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75일을 앞둔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포함한 3094명에 대해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2017.3.10) 후 ‘최서원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2017.3.31)된 박 전 대통령은 꼭 4년 9개월간 수형생활을 했다. 대통령 재임 기간(4년 1개월)보다 긴(세계 두 번째) 형극(荊棘)의 세월이었다. 가혹하리만치 뒤늦은 결정으로 만시지탄(晩時之歎)을 금할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낙인이 찍혀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신적폐’가 적폐청산 프레임에 갇혀있는 박 전 대통령보다 훨씬 크고 깊다. 탈원전 과정의 불법성, 기업 숨통을 죄는 반시장적 규제, 울산시장 선거 개입, 검찰의 권력 시녀화, 1000조가 넘는 국가채무 등 문 정권의 폐정(弊政)을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통해 이제 탄핵은 역사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은 우리 헌정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탄핵 과정은 사실과 허위가 뒤범벅이 된 채 헌법 절차가 전도(顚倒)됐다.
국회의 사기 탄핵소추→헌재의 인민재판→검찰의 무리한 정치적 기소→법원의 과도한 선고(22년 형)로 재판은 정당성과 공정성을 상실했다. 한석훈 성균관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재판 공정했는가’)에서 “‘최서원 게이트’는 최서원이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한 사익추구 사건일 수는 있어도, 대통령이 최서원과 결탁하여 최서원의 사익추구를 지원한 사건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정리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사면이 생각의 차이나 찬반을 넘어 통합과 화합, 새 시대 개막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국민통합과 미래를 사면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대선에 임박해 한명숙 복권과 이석기 가석방에 끼워 넣은 사면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2년을 복역하고 만기 출소한 친노의 대모(代母) 한명숙(전 총리)은 아직 추징금도 다 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석기는 북한의 대남 혁명론에 동조한 혁명조직(RO)의 총책이다. 체제전복 사범인 이석기는 가석방의 전제 조건인 반성을 거부했음에도 만기를 1년 반가량 앞두고 가석방됐다. 이것은 대선을 앞두고 좌파의 총결집을 노렸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든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문 대통령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박 전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죄가 필요하다.”고 했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늦었지만 환영한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 사면으로 이재명 후보는 영남권 등 정통보수의 비토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계기를 갖게 됐고, 국정농단사건 특검의 수사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후보는 ‘탄핵의 강’을 힘들게 건너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최서원씨 변호를 맡았던 이경재 변호사는 지난 24일 “윤석열 후보는 이 사태에 대해서 어떤 해법도 낼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심판의 대상이다.”라고 했다.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할 대선주자는 또 있다. 최근 박 전 대통령의 무조건 석방을 주장한 바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017년 당시 “(탄핵은 원래) 우리가 가장 먼저 앞장섰다. 탄핵 발의가 목표가 아니었고 통과가 목표였다.”며 누구보다 탄핵을 앞장서 주도한 인물이다.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탄핵과 적폐청산의 강’을 건너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윤석열, 안철수 두 후보가 탄핵과 적폐청산 과정에서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한 ‘유감’ 입장 표명을 하고 국민적 이해를 구해야 한다.

정조는 ‘탕평’을 외치며 아버지(사도세자)의 관에 침을 뱉은 자들과 함께 나라를 부흥시켰다. 정권교체라는 시대정신 구현과 나라의 밝은 미래를 위해 윤석열과 안철수가 후보단일화로 손을 잡길 기대한다. 야권 대통합만이 굴절된 역사를 전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사면 발표 직후 “많은 심려를 끼쳐드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 “신병 치료에 전념해서 빠른 시일 내에 국민 여러분께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탄핵과 재판의 옳고 그름을 떠나 헌정 상의 변고(變故)에 책임을 느낀다고 인정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애국심이 투철한 분이다. 탄핵과 재판의 억울함을 밝혀내어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인권을 지키고 법치를 바로 세우는 길이 될 것이다. 이번 사면이 헌정 중단의 국가적 불행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접고 국민통합과 새 시대 개막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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