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요약]
지난 1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충남 북부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해 상속세 과세특례 등을 고려해 기업의 영속성을 갖고 운영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날 윤 후보는 한 기업인이 "우리 기업이 30~40년 정도 한 기업이 상속세 문제 때문에 사모펀드에 파는 기업이 상당히 많다. 이런 문제에 대해 후보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라고 묻자 "독일에는 메르세데츠벤츠같은 100년 기업이 있는데 왜 한국엔 없냐. 몇십 년 된 기업도 찾아보기 어렵지 않느냐"라고 답변했다. 이어서는 상속세 관련 답변을 내놨다. 이 발언이 알려진 직후 윤 후보의 "100년 된 기업이 없다" 발언의 사실 여부를 따져봤다.
 

조세일보는 지난 1일 윤석열 후보와 충남지역 기업인 간담회 참석자 발언을 풀워딩으로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윤 후보는 "지금 독일에는 메르세데스벤츠 같은 100년 기업이 있는데 왜 한국엔 없냐. 몇십 년 된 기업도 찾아보기 어렵지 않느냐"라고 했다.
조세일보는 지난 1일 윤석열 후보와 충남지역 기업인 간담회 참석자 발언을 풀워딩으로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윤 후보는 "지금 독일에는 메르세데스벤츠 같은 100년 기업이 있는데 왜 한국엔 없냐. 몇십 년 된 기업도 찾아보기 어렵지 않느냐"라고 했다.

[검증 내용]
우선 거리로 나서봤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국내에는 100년 기업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해봤다. 본지와 만난 일부 응답자들은 `삼성`과 `현대`라고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하고 이병철ㅡ이건희ㅡ이재용, 정주영ㅡ정몽구ㅡ정의선 회장 체제로 3대째 가업이 이어지는만큼 100년은 족히 넘으리라 추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은 1938년 3월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대구에 세운 삼성상회에서 출발해 올해 83년 차를 맞이한다. 당시 삼성상회는 자본금 3만 원으로 설립됐으며 1948년 삼성물산공사 창립 후 승승장구해 현재의 그룹으로 성장했다.

같은 시기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쌀가게 종업원으로 일하다 가게 사장의 도움으로 쌀가게를 직접 운영하게 됐다. 그러다 1940년 자동차 정비소를 차리게 됐고 이것이 현대자동차그룹의 모태가 됐다. 따라서 현대는 올해로 81년을 맡는다.

문득 윤 후보의 발언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IMI전경련 국제경영원 공식 블로그`에 소개된 글을 읽게 됐다.

전경련 국제경영원 사무국이 `전경련 가업 상속, 증여, 승계 최고위 과정`을 모집하는 공고문에서 국내에도 100년 기업이 존재한다는 문구가 삽입돼 있었다. 이 블로그에 따르면 국내에도 `두산`, `동화약품` `몽고식품` 등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글을 토대로 네이버 백과사전을 검색해보니 최장수 기업인 두산은 창업주 박승직 회장이 1896년 서울 배오개(서울 종로 4가)에서 그룹 모태가 된 ‘박승직 상점’을 개업해 현재 125년의 역사를 가졌다.

창업주였던 매헌 박승직은 넓은 안목으로 조선 내에서 생산되는 포목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생산되던 고가의 수입산 포목까지 취급해 박승직상점은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박승직은 박승직상점의 주요 단골들에게 사은품으로 화장품을 제공했는데 이게 반응이 좋자 1916년 화장품 공장을 만들고 `박가분`이란 화장품으로 히트시켰다.

이 성공으로 종로의 거상이 된 박승직 사장은 일제로부터 우리 상권을 지키기 위해 광장시장의 대표로 취임했으며 1925년 박승직상점을 주식회사로 개편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기술소재사업, 정보 유통사업, 생활문화사업 등, 주로 경공업 위주의 포트폴리오로 짜여 있었다. 이 당시 계열사가 병뚜껑을 만드는 삼화왕관, 코카콜라를 유통하던 두산음료, OB맥주, 두산백화, 두산경월 같은 소비재 기업이었고, 두산상사는 폴로 랄프 로렌 및 월풀의 수입사로도 유명했다. 한때는 유가공사업(두산유업) 이나 즉석 김치 사업(두산종합식품)까지 각각 손댄 적도 있었다. 1982년에 프로야구단 OB 베어스를 창단하였고, 1985년 동아 출판사 및 동아 인쇄공업을 인수해 출판/인쇄업에도 손을 뻗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수합병과 비주력 사업 부문 매각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중공업, 플랜트 기업으로 변했다. 2000년대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두산이 보여준 행보는 그야말로 공격적이다.

활명수로 유명한 동화약품 또한 1897년에 설립돼 역사가 124년을 자랑한다. 동화약방으로 시작한 동화약품의 기네스북에 기록된 국내 최초의 등록상표는 동화약품의 ‘부채표’이며 최초의 등록상품은 ‘활명수’다.

1931년 동화약방을 ‘주식회사 동화약방’으로 법인화하면서 본격적인 제약업소의 면모를 갖췄다. 기업명과 상표에서 드러나듯 동화약방은 경술국치 이후 민족 기업의 길을 걸으며 일제에 항거한다. 이 회사 직원들은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며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동화약품의 역사에 커다란 자부심이 있다.

그러나 동화약방은 광복과 함께 이북과 만주국 시장을 상실하고, 뒤이은 6·25전쟁으로 순화동 공장이 완전히 파괴되는 등 시련을 겪는다. 전쟁이 끝난 후 동화약방은 ICA(국제협조처) 자금을 받아 쓰러진 공장을 복구하고 재기에 나선다. 당시 보당은 “동화는 비록 폐허의 터전에 서 있다 해도 민족자존의 긍지를 버릴 순 없다. 민족 기업의 긍지는 순수 민족자본으로 재건될 때만 지킬 수 있다”라고 역설하며, 약품을 팔아 생긴 이윤을 완전히 재투자하는 독특한 경영방식을 구사한다.

결국 동화약방은 옛 명성을 되찾고 1962년 동화약품공업 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한 뒤 본사와 순화동 공장을 신축하고 1972년에는 안양공장을 준공하는 등 발전을 거듭한다. 동화약품은 현재 ‘까스활명수’ ‘후시딘’ ‘판콜’을 비롯한 400여 종의 의약품과 30여 종의 원료의약품을 생산해 국내는 물론 세계 40여 개국에 공급하는 굴지의 제약기업으로 성장했다.

동화약품은 설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줄곧 한 상호와 한 업종과 한 제품으로 한 자리를 지켜 왔다. 본사를 옮긴 것도 그나마 재개발 때문에 옮긴 것이다.

몽고간장으로 잘 알려진 몽고식품도 경남 마산에서 1905년 첫발을 내디뎌 116년의 역사를 보유했다. 간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류(醬類)를 생산한다.

몽고식품의 전신은 일본인 야마다 노부스케가 마산시 자산동에 1905년 세운 산전 정유공장(이하 산전장유)이다. 근처 식료품 가게 점원이었던 김홍구 창업주는 가게에 간장을 대주던 산전장유에 1931년 스카우트되며 정유업계에 첫발을 디뎠다.

사장의 신임을 받아 공장 지배인에까지 오른 김 창업주는 1945년 해방 이후 적산으로 분류된 산전장유를 매입, 몽고장유 공업사(이하 몽고장유)로 재탄생시켰다. 해방 직후 20여 개의 장유업체가 자금난으로 도산했지만, 기술력을 갖춘 몽고장유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1971년 세상을 떠난 김 창업주의 뒤를 이어 장남 김만식 회장이 몽고장유를 이끌었다. 1987년 사명을 몽고식품으로 바꿨다.

이외에도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이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중간에 개명해 명맥을 잇는 만큼 순수혈통 논란에 종종 이름이 올라오곤 한다. 신한은행은 1897년 설립된 최초 민간은행인 조흥은행(옛 한성은행)을 2006년 통합하면서 124년의 역사를 지니게 됐다. 1899년 설립된 상업은행(옛 대한천일은행)의 후신인 우리은행은 1998년 외환위 기 당시 경영난에 처하면서 한일은행과 합병해 `한빛은행`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2002년 현재의 상호로 다시 변경했다. 1912년 8월 15일 순수 민족자본을 바탕으로 설립된 보진재(옛 보진재 석판인쇄소)는 지난해 6월 폐업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종이 인쇄 수요가 감소한 탓으로 알려진다.

삼양홀딩스·하이트진로(1924년 설립) 등도 창업 90년을 넘긴 장수기업으로 꼽힌다.

[검증 방법]
- naver지식백과, 신동아, 더밸류뉴스, 조세일보 풀워딩 인용
- IMI전경련 국제경영원 공식 블로그 참조
- 일반인 인터뷰
 

[검증 결과]
윤 후보의 "국내에는 100년 기업이 없다"라는 발언은 명백한 `거짓`이다. 우리나라에는 `두산`, `동화약품`, `몽고식품` 등의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기업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는 왜 장수기업이 적을까. 우선 산업화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6·25전쟁부터 멀게는 임진왜란·병자호란까지 크고 작은 전쟁과 외침을 여러 차례 겪다 보니 실생활에 밀접한 의식주 기업조차도 수백 년을 버티기가 힘들었다. 장수기업이 많은 일본이나 미국은 외침이 거의 없었다.

또한 상속세 문제가 거론된다. 윤 후보는 "우리나라 상속세는 상속받는 사람 기준으로 계산하지 않고 피상속인의 재산 자체를 기준으로 과세한다"라며 "받는 사람이 실제로 받는 이익에 비해 과도한 세율을 적용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일본에는 200년 된 장수기업만 3000개가 넘는다. 장수기업이 일본에 많은 것은 전통을 중시하는 문화와 함께 중소기업만을 대상으로 한 승계 지원제도 덕분이다. 일본은 경영승계 원활화법에 의해 선대가 지분율 50%를 초과하는 중소기업 비상장주식을 상속할 경우, 주식 가액의 80%에 해당하는 상속세 납부를 유예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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