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첫 여성 부총통을 2000년부터 8년간 역임한 리슈렌(呂秀蓮) 박사는 “중공(중국공산당)은 대만을 단 10분도 지배하거나 점령한 적 없다.”고 지난 11월 밝혔다. 중국이 대만을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는데 대한 반박이다. 맞는 말이다. 대만 정부는 중국을 지배하던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국민당이 중공과의 내전 끝에 1949년 대만으로 후퇴한 정권이다. 중공에 항복한 적 없는 독립 국가이다. 중공은 당시 10여년에 걸친 내전에 지친 나머지 대만까지 정복할 여력이 없어 포기했다.  

대륙에서 대만으로 퇴각한 국민당 정부는 ‘중화민국‘ 국호로 유엔 대표권을 계속 유지했다. 그러나 대만의 국제적 지위는 1971년 7월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시 헨리 키신저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조좌관이 소련을 견제키 위해 중국을 극비리에 방문해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면서였다. 그 해 10월 중국은 유엔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이었던 대만을 축출하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당시 유엔 결의안 2758호는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는 중공’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결의안에 대만이 중국 영토라는 대목은 없다.

1979년 미국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을 승인하면서 ‘하나의 중국’을 선언하였다. ‘하나의 중국’은 대만이 중국에 속한다는 걸 뜻한 것은 아니었다. 국민당 정권도 ‘하나의 중국’을 내걸었다. 중국 대륙을 탈환해 ‘하나의 중국’을 회복하겠다는 구호였다. 미국은 대만과 단교하면서도 ‘대만관계법’을 제정, 대만의 안보를 확약했고 무기판매 등의 길도 열어놓았다.

1992년 중국과 대만은 통일방안에 합의했다. 서로 자기 국호를 쓰면서 ‘일국양제(一國兩制)’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키로 한 것이다. 공산과 자유민주 두 체제를 그대로 두고 하나의 중국으로 간다는 뜻이었다. 이 92년 합의서에도 대만이 중국에 속한다는 말은 없다. 그 때도 대만은 ‘하나의 중국’을 대륙 수복 의지 표출로 여겼고 반대로 중국은 대만이 중국에 속한다는 걸로 간주했다. 양측이 ‘하나의 중국’을 놓고 서로 내 것이라고 해석한 다는 건 대만과 중국이 각기 독립 객체라는 걸 반영한다.

대만 토착민 주축으로 결성 된 민주진보당(민진당)의 천수이볜은 2000년 집권했다. 그 후 민진당 정권은 ‘일국양제’ 아닌 대만 단독 정권을 강조하고 나섰다. 천수이볜 노선을 추구하는 민진당의 차이잉원(菜英文) 총통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에 맞서 대만이 독립국가라며 서방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시켜갔다. 중국에 매섭게 맞선다고 해서 미혼녀 차이는 “대만의 매운 언니”로 통한다. 여기에 중국은 그녀의 독립행보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 10월4일 전투기와 폭격기 149대를 출격시켜 대만방공식별구역((ADIZ)을 침공. 무력통일도 불사할 기세로 겁박했다. 그러나 차이 총통은 대만 방어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것”이라며 겁내지 않았다.

국제환경은 대만 쪽으로 기울고 있다. 지난 3월 미국 대사가 단교 42년만에 대만을 공식 방문했고 미군 특수부대는 대만 군을 훈련시키면서 대만에 주둔하고 있다. 미국*일본*영국*유럽연합(EU)*호주 등은 대만과의 관계를 확대하며 중국을 견제한다. 특히 시진핑이 1인독재로 치닫자 자유 대만 수호를 위한 서방 국가들의 결의는 더욱 다져졌다.

대만은 국제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독립 국가이다. 그런데도 중국은 국제사회가 대만을 독립국가로 접근하면 “내정 간섭”이라며 보복하겠다고 협박한다. 도리어 중국의 보복협박이 독립국 대만에 대한 내정 간섭이고 갑질이다. 차이 총통은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다져가며 매섭게 중국에 맞선다. 대만은 한국과 같이 자유민주와 공산독재로 분단돼 벌이는 체제경쟁에서 승리한 나라이다. “매운 언니”의 당찬 독립 결기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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