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폭언 줄었지만 `따돌림` 여전"…극단적 선택까지도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개정 이후 2년이 지났지만,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늘고 있다.

민간 공익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는 최소 18명이 확인된다. 일각에서는 주관적인 괴롭힘 판단 기준이 문제라는 지적과 피해를 겪고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기업 특유의 수직적이고 경직된 문화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에 따라 문제가 반복되는 직장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로 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 연령대 젊은 층에 국한되지 않아
- 괴롭힘 피해자뿐 아니라 주변인도 사실에 근거해 신고할 수 있어


대전시에서 새내기 9급 공무원 A씨는 출근 시간 1시간 전에 상사가 마실 차와 커피 등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무시와 업무협조 배제, 투명 인간 취급 등의 괴롭힘을 당하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유가족들은 지난 11월26일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장 내 갑질·괴롭힘 가해자들에 대한 신속한 감사 및 징계 절차 등을 촉구했다.

A씨의 어머니는 이날 "지금 이 시각, 이곳에서 일하고 있어야 할 이 시간에 제 아들은 여기에 없다"라며 "어미인 저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어 이 자리에 섰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제 아들은 `부당한 업무지시, 과중한 업무부담, 이에 더해진 부서원들의 갑질 등으로 인해 날개를 채 펴보지도 못하고 만 25살의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 공무원 돼 좋아했던 아들이 주검으로

이어 "아들의 죽음 뒤에는 지난 7월 신규로 발령받은 부서, 그리고 해당 부서원들의 조직적인 괴롭힘과 갑질이 있었다"라며 "시청 공무원, 특히 감사위원회 위원이라면 이미 잘 알 것"이라고 강조했다.

A씨의 어머니는 "그런데도 감사위원회에서는 유가족에게 `다른 채널을 통해 이야기하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무책임한 모습만을 보여줬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전시청을 다닌다고 좋아하던 제 아이가, 대전시청을 다녀서 죽게 됐다"라며 가해자들에 대한 신속한 감사 및 징계, 순직 인정 등을 요구했다. 안타까운 소식은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올라 1만 234명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지난 12월2일에는 경기 안성교육지원청 소속의 한 50대 공무원 B씨가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글을 남긴 뒤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들은 B씨가 직장 내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했고, 부서장에게 수차례에 걸쳐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직장인의 73.3%가 직장에서 괴롭힘을 경험했고, 12%는 거의 날마다 괴롭힘을 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인 119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연령대는 젊은 세대에 국한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들 단체의 조사 결과 목숨을 끊은 18명 중 7명은 20대, 4명은 30대였지만 40대와 50대도 각각 3명씩 있었다. 성별은 남성 12명, 여성 6명이었다.

고용노동부 메뉴얼에 따르면 반복적으로 술자리를 강요하는 행위, 긴급하지 않은데 메신저로 화풀이하는 행위, 사적 심부름을 시키는 행위 등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끊이지 않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온라인상에서는 “계속 피해자가 나오고 있는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시행하면 뭐 하냐”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ㅊ**누리꾼은 "직장 내 수직관계가 형성돼 있고 생업까지 걸린 피해자 처지에서 괴롭힘 피해를 신고하기는 쉽지 않다"라며 "일부 회사는 논란의 소지를 밝히려하지 않고 오히려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해 오히려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상황이 된다"라고 주장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미흡함을 지적하는 누리꾼도 많았다. 대부분의 작성자들은 "버텨라", "힘내라" 등 위로의 글을 적기도 했다.

일요서울과 통화 한 노무법인 종로의 신동헌 대표노무사는 "피해 사례를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라며 "특히 공무원 사회의 경우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니 안 되니 등의 논쟁이 여전히 있다 보니 법으로 명시된 부분이 미약하다. 내부 지침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가 있지만 법의 무게와 내규의 문제는 다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12월에 직장 내 갑질 관련해 법까지는 아니고 국가공무원, 지방공무원 징계령 개정안 예고됐지만, 근로기준법은 2019년에 바뀌었는데 공무원은 이제야 입법예고 됐다는 점에서 많이 늦었고 빨리 원안대로 통과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신 노무사는 "민간 기업도 피해 신고가 쉽지 않지만 민간 기업은 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 조치부터 불이익 금지까지 법으로 명시화돼 있다"라며 "직장 갑질로 자살까지 고민하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그런 선택을 하기 전에 노무사와의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아가라고 당부한다"라고 밝혔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 직장 갑질 종합대책이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반복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거나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기관장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정부도 지난해 7월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시행하고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목격한 사람은 회사에 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신고가 접수되면 회사는 조사에 착수해야 하며 직원에게 유급휴가나 근무지 변경 등의 조처를 해야 한다.

이르면 1월부터는 악의적인 갑질 행위를 일삼는 공무원을 파면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 비위 정도가 심하면 파면·해임도 가능...법 강화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방공무원 징계 규칙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하고 `우월적 지위 등을 이용한 비인격적 부당행위`를 징계 항목에 신설하고, 징계 수위 감경 제외 항목으로 정했다. 또한 비위 정도가 심하며 고의가 있는 경우 파면·해임까지 가능하게 했다.

[뉴시스]
[뉴시스]

행안부는 "우월적 지위 등을 이용한 비인격적 부당행위란 공무원이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거나 우월적 지위에서 유래하는 사실상 영향력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인격·존엄성을 침해하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부당한 행위"라고 설명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때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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