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8일 차이로 숨진 전두환(11월 23일)·노태우(10월 26일) 전 대통령의 마지막길이 고단하다. 10월 30일 영결식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한 달을 떠돌다 파주 동화경모공원으로 장지가 결정됐다. 11월 27일 영결식을 마친 전 전 대통령의 유해는 장지가 결정되지 않아 연희동 자택에 임시 안치됐다.

망자의 죽음 앞에는 관대해져 명복을 빌고 유족을 위로하는 것이 동서고금의 상례(喪禮)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 국장 땐 연방정부의 업무가 일시 정지된다. 1994년 ‘워터게이트’로 인해 불명예 퇴진한 닉슨 대통령의 장례식(1994년)에 전·현직 대통령 5명이 모였다.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과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지미 카터,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 내외가 참석해 애도를 표했다. 미국 사회는 74년 탄핵으로 닉슨에게 사망 선고를 내렸다. 그 때 정치적으로 죽은 닉슨이 장례식을 통해 20년 만에 복권되어 제대로 눈을 감게 된 것이다.


전·노 전 대통령의 장례절차에 대한 국가의전 홀대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지 않는다. 두 분은 이념전쟁의 와중인 대선 정국에 타계하여 영(榮)보다는 욕(辱)을 많이 보게 된 것은 아닐까.

좌우를 떠나 전직 대통령의 빈소에 조문하고 조화를 보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전 전 대통령 타계에 공식 논평조차 안 내는 비겁함을 보였다. 다만 옥중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의 영전에 조화를 보내 42년의 악연을 매듭지었다.

전직 대통령의 빈소에 조문가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 지도자들의 행태는 잘못됐다. “전두환씨, 전두환 사망” 등 저주의 굿판을 벌인 좌파 언론과 고이 보내드릴 수도 있는데도 대선 승리를 위해 망자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여권에 대해 후세의 사가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광주에서 전 전 대통령의 비석을 밟았으며, “내란·학살 주범 전두환 씨의 조문은 안 한다”고 밝혔다. 그나마 좌파의 영수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선인의 죽음이든 악인의 죽음이든 죽음 앞에서는 우리가 삼가는 게 있어야 한다.”고 일갈해 나라의 위신을 세워준 것 같아 다행으로 생각한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타계했을 때 한나라당은 심심한 애도를 표했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은 욕을 먹으면서도 조문했다. 민주당과 좌파 언론들은 이를 기억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는 후세 사가의 몫이다. 전·노 두 전직 대통령은 분명히 공과(功過)가 있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포폄(褒貶)해야 한다. 나아가 공은 끌어안고 과는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두 전직 대통령은 12.12 쿠데타, 5·18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 뇌물을 받아 구속되는 등 비판 받을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과감한 민생개혁과 친서민 정책으로 대한민국을 업그레이드 시킨 공이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집권기간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암흑기였다. 그러나 하버드대 출신 김경원 비서실장,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라고 일임한 김재익 경제수석, 박정희 대통령 경제정책의 주역 남덕우 국무총리 등 당대 최고의 인재로 내각을 구성했다. 군 출신은 국방부·총무처 장관 두 명뿐이었다.

그는 물가를 안정시켰고(3%선), 경제를 발전시켰으며(연평균 9%의 고도성장), 외채를 다 갚았다.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하고, 직선제개헌을 통해 단임 약속을 지켰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6.29 민주화선언’으로 정치 민주화의 길을 열었다. 국민연금을 만들고, 건강보험을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했다. 토지공개념을 법제화하고, 북방외교를 펼쳐 한국 외교영토를 세계로 확장했다. 보수정권이 가장 진보적 아젠다를 추진한 것이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 유엔동시가입을 했다. 분당·일산 신도시 건설로 미친 집값을 잡았다. 고속전철과 인천공항의 첫 삽을 떴고, GNP 만 불 시대를 열었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혁명 정권’이라고 뽐냈지만, 무능한 ‘반개혁 정권’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망국적인 부동산 정책과 대장동 게이트에서 그 실상이 밝혀졌다. 법치와 민주주의를 파괴한 주사파운동권 독재는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보다 개혁에서 뒤졌다는 시각도 있다. 문 정권은 전·노 정권의 유산을 반추하며 반성하고 늦게라도 조의를 표하는 도량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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