 200-300만명이 참혹하게 타살되었다. 다행히도 중국은 마우쩌둥 사망 후 덩샤오핑의 쿠테타로 1인 독재체제를 해체하고 집단지도체제로 들어갔다. 덩샤오핑의 실용주의에 바탕 한 사회주의적 자본주의와 집단지도체제는 지난 45년 동안 중국을 미국 다음 가는 경제대국으로 일어서게 했다.

그러나 시진핑의 셀프 황제 화는 45년 중국 역사 흐름에 역행한다. 시진핑은 집권 후 392명의 고위 간부들과 수백만 당원들을 부패*권력남용으로 조사, 숙청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6중전회를 앞두고 1면에 매일 시진핑 업적 찬양으로 도배질 했다. 공산당사문헌연구원은 중국 공산당 역사 100년 대사건 기록들 중 30% 이상이 시진핑 집권기간에 이뤄진 것으로 꾸몄다. 그런가하면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베이징대를 비롯한 대학들에 시진핑 주석의 지시를 학습*관철하라고 지시했다.

중국인들은 마오쩌둥 사망 후 자유와 풍요를 누려왔다. 꿀 보다 도 더 단 자유와 풍요의 맛에 젖은 14억 중국인들은 또 다시 마오쩌둥 시절의 독재로 되돌아가기를 원치 않는다. 앞으로 그들의 저항이 주목된다. 그동안 중국 정권은 중국인들에게서 자유를 양보 받는 대가로 그들에게 풍요를 보상해 주었다. 하지만 연간 6-10% 대로 급성장하던 중국 경제는 이제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있다. 최악의 전력난과 부동산 재벌 헝다(桓大)의 파산 위기에 직면, 지난 3분기(7-9) 성장률은 4.9%로 떨어졌다.

거기에 더해 중국 상품을 가장 많이 사들이던 미국은 중국을 공적1호로 간주하며 제재와 압박을 격화시켜 가고 있다. 일본도 대중 견제에 적극 참가했고 호주와 인도도 중국에 맞선다. 영국도 중국을 최대 위협으로 보며 유럽연합(EU) 또한 중국을 견제한다. 러시아를 적으로 삼았던 나토(북대서야조약기구)도 중국을 러시아 대신 적으로 맞서는 것을 미래 전략으로 삼고 있다.

시진핑은 앞으로 풍요와 자유를 누려오던 중국인들의 불만과 국제사회의 견제 그리고 하락세로 돌아선 경제 등의 사나운 도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시진핑의 권력 기반은 흔들릴 수 있다. 설사 시진핑은 독재로 권좌를 버틴다고 해도 마오쩌둥 독재하의 비극적 선례로 보아 경제난과 정치 탄압은 가중될게 분명하다. 한 사람의 권력 중독이 14억명을 재앙으로 몰고 간다. 시진핑 1인 독재의 앞날을 지켜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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