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성범죄 개관

다. 판례 평석
형사범은 행위책임을 묻는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고의가 구성요건 중 하나이다. 즉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연령에 대한 미필적 고의, 즉 ‘19세 미만일지도 모른다는 인식’은 필요하다고 보아야 하므로, 만약 그것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단순 강간죄로 처벌해야 한다. 예컨대 누가 봐도 성년인 여자를 강간하였는데 그 여자가 실제로는 19세 미만이라는 우연적 결과 때문에 처벌의 경중이 달라진다면 이는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한 일이다. 따라서 그런 인식 여부와 상관없이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죄가 인정된다는 대법원판례(대법원 2013. 6. 28. 선고 2013도3793 판결)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아청법상 강간죄도 13세 미만의 자에 대한 강간죄의 해석과 마찬가지로 적어도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연령에 대한 미필적 고의(혹시 만 19세 미만일지도 모른다는 인식)라도 있어야만 성립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자장치 부착명령의 경우는 형벌보다는 보안처분에 가까우므로 가해자의 인식 여부와 무관하게 판단한 대법원판례에 대해 찬성한다.

4. 장애인에 대한 강간죄에 있어 쟁점
이 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지적장애등급을 받은 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단순한 지적장애 외에 ①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증명되어야 하고, ② 가해자도 간음 당시 피해자에게 이러한 정도의 정신장애가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가. 성적 자기결정권 존부에 관한 판단기준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강간죄에 있어 가해자가 상대방이 장애로 인해 항거불능 상태인지 여부에 관하여는 피해자의 정신적 장애의 정도뿐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분을 비롯한 관계, 주변의 상황 내지 환경, 가해자의 행위 내용과 방법, 피해자의 인식과 반응의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피해자가 사건 범행 당시의 정황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범행 당시 소극적인 저항행위를 하였으며, 범행 이후에 피해 사실을 주변에 얘기하거나 가해자의 계속적인 만남요구에 거부의사를 표현했다고 해도 이러한 사정만으로 피해자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 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1도6907 판결
 [1] 구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2011. 11. 17. 법률 제1108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성폭법’이라 한다) 제6조는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여자를 간음하거나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사람은 형법 제297조(강간) 또는 제298조(강제추행)에서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규정에서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라 함은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 그 자체로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는 경우뿐 아니라 신체장애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주된 원인이 되어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이른 경우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그중 정신적인 장애가 주된 원인이 되어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정신적 장애의 정도뿐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분을 비롯한 관계, 주변의 상황 내지 환경, 가해자의 행위 내용과 방법, 피해자의 인식과 반응의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대법원 2007. 7. 27. 선고 2005도2994 판결 참조). 나아가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충실하게 보호하고자 하는 구 성폭법 제6조의 입법 취지에 비추어 보면, 위와 같은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피해자가 정신적 장애인이라는 사정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므로,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피해자의 지적 능력 이외에 그 정신적 장애로 인한 사회적 지능․성숙의 정도, 이로 인한 대인관계에서의 특성이나 의사소통능력 등을 전체적으로 살펴 피해자가 그 범행 당시에 성적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표현․행사할 수 있었는지 여부를 신중히 판단하여야 한다.

[2] 원심은 피해자가 정신지체 장애 3급에 해당하는 여성이기는 하지만 피해자의 전체 지능은 경도의 정신지체 수준에 불과한 데다가, 피해자가 이 사건 범행 당시의 정황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고, 범행 당시 피고인의 추행에 대하여 다리를 오므리는 등 소극적인 저항행위를 하였으며, 범행 이후에 교회 전도사에게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였다거나 계속 만나자는 피고인의 거듭된 요구를 거절하는 등 그 판시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범행 당시 정신적인 장애가 주된 원인이 되어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