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의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점입가경이다. 대선을 70여 일 앞둔 시점에 벌어진 막장 드라마여서 상황이 더 심각하다. 5년 만의 정권탈환에 도전하는 자유우파의 비장함은 보이지 않는다. 대표는 자기 정치하고 선대위는 자리싸움하는 한심한 국민의힘 선대위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수호를 위해 풍찬노숙하며 와신상담한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만사휴의(萬事休矣)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21일 조수진 선대위 공보단장의 지시 불이행 등을 이유로 선대위의 상임공동위원장과 홍보미디어본부장 사퇴를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울산 가출 파동’ 이후 선대위 업무에 복귀한 지 18일 만이다. 윤석열 후보와도 상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퇴 후인 22일에는 “중앙선대위의 6개 본부 체제를 해체해야 한다. 김종인 위원장 빼고 다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의 이 같은 일탈은 한국정치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해괴한 행태다. 제1 야당의 ‘30대 0선 대표’라는 국민적 기대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 사태로 윤석열 후보와 당 전체가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문재인 정권의 폐정(弊政)으로 정권교체 여론이 높은 것은 시대정신이다. 이 대표는 이 시대정신을 배신한 시대의 이단자가 되었다. 이 대표의 잦은 가출 근성은 어디에서 왔을까.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2016년 총선에서 과반이 확실하다며 180석 플러스 알파도 이야기했지만, ‘옥쇄 들고 나르샤’ 하면서 총선을 패배로 몰고 갔다. 먹던 밥상을 엎어 버리고 쪽박까지 깬 ‘배신의 정치’가 가져다 준 당연한 결과였다.

독일의 막스 베버는 정치 지도자의 덕목으로 ‘열정, 책임감, 균형적 판단’을 제시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이 세 가지 덕목 중 단 한 가지도 갖추지 못한 ‘하지하(下之下)’의 당 대표다. 선거운동에서 손을 떼고 승패에도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는 당 대표 책무가 뭔지도 모르는 무책임의 극치이다.
국민의힘 당원과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은 지난 6월 전당대회에서 청년 이준석을 선택했다. 이 대표는 당원투표에서는 나경원 후보에게 졌지만, 역선택(보수의 자중지란 유도)을 포함한 여론조사에서 이겨 승리했다. 이는 내년 3·9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보수세력이 ‘중진의 경륜’보다는 소위 ‘청년의 변화’를 선택한 결과이다.

필자는 지난 6월 14일자 본지 ‘기대 반, 우려 반 36세 제1야당 대표’ 제하의 논단에서 “이 대표는 선을 넘는 튀는 발언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좀 더 유연해 져야 하며, 재승박덕(才勝薄德)을 경계해야 한다. (중략) ‘경험보다 더 좋은 스승은 없다’는 말이 있다. 경선 과정에서 나경원 후보가 충고한 ‘정치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각골명심(刻骨銘心)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정작 대선 국면에 보이는 이 대표의 행태는 노회한 정치꾼의 모습으로 비친다. 항간에는 대선 뒤 6월 지방선거 공천권을 겨냥한다는 의심까지 나돌고 있다. “대표 연임에 도전하겠다”는 언론 인터뷰는 자기 정치에 골몰하고 있다는 모습을 반증한다.

두 번에 걸친 이 대표의 ‘상습 가출’로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에 비상등이 켜졌다. 내부 권력다툼으로 대표 대접 안 한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자는 당 대표 자격이 없다. 이 대표는 각종 신문 방송 인터뷰에서 당과 후보에 누가 되는 발언으로 해당행위를 할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당 대표직도 내려놓는 것이 정도(正道)다.

초선의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1일 “당대표를 포함한 최고위원들의 사퇴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선대위 구성이 어떠하고, 누가 있고 없고 하는 것은 결국 국민들에게는 밥그릇 싸움으로 보일 뿐”이라며 “아무도 아직 밥을 퍼줄 생각도 하지 않는데, 밥그릇부터 서로 가지려고 싸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후보에게 줄을 섰던 그 많은 의원들이 이준석-조수진 사태 해결에 나서는 사람이 없었는데, 유독 초선인 박 의원만이 살신구당(殺身救黨) 차원에서 담대하게 문제제기를 했다. 신선하다.

윤석열 후보의 리더십이 본격적 시험대에 올랐다. 하루속히 내홍을 정리해 민주당을 뛰어넘는 국가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윤 후보는 선대위를 정비해서 확고한 정체성을 세운 후 이기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하여 코로나19와 민생위기로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보듬어야 한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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