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각 불발에 17년 만에 떠날 채비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한국씨티은행이 소비자금융 부문 철수를 공식적으로 밝힌 지 6개월 만에 결국 청산을 선택했다. 2004년 씨티그룹이 옛 한미은행을 인수해 한국씨티은행으로 공식 출범한 지 17년 만이다. 씨티은행의 한국 철수설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거론됐다. 하지만 국내에서 은행 전체 사업 부문에 대한 인수·합병 사례는 있었지만, 이번 한국씨티은행처럼 부분 매각은 이례적이다.

- 노조 "금융당국의 졸속 결정, 직원을 거리로 내몰았다"
-  소비자금융 철수…“내 예·적금과 대출은 어쩌나?"


유명순 씨티은행장은 최근 고객들에게 한 통의 이메일을 보냈다. "고객님, 한국씨티은행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로 시작한 이 편지에서 그는 "지난 4월15일 씨티그룹 본사는 한국을 포함한 13개 국가의 소비자금융사업에서 출구 전략을 추진하기로 발표했다"라며 "이에 한국씨티은행은 출구 전략의 모든 가능한 실행 방안에 대해 신중히 검토해 왔으나 부득이하게 전체 소비자금융 사업 부문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라며 청산 과정이 진행되고 있음을 직접 밝혔다.

한국씨티은행이 소매금융 청산을 공식적으로 선언함에 따라 금융당국도 법률 검토 작업에 착수했으며 이 과정에서 노조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 씨티은행, 왜 한국 시장 떠나나

한국씨티은행의 소매금융 철수설은 꽤 오래전부터 업계에서 언급됐다. 특히 지난해 최고경영자(CEO) 교체 이후 소매금융사업 축소 기조가 굳어진 것이 한국에서 소비자금융 철수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지난 9월 제인 프레이저가 선임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구조조정 가능성이 두드러졌다는 것. 프레이저 CEO는 2015년 중남미 지역의 책임자로 일할 당시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등의 지역에서 소매금융과 신용카드 사업 부문을 매각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소매금융 축소전략을 펼친 인물이다.

또한 한국씨티은행의 소매금융 철수 결정은 초저금리와 금융 규제 환경에서 수익을 내기 어려운 환경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씨티은행의 작년 순이익은 1878억 원으로 전년보다 32.8% 줄었다.

이와 관련해 진창근 한국씨티은행 지부장은 일요서울과 만나 "한국씨티은행은 소비자금융 철수 발표 이후 수개월에 걸친 복수의 인수 의향자들과의 협상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성과도 없이 헛심만 썼을 뿐 아니라 고객 보호와 고용 안정을 위한 노력은 시늉만 내고 결국 가장 손쉬운 방법인 졸속 청산(단계적 폐지)을 선택한 것이다"라며 "자본은 그들의 탐욕스러운 본성을 드러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그야말로 안하무인의 형태가 아닐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씨티은행이 소비자금융 부문 폐업을 선언했지만,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아야 한국 시장을 떠날 수 있다. 은행법 제55조에 따르면 은행들의 합병·해산·폐업도 모두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씨티은행은 2004년 미국 씨티은행이 한미은행을 인수해 출범하면서 탄생했는데, 모기업이 해외 은행일지라도 법인이면 국내 은행법을 적용받는다.

한국씨티은행은 지점 폐쇄에 필요한 요건을 갖추는 대로 금융당국의 승인을 요청할 계획이다. 그러나 노조는 "금융위원회는 청산에 대한 조치 명령을 의결하면서 승인사항임을 분명히 했다"라며 "2013년 홍콩상하이은행(HSBC) 소비자금융 철수(10개 지점 폐쇄) 당시 금융위원회의 인가에 6개월이 소요됐다.

한국씨티은행의 자산 규모가 12배인 점을 고려할 때 더욱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엄격한 심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벌써 ‘연내 금감원 합의 후 금융위원회 정례회의 상정, 연초 청산 절차 돌입’이라는 금융당국 발 시나리오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라며 "(이는) 금융당국과 씨티그룹이 사전에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한 판 더 칠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금융위가 인가를 내줘서는 안 된다"라며 반발하고 있다.

회사를 지키겠다던 직원들도 떠날 채비 중이다. 지난 11일 노조가 공식 집계한 희망퇴직 인원은 2300명이다. 이는 전체 직원 3500여 명 가운데 약 66%에 해당하는 인원이다. 이번 희망퇴직 대상에는 철수 대상인 소매금융 직원뿐 아니라 기업금융, 전산 부문 등 사실상 거의 모든 직군이 포함됐다.

노조는 “금융당국의 졸속 결정이 수천 명의 직원을 거리로 내몰았다”라는 성명을 통해 “대한민국 금융을 책임지고 있는 금융당국이 금융노동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고 오히려 외국 자본의 편이구나’라고 느낀 직원들이 처음의 결정을 바꾸어 하나둘씩 퇴직을 선택하기 시작했으며, 떠나기로 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직원들은 동요했고 점차 퇴직을 선택하는 직원들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금융당국의 졸속 결정은 직원들의 선택을 극적으로 반전시키기에 충분했다”라고 밝혔다.

- 신규 영업 중단…고객들 어떻게?

한편 한국씨티은행 청산 작업이 진행되면서 그간 이용객들도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실제 씨티은행 종사자 A씨는 "지금 은행 창구에는 예금을 찾겠다는 고객들이 줄을 섰고 콜센터에는 내 대출이 만기 때 연장이 가능하냐는 민원이 폭주하고 있다"라고 알렸다.

이와 관련해 한국씨티은행 측은 모든 상품과 서비스 신규 가입을 중단했다. 다만 기존 고객이 보유한 계좌·상품은 계약 만기 또는 해지 전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또 추가 안내가 있을 때까지 영업점, 모바일·인터넷뱅킹, 콜센터, 현금자동입출금(ATM)기, 제휴 ATM 등 기존 서비스를 변경 없이 제공하기로 했다. 신용카드도 표시된 유효기간까지 사용하면 된다.

유명순 씨티은행장은 자료를 통해 "고객과의 기존 계약은 계약 만기나 해지 시점까지 정상적으로 유지되며 그때까지 금융서비스를 차질 없이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단계적 폐지가 완료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라며 "그 과정에서 관련 법규와 절차를 준수하고 당국과 충분한 협의를 통해 고객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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