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세탁.투자 먹튀.마약밀거래 등 범죄 잇따라

사진설명 : 경기남부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가 지난 5월 서울시 강남구 소재 A 암호화폐 거래소 본사에서 압수수색 물품을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뉴시스]
사진설명 : 경기남부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가 지난 5월 서울시 강남구 소재 A 암호화폐 거래소 본사에서 압수수색 물품을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한 사람이 있다. 그는 흔적 없이 거래 가능한 다크 웹사이트를 만들게 된다. 이 사이트는 블록체인 기술로 추적이 불가한 비트코인으로 거래할 수 있는 신흥 마약 슈퍼였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손쉽게 구입, 며칠 후면 집 앞으로 배달되는 익명 거래 방식을 썼고, 고객들은 미래가 도착한 것 같다며 환호했다. 그러나 갑자기 규모가 커지자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워졌고 총기, 살인 의뢰 등 통제 불능 무법천지가 되자 그는 수배대상 1호가 된다. 영화 '실크로드'의 줄거리다. 문제는 이 줄거리가 현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 "상장하면 100만 원이 2억"…노년층 '쌈짓돈' 터는 가짜 암호화폐 기승
- 암호화폐 투자 실패로 빚…3살 딸 죽이고 극단 선택 시도한 아버지 구속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최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향정 및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마약 유통 총책인 A(24)씨와 가상자산 구매대행사 운영자 B(26)씨 등 9명을 구속하고 판매·인출책 등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A씨 등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텔레그램에 특별 인증이 필요한 마약 채널을 개설한 뒤 구매자들에게 시가 10억원 상당의 마약류를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B씨가 운영하는 가상자산 구매대행사를 통해 비트코인 등으로 마약 자금을 받은 뒤 현금화하면서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려고 한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가상자산을 섞는 이른바 `믹싱` 작업을 통해 수사기관의 자금 추적을 어렵게 하려고 했다. 또 비트코인 등을 대신 구매해주는 가상자산 구매대행 사업을 합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경찰의 수사에 혼선을 주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표방한 채 투자금을 끌어모은 뒤 폐쇄하는 이른바 ‘가짜 거래소 먹튀’ 사기 사건이 큰 문제가 됐다. B씨는 지인으로부터 암호화폐 관련 회사 한 곳을 소개받았다. 이 회사가 운영하는 전자지갑에 암호화폐를 보관해두면 매일 수익을 올릴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매일 투자원금의 0.3% 정도 암호화폐가 전자지갑에 들어오자 B씨는 본격적으로 전 재산을 투자했다. 지인들에게도 적극 추천해 투자금을 늘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사전 예고 없이 전자지갑이 먹통이 되었고 A씨는 물론이고 하위투자자들까지 하루아침에 투자금 전액을 잃었다. 말로만 듣던 '거래소 먹튀'였다.

유사 행위는 최근 법원 판결에서도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장영채 판사는 가상화폐 업체 코디락스 대표 52살 김모 씨에게 징역 5년과 벌금 22억원을, 영업본부장 55살 박모 씨에게는 징역 4년에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 늘어나는 가상화폐 사기 사건

이들은 2018년 10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자신들이 개발한 가상화폐에 현금을 입금하면 200원 당 ‘1페이’로 환산한 뒤 매일 0.2%의 이자를 무제한 지급하겠다고 속인 뒤 실제로 투자자들에게 환전을 해주지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가로챈 돈은 58억7000만 원에 달했다. 이들은 또 투자자들이 다른 투자자를 끌어들이면 대가를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을 도입해 사기 범행의 규모를 키웠다. 뿐만 아니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3일 암호화폐 거래소를 사칭해 약 4억 원을 빼돌린 해킹조직의 국내 조직원 C씨(중국 국적)를 검거했다.

국수본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를 사칭해 '해외 아이피 로그인 알람' 피싱 문자 메시지를 대량으로 유포했다. 가짜 암호화폐 거래소 사이트 접속을 유도해 개인정보를 취득한 뒤 거래소 회원들의 계정에 보관 중이던 암호화폐를 탈취한 혐의다.

아울러 빼낸 암호화폐를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거래소 계정에 잠시 송금된 암호화폐를 횡령한 피의자 2명(한국 국적)도 경찰에 붙잡혔다. 급기야 코로나19에 따른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세 살배기 딸을 살해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던 20대 남성에게 법원이 징역 13년 형을 선고했다.

지난 21일 수원지법 형사13부(이규영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28세 회사원 D씨에게 징역 13년형과 2년간의 보호관찰 명령을 선고했다. D씨는 지난 8월 15일 오후 4시께 경기 수원시 자택에서 잠자던 딸 E양(3)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범행 후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B씨는 폐 일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졌다.

앞서 D씨는 E양이 태어난 2018년 8월 무렵 가상화폐 투자 실패로 인해 4000만 원의 빚을 지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 회생 개시 결정을 받았다. 이어 지난해 8월 아내와 이혼하고 모친의 도움을 받아 E양을 키워왔다. 그러나 올해 들어 코로나19가확산되며 다니던 회사의 무급 휴가가 늘면서 월급이 줄어들자 생활고를 겪었다.

- 암호화폐 관련 불법 행위 대응을 강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5월26일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암호화폐 관련 범죄 피해 금액(추정치)’은 2017년 4674억 원, 2018년 1693억 원, 2019년 7638억 원, 지난해 2136억 원, 지난 1∼4월 942억 원 등으로 집계됐다.

2017년 41건(126명)이었던 암호화폐 관련 범죄 단속 건수도 지난해 333건(560명)으로 급증했다. 경찰이 2017년부터 지난 4월까지 입건한 암호화폐 관련 범죄는 모두 585건, 피의자 수는 1183명이다. 지난해 경찰이 수사한 사건을 유형별로 분류해 보면 암호화폐 관련 사기·다단계 범죄가 218건(439명)으로 가장 많았다. 암호화폐 거래소 불법 행위 31건(39명), 구매 대행 사기 등 기타 범죄도 84건(82명) 있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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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코인 사기 피해와 관련) 개인 탓만 할 수 없다. 필요하다면 유예된 코인거래소 금융거래정보 신고를 당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특별전담팀 등을 구성해서 예방적 조치에 나서는 등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청도 지난 5월18일 송민헌 차장(치안정감)을 팀장으로 하는 ‘암호화폐 불법 행위 종합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책 마련에 나섰다. 경찰청 관계자는 "최근 범정부적으로 민생 금융 범죄를 근절하고자 암호화폐 관련 불법 행위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따라 경찰도 TF를 통해 관련 범죄를 적극적으로 수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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